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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1. 파나히 감독 수상.jpg

 

 

지난 5월, 이란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오!”라는 감탄사가 육성으로 흘러나왔다. 그에 앞서 작년 초, 파나히 감독의 <노 베어스>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노 베어스> 촬영 직후 파나히 감독이 동료 감독들의 구금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하다 구금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영화를 보기 전과 후 모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2023년 석방된 후 파나히 감독은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구성했고, 마침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15년 만에 국제 영화제에 얼굴을 비추게 된 것이다.


파나히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전 <노 베어스>를 보며 이란에서 영화 감독으로 살아가는 파나히 감독의 고민을 마주할 수 있었기에 <그저 사고였을 뿐>의 수상 소식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노 베어스>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하며, 이란의 예술가로서 본인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 자전적 영화이다.

 

 

 

현실은 해피엔딩이 아닌데


 

2. 영화촬영.jpg

 


<노 베어스>의 첫 시퀀스는 튀르키예에서 영화 촬영이 진행되는 현장이다. 주인공은 배우인 자라와 박티아르. 이 때문에 관객은 영화 <노 베어스>의 주인공이 자라와 박티아르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사실 자라와 박티아르는 <노 베어스>의 주인공인 감독 파나히가 촬영하고 있던 영화의 배우였으며, 파나히는 이란에서 원격으로 이 영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탈출에 고전하던 두 사람은 위조 여권을 구해 결국 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되는데, 출발하려는 차를 타다 자라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카메라를 향해 분노를 표출한다. 이는 배우가 아닌 이란인 ‘자라’로서 감독을 향해 분노하는 것이었다. 현실에서는 위조 여권을 가지고 이란에서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왜 우리 영화에선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것처럼 해피엔딩으로 묘사하냐는 것이다. 자라와 박티아르의 이야기는 <노 베어스>라는 영화 속 영화로, <노 베어스>를 제작한 파나히 감독이 이란을 탈출할지 고민하는 지점과 연결된다.

 

 

 

국경에 갇힌 예술가


 

3. 운전하는 파나히.jpg

 

 

파나히가 촬영하는 영화의 조감독은 파나히에게 촬영의 용이성을 위해 튀르키예로 넘어올 것을 제안한다. 하지만 파나히는 출국 금지 상태로, 이란을 나가기 위해선 몰래 국경을 넘는 수밖에 없었다. 조감독과 함께 차를 몰고 튀르키예로 넘어갈 수 있는 국경 앞에 도착한 파나히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국경을 넘지 않기로 하고 다시 이란으로 돌아간다. 파나히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시 국경을 넘으려 시도하는데, 그곳에서 후술할 두 남녀가 국경을 넘으려다 맞이한 끔찍한 최후를 보고 또 다시 탈출을 단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노 베어스>라는 영화가 자파르 파나히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국경을 넘을지 고민하다 끝내 이를 두 번씩이나 단념하는 파나히의 모습은 이란에서 이민을 시도하려는 사람들의 무력한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앞서 파나히의 영화 속 주인공 자라는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는 국경을 넘지 못하지만 영화에서는 국경을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희망적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 파나히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즉 자라가 지적했던 지점은, 실제로 파나히 역시 국경을 넘지 못하는 이란인 중 하나일 뿐이며 파나히의 영화는 진실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파나히는 사진을 찍었을까?


 

4. 마을사진 찍는 파나히.jpeg

 

 

그에 앞서 영화 촬영지 답사차 시골 도시로 잠시 내려온 파나히는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의 사진을 찍는다. 문제는 이 카메라에 찍히지 말아야 했을 연인의 모습이 찍혔다는 데서 시작된다. 파나히가 국경을 넘으려다 넘지 못했던 날 밤, 파나히의 차로 고잘이라는 여성이 뛰어든다. 자신은 솔자르라는 남자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데, 부모에 의해 야곱이라는 남자와 정략결혼이 맺어진 터라 사진에 찍힌 솔자르와의 관계가 들통날 경우 유혈 사태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파나히가 그들의 사진을 찍는 걸 봤다는 9살 남자아이의 증언에 힘입어, 고잘의 아버지와 야곱은 마을 원로들을 대동하여 파나히에게 사진을 확인하겠다고 달려든다.

 

 

5. 카메라 만지는 파나히.jpg

 

 

한편 고잘의 연인인 솔자르는 야심한 밤에 파나히의 집에 직접 찾아와, 고잘과 자신이 한 주 뒤 야반도주를 계획하고 있으니 일주일 동안만 사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파나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런 사진은 찍지 않았다며, 잘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실제로 파나히가 그들의 사진을 찍었는지 찍지 않았는지는 영화에서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파나히는 실제로 사진을 찍지 않았을 수도 있고, 찍었지만 몰래 삭제했을 수도 있다.

 

 

 

기록의 책임은 감독에게


 

6. 창문 보는 파나히.jpg

 

 

이 ‘사진 사건’에선 파나히가 생각하는 촬영에 대한 영향력과 책임감이 엿보였다. 사실 사진 촬영의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카메라가 기록한 것을 취사선택하여 공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감독의 몫이다. 감독의 촬영물이 진실을 담고 있을지라도 그 공개 여부나 범위에 따라 진실은 묻힐 수도, 왜곡될 수도 있다. 고잘과 솔자르는 국경을 넘으려다 수비대에 발각되어 결국 총살된다. 감독이 실제로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공개했을 때 과연 두 남녀의 결말이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촬영물은 누군가에게 중요한 증거가 될 만큼 영향력과 책임감이 큰 기록이란 점은 분명하다.

 

 

 

가로막힌 진실 고백



7. 둘러싸인 파나히.jpg

 

 

‘사진 사건’에선 파나히가 영화 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마주한 무력감도 느껴진다. 고잘의 아버지와 야곱, 마을 원로들은 파나히가 고잘과 솔자르의 사진을 찍었는지, 그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에게 증언을 요구한다. 여기서 파나히는 자신이 증언을 번복하지 못하도록 카메라를 켜고 증언 장면을 촬영해 증거로 남겨두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증언 도중 야곱이 흥분하는 바람에 파나히의 증언은 유야무야되고, 카메라 역시 꺼지게 되며 촬영은 중단된다. ‘진실에 대한 고백이 저지’된 이 상황은 실제 감독으로서 본인이 영화를 통해 비추고 싶은 이란의 진실을 담지 못하는 파나히의 상황과 오버랩된다. 카메라가 쓰러진 자리에서 파나히가 보인 허탈한 표정은, 표현이 저지된 무력한 예술가의 또 다른 표정인 것이다.

 

 

 

“No Bears”, 곰은 없다



8. 노베어스 포스터.jpeg

 

 

<노 베어스> 제목에 관한 의미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마을에 곰이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는 소문이 돌며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리는데, 이를 두고 마을 원로 중 한 명이 파나히에게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곰은 없다. 다만 정치에서 사람들을 통치할 때 ‘공포’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기 때문에 없는 곰을 만드는 것뿐이다.’ 비록 파나히는 이 영화에서 이란의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무력감을 표출하기도 했지만, ‘No Bears’, 즉 거짓된 공포에 속지도, 굴하지도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영화 제작을 금지당하던 감독은 ‘No Bears’라는 의지를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수상 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모든 문제는 해결책이 있습니다. 사회마다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을 것이고 여러분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용기 있게 영화를 만들어 온 그의 삶은 각기 다른 이유로 억압받는 이들에게 큰 위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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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뽀또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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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08 21:56:2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