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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바야흐로 <렌트>의 계절이다. 극 중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이 시간적인 배경으로 나오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후회 없이 사랑하며 연대해야 한다"라는 따뜻한 메시지가 몸을 녹여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메시지 때문인지 송스루 뮤지컬인 이 작품의 넘버들 중, 모든 등장인물들이 모여 다 같이 부르는 넘버들이 유독 마음을 울린다.


뮤지컬 <렌트>는 뉴욕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던 낡은 공장의 재개발을 막기 위해 버티는 이야기이다. 동시에 가난과 질병 등 불안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과 예술을 이어가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주인공'이 누구인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극에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고, 각자의 이야기를 거의 균등하게 들려주며 서사를 형성해 나간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어느 한 명에게 몰입하기보다는, 열다섯 명의 인물들 사이에서 제16의 인물이 되어, 캐릭터들과 함께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장면들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1. "Rent"


 

 

 

"전기 나갔어!"


마크의 외침 뒤에 드럼이 신호탄을 끊고 전자 기타와 함께 강렬한 인트로를 만들어낸다. 동시에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짜릿함을 선사한다. 넘버 "Rent"는 불법 거주하고 있는 공장을 나가라는 협박으로 전기가 나가자, 절대 안 나가고 집세도 갚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곡이다. 뻔뻔하기 그지없지만, 신나는 멜로디에 저항적인 가사를 온몸으로 노래하며 열의를 불태우는 인물들을 보면, 그들에게 동화되어 (내가 사는 집도 아닌데) 집세를 내지 않겠다고 우기게 된다.


또한 이 넘버는 각 등장인물들이 같은 멜로디로 다른 가사를 부르며 각자의 상황을 복합적으로 소개하는 아주 재밌는 곡이기도 하다. 곡의 후반부에는 마크와 로저를 중심으로 전체 배우들이 둘로 나뉘며 이러한 가사를 노래한다.


 

[전 애인 모린과 통화한 후 마크와 컴퍼니가 부르는 가사]

어떻게 과거를 잊나

끝없이 내 맘을 뒤흔드는데

깊숙히 파고들어와

구석구석 날 할퀴는데 RENT!


[에이즈에 걸린 로저와 컴퍼니가 부르는 가사]

누구를 믿을 수 있나 

내 몸속 세포마저 날 배신하는데

 

 

마크처럼 나한테도 '깊숙히 파고들어와 구석구석 날 할퀴는' 과거가 있기 때문에, 나는 마크의 컴퍼니가 되어서 그 가사를 가슴 깊이 공감하며 마음 속으로 열창한다.

 

 


2. "Another Day"


 

 

 

클럽 댄서 미미는 로저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하지만 로저는 전 애인처럼 다시 누군가를 잃게 될까 두려워하며 미미에게 마음이 있음에도 그녀를 밀어낸다. 이렇게 "Another Day"라는 넘버는 다가가는 미미와 밀어내는 로저의 대립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미미와 컴퍼니 / 로저]

지금 여기 이 순간뿐 / 넌 뭔데 이렇게

맘을 열고 삶을 놓치지 마 / 내 삶에 불쑥 쳐들어 와

또 다른 길 내일은 없어 / 잘 들어 너 문은 저기 있어

오직 오늘뿐 / 불꽃은 사라졌어

 

 

이렇게 곡의 후반부에는 두 가지 노래 파트가 중첩된다. 미미와 무대에 있는 모두가 로저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기에 지금 이 순간에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노래한다. 동시에 로저는 미미의 말에 반박하는 가사를 노래한다. 이때 그도 미미를 받아들일지 매우 많이 고민하지만 곡이 끝날 때 자신을 붙잡는 그녀의 손을 치워 버리고 만다.


이러한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지만, 공연을 볼 때마다 매번 이 넘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로저를 바라보며 나도 미미와 컴퍼니들과 한 마음이 되어 로저를 설득하고 있다.

 

 


3. "La Vie Boheme"


 

 

 

모린의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로 등장인물들이 음식점에 모여, 보헤미안으로서의 정신을 노래하는 넘버이다. 이 장면에서 처음에 웨이터는 오늘 아주 중요한 손님이 오셨다며 그들에게 오늘만 다른 곳에 가주면 안 되냐고 부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착석해서 와인과 맥주를 시키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베니와 투자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자유와 저항을 외친다.


등장인물들은 길쭉한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단체로 안무를 하다 곡 중반부부터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자유롭게 춤을 춘다. 이번 시즌에 나는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객석인 OP석에서 이 장면을 보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내가 보헤미안들의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어지러운 가사에 당황했지만, 이제는 이 곡이 주는 자유로운 에너지에 빠져들게 되었다. 마치 처음에는 이 예술가들을 당황스럽게 여기다가도 어느 순간 그들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또 한 명의 웨이터가 된 기분이랄까.

 

 


4. "Finale B"


 

 

 

미미가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의식이 돌아오면서, 삶의 유한성과 그에 따른 아낌없는 사랑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그러한 메시지를 담으며 2막을 마무리하는 넘버가 바로 "Finale B"이다.

 

이 넘버에서는 극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는 "Another Day"의 테마가 재등장하며 계속 이어지는 동시에, 시한부적인 삶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Will I?"와 사랑이 없는 삶의 무의미함을 표현하는 "Without You"의 테마가 겹쳐진다. 결과적으로 렌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하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정해져 있고, 심지어 그 끝이 머지않은 상태라면 불안함이 들 수 있다.(Will I?)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Another Day) 사랑 없이 보내는 시간은 말 그대로 '죽어가는' 시간과도 같기 때문이다.(Without You) 따라서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마음껏 사랑해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에이즈에 걸린 극 중 대부분의 등장인물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다 포함된다. 모든 사람의 삶은 유한적이고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관극에서도 이 넘버가 많이 와닿았다. 나는 남/녀 파트가 나뉘는 하이라이트 후렴 부분에서 여자 파트를 마음속으로 매번 따라 부른다. 그리고 곡의 마지막 가사인 "오직 오늘뿐"이라는 가사를 인물들과 함께 외치고 나면,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며 오늘의 나와 내 사람들에게 집중해야겠다는 다짐 또한 굳게 하게 된다.

 

 

 

5. "Seasons of Love"


 

 

 

2막의 시작을 알리는 넘버이자 커튼콜 후 앵콜처럼 다시 등장하는 넘버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무대 앞 쪽에 일렬로 서서 525600분이라는 일 년의 시간을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으로 채워야 한다고 노래한다.


이때 배우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객석에 앉은 관객들과 눈을 맞추어 준다. 그 눈빛은 그들의 노래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걸 알려주고, 그렇기에 이에 동참하는 것을 권하는 따스함이 묻어 있다.


또한 노래 후반부부터는 박수를 치며 노래하는데, 이때 객석에 앉아 있는 모든 관객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배우들을 따라 박수를 친다. 나는 그 순간 무대가 객석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나를 포함한 관객 모두가 무대 위에 있는 듯하다. 극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따뜻한 메시지를 공감하며 노래 가사처럼 그 시간을 사랑으로 채운다.


 

렌트.jpg

 

 

이렇게 뮤지컬 <렌트>는 관객을 극의 또 한 명의 캐릭터로 남겨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이야기 속의 인물들처럼 불안하고 불확실한 현재 속에서 마음껏 사랑할 용기를 얻는다. <렌트> 속 인물들처럼 자유로운 사랑과 예술을 위해 저항하는 보헤미안이 되어보고 싶다면, 극장에서 그들과 만나 하나 되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권해본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명함 임솔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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