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골에 왕래를 거의 끊게 된 건 2년 전, 할머니께서 코로나 감염으로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였다.
당시 가족 중 가장 한가하고 신체 건강했던 나는 마스크 하나만 달랑 맨 채, 일곱 명의 노인 환자들과 한 격리 입원실에서 생활하며 할머니의 간병을 도맡았다.
삐걱거리는 보호자 간이침대 위, 그 와중에 뉴진스의 신곡 Ditto 영상을 꼬박 챙겨 보며 잠들었고, 할머니 환자들과 협소한 병실 안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는 사실에 개탄스러워했고, 죽 한 숟가락 제대로 못 삼키는 할머니를 금세 포기한 채 내 밥은 삼시세끼 잘도 먹어댔다.
그로부터 이틀 뒤, 나는 할머니의 마지막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되었다.
뒤늦게 타지에서 도착한 친가 친척들이 겨우내 마주한 어머니의 모습은 초점 없이 뜬 눈 그대로 화석같이 굳어 생을 마감한 낯선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할머니와 고향 시골에서 기억은 그렇게 필연적이고도 허무하게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과거의 우린 그냥 친해졌고, 당연히 함께였고, 쉽게 웃었고, 자주 행복했다. 다 함께 작고 낡은 TV 화면 속 각종 명절 특선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 웃었고 술래잡기, 달리기 시합을 하며 땀을 뻘뻘 흘렸고, 각종 명절 음식, 간식, 야식 등을 함께 나누며 조금 부족한 듯했지만 그 덕에 음식의 풍미를 더욱 귀하고 느긋하게 즐길 줄 알았다.
날이 갈수록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은 심화되고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에 비해 젊은 층은 턱없이 부족해지며 지방 청년 인구는 일자리 문제로 계속해서 고향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있다.
이 시대에 몇 없는 진정한 교류의 장을 제공했던 가족과 고향. 그 흔한 유흥이나 편의 시설 없이도 서로가 있기에 충분했던 그 시절을 선물해 준 할머니께 정말 늦었지만 이번 기회를 빌어 감사를 전하고 싶다.
조부모님이 아직 계신다면, 살아 계실 때 최대한의 사랑을 서로 주고 받기를 진심으로 권한다.
떠나간 어머니 앞에서 그저 넋 놓고 오열할 수밖에 없었던 친척 어른들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