인간은 다채롭다. 다채롭다는 것이 단순히 여러 인간이 한 공간에 함께 머무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삶과 결이 하나의 리듬을 이루며 흘러간다.
하나의 인간은 다양한 특질로 형성된다.
화자는 일상 속 사람들을 마주하며 이를 완벽하게 깨닫는다. 한 인간의 마음에도 좀스러움과 위엄,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이는 큰 위안이다. 오직 선과 악이 이분법적으로 나뉜, 한 쪽으로만 치우친 세계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걸어 잠그듯 맞물릴 수 없는 무한한 공허로 흩어지는 공간일 뿐이다.
이러한 공간에는 예술적 영감, 경외심, 감명, 고뇌 등 무수한 감정이 쏟아질 수 있는 자리가 존재하지 못한다.
이 문장이 비약과도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지만, 다행인 점은 한 사람이 하나의 인격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상에 대한 동경과 세계에 대한 감성, 예술적 영감 모두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너무 가볍게 사용한다. 말에 대한 감각이 없어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함으로써 그 말의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기술하면서 온갖 것에 그 말을 갖다 쓰기 때문에 그 이름에 값하는 진정한 대상은 위엄을 상실하고 만다. 사람들은 쓸데없는 생각을 돼먹지 않은 과장된 수사로 장식하려는 버릇이 있어 그 때문에 감수성이 무뎌지고 만다.”
뜻밖의 울림을 주는 문장이었다. 말과 단어 선택에 신중함을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건 자신의 일상에 무관심하여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차원적 생각을 직접 내던지게 된다.
감수성이 무뎌지는 것처럼 인생에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책을 읽으며 스트로브에게 많은 연민을 느꼈다. 아내에게 비참한 버림을 받고 나서도 스트릭랜드의 예술세계를 인정하고 기꺼이 그를 위해 보살핌을 행한, 안쓰러울 정도로 모자라지만 그 누구도 선함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등장인물.
화자는 그의 예술관을 냉소적인 태도로 관조했지만, 누군가의 집 안에 낭만을 심어준다는 감미로운 생각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저절로 따뜻한 미소가 지어졌다.
또한 독자의 마음이라는 내밀한 공간에 낭만을 심는다는 건 조예 여부와 상관없는 예술가의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예술을 한번 시작하게 되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취미와 직업의 경계를 넘어 목적마저 흐려지는 지점에서, 예술가들은 이미 환상 속에 숨어 있는 예술의 의의를 일찍이 알아본 이들인지도 모른다.
스트릭랜드에 대한 비평을 찾아보며 불현듯 노자와 장자의 도가가 떠올랐다. 그에게 질병은 육신의 쇠퇴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주변인들을 혐오하고 경멸하며 몹쓸 전염병에 걸린 자신의 운명도 삶의 일부분으로 거리낌없이 받아들인다.
탈세속적인 그는 질병으로 인해 양쪽 눈이 멂에도, 낙원의 비전을 보는 정신의 눈을 얻는다. 결론적으로 그는 자신의 뜻대로 눈을 잃지 않았다. 물질적인 눈은 상실했지만 마음의 눈을 떴다. 그의 삶은 더 고양되었다.
스트릭랜드, 그의 인간성을 비판하기가 선뜻 어려워진다. 그의 행위는 사회 윤리적 잣대로 충분히 비판받아야 할 모습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지향점, 즉 원시적이며 근본적인 윤리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행위에 도덕성을 들이미는 것조차 그에게는 끊어내고 싶은 경멸스러운 속세일 것이다.
어렵고 어렵다. 그의 인간성을 비판하고 싶지만 이 소설의 화자처럼, 스트릭랜드의 냉소적인 반응이 나의 양심에 비수처럼 꽂힐 것을 알기에 부끄러움이 터져 나온다. 가족을 떠난 건 해방을 원한 것일 뿐, 질병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공포가 될 죽음이라는 존재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에게 타인의 선의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스트릭랜드의 지향점은 오직 자유로운 삶을 제약하는 굴레를 끊어냄이었다. 화자가 ‘스트릭랜드가 주변인의 불행을 초래했다.’라고 분개하는 포인트는 결국 스트랙린드 본인이 아닌 주변인들의 의도가 초래한 비극적 결과였다.
때로는 보헤미안처럼, 과거 섣부른 모험심으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했던 어느 누군가처럼. 현실에 머무는 삶 속에서도 모든 인간은 언제나 신비롭고 찬란한 삶을 포착하고자 하는 예술에 대한 경외와 갈망이 늘 잠들어있다.
스트릭랜드의 예술에 대한 열망은 현실을 살아가며 잠시 잊고 있었던 독자의 예술적 본능을 부활시키는 큰 동기가 된다.
“낯선 곳에 있다는 느낌, 바로 그러한 느낌 때문에
그들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뭔가 영원한 것을 찾아 멀리 사방을 헤매는 것이 아닐까.”
문학의 근본을 유미주의라고 주장하는 서머싯 몸의 생각이 굉장히 유의미하다고 느껴진다. 세상 지식, 인간사와 관련한 필독서들은 차고 넘치지만... 오로지 깨달음을 통한 즐거움, 끝없는 상상력을 등에 업고 독자의 심장 깊은 곳에 파문을 남기는 낭만은 오직 문학만이 건넬 수 있는 선물이다.
글을 통해 전율을 느낄 수 있도록 함은 문학만이 해낼 수 있는 힘이 아닐지 오늘도 같은 생각을 거듭 곱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