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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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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 관한 과하게 많은 정보를 드러내는 게 꺼려져 인스타그램 피드를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 내 피드에 남아있는 게시물은 단 4개. 그중 가장 오래된 게시글, 절대 지우지 않는 사진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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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말보다는>을 위한 가상의 대본

「사람이 많이 다녀 막다른 골목이라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췌한 대사.


아니,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짜로 영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보고 듣는 거, 굉장히 중요하지, 너도 알잖아.

내가 얼마나 보고 듣는 걸 좋아하니.

(피식대며) 먹는 것도 물론 좋아하지, 근데

어쨌든, 보이고 들리는 게 성에 안 차니까,

내가 직접 만들어서 보고 듣고 하는 거지.


아니지, 아니지! 내가 왜 언어를 부정하겠니?

언어를 다루는 사람인데, 그거랑 별개로...

영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카메라 쪽을 바라보며) 너는 알아듣지?

(다시 이제껏 말하던 방향을 향해서) 음....

너는 잘 이해가 안 가? 음... 내가

언어로 설명을 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는데,

이게 말로 하기엔 진짜 너무....

 

 

이날 봤던 전시 <말보다는 Beyond Words>는 음악, 미술, 연기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오가는 종합예술인 백현진의 개인전으로, 회화, 조각, 설치, 퍼포먼스, 공연 등으로 구성된 전시였다.


"관람객이 각자 보고 들리는 대로 관람하시기를 희망한다."


작가가 갤러리에 전한 짧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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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KM 갤러리 인스타그램

 

 

전시장엔 작품을 묘사하는 텍스트는 거의 없고 큐알코드 정도만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큐알코드를 인식하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형식이었다. 유일한 텍스트가 바로 내 피드에 있는 사진, 「사람이 많이 다녀 막다른 골목이라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췌한 대사였다. 대사 옆에 있는 큐알코드를 인식하면 연기하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작가는 "작품 설명이 무용지물은 아니지만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언어화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감상을 관람객에게 온전히 맡기고 싶었다"라며, "사람들은 말 그대로 한 명 한 명이 다른 세계다. 주어진 텍스트보단 각자가 느끼는 감각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작가는 <말보다는 Beyond Words>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작가의 퍼포먼스 <요구 Demand>를 진행하기도 했다. 「사람이 많이 다녀 막다른 골목이라 미처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췌한 지문이 포함된 10개의 대사 중 하나를 관객에게 선택하게 한 후, 작가와 관객이 상황을 만들어가는 짧은 역할극 퍼포먼스였다.

 

입장 인원이 50명 정도로 제한되어 있어, 처음으로 갤러리 앞에서 줄을 서서 퍼포먼스를 기다려봤다. 다행히 50명 안에 들 수 있었고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었다. 용기가 없어 참여자로 나서진 못했지만, 친구가 나서서 작가와 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어딘가 울컥했던 것 같기도 하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연출되었고 그 모든 역할극을 숨죽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관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작가가 어떤 대사로 받아칠지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에 놓여있어서 그런지 어딘가 긴장되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긴장이 풀어져 유쾌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작가의 의도대로 우리는 오로지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시간에 집중했다. 사람마다 다 다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작품을 해석하는 방법과 방향도 다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감상이 또 다른 예술이 되기도 한다. <요구 Demand>의 관객의 반응과 대사가 그 순간 하나의 예술이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예술은 어떤 자격이 부여된 전문가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 전시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관객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고, 해석의 자유를 열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전시 서문, 작품 설명과 같은 텍스트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당연히, 굉장한 도움을 준다. 하지만 때때로 작품을 감상할 때 전시장 초입에 배치된 책자를 들고 작품보다도 그 안에 있는 텍스트를 읽느라 바빴던 기억도 선명하다. 어딘지 어렵게 느껴지는 글자들을 해석하려고 할 때면, '작품도 해석하고 작품을 설명하는 글도 해석해야 하네.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그 글과 내 감상이 달랐을 때 오는 이상한 낯섦도 있었다.


학부 시절 나의 작품을 나만의 조형 언어로 번역하고 텍스트화하는 과정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특별히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이상한 지점에서 받은 영감, 지저분하고 복잡한 생각의 중첩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다시 언어로 정리해 선보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과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언어 또한 예술이니까. 그리고 그 작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였을 때 그들이 내게 들려준 감상은 결국 나의 작품을 완성해 주는 근사한 문장이 되어 모였다.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보는 것이니 사람마다 감상이 다른 건 어찌 보면 결국 당연한 결과다.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 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러 명이 같은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쓴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내용이 어떻게 다른지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같은 작품을 봐도 생각이 다르거나, 생각이 같더라도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아트인사이트 대표님과 가졌던 티타임에서 "어떤 글이 좋은 글 같다고 생각하세요?"라는 내 질문에 "모든 글이요."라고 대답하셨던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맞다. 모든 글은 좋다. 재미있다.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애호가들의 언어로 풀어가는 이 공간이 참 좋다고, 새삼 곱씹으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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