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상실과 실패의 순간을 겪을 수밖에 없다. 세상을 살면서 행복한 일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삶이라는 건 늘 밝기만 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다시 살아가야 할까. 어쩌면 그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한두 번 실수한다고 세상이 끝나지 않아. 우리는 넘어졌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결과 때문에 속상해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 하지만 현명한 사람이라면 실수로부터 배워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란다.
- 12쪽 발췌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의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한 독서클럽』은 그 질문에 조용하고 다정하게 답을 건네는 소설이다. 주인공 아브릴은 대도시 바르셀로나에서 광고 기획자로 일한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한순간의 실수로 몇 년간 최선을 다해 다닌 회사를 잃고, 모든 걸 내려놓은 채 할머니의 옛집이 있는 마을로 향한다. 피레네산맥 깊숙한 곳에 있는 트레비예스는 젊은 사람들이 다 대도시로 떠나고, 외지인이 잘 찾지 않는 곳이지만, 조용히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도서관이 있었다.
아브릴은 도서관 사서 일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되며 서서히 자신의 시간을 되찾아간다. 그렇게 치열하게 일을 하며 눈 앞에 있는 성과에 집중하던 삶에서 독서클럽이 생기고, 뜨개질 모임이 열리고, 간식을 나누며 책과 이야기를 함께 읽는 일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쿠키 냄새, 웃음소리, 아주 조심스럽게 꺼내어지는 각자의 사연들이 도서관을 채운다. 그 와중에 아브릴은 뜻밖의 인물, 알렉스를 만난다. 그는 전설적인 해커이자 가석방 중인 남자였다. 우연하게 도서관에서 함께 지내게 된 두 사람은치열한 사회에서 살짝 떨어져 있던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절대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주 오해한다.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내 감정은 복잡해서 쉽게 설명할 수도 없고, 차라리 벽을 치고 혼자 견디는 게 낫다고. 하지만 결국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위로되는 이유는 상처를 극복하라고 다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상실감은 애써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그저 안고 살아가야 할 때도 있다. 잊히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다. 오히려 소중한 것을 잃었다면, 그 감정을 데리고 살아가는 것 역시 삶의 한 방식이다. 아브릴에게 그 덮어두는 방식은 책, 그리고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 온 우주를 내 손안에 쥐고 있어.” 그녀가 말하며 가리킨 곳은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이었다. 책이 곧 우주가 될 수 있다는 것. 우리를 지켜주는 하나의 세계가 책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 책을 둘러싼 공간, 도서관이라는 안식처,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시간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실수했다고, 실패했다고, 그 사람 자체가 무너지는 건 아니다. 누구나 무너질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이후다. 그녀가 그저 하루를 느끼며 살아내기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도서관이, 누구에게는 음악이, 혹은 무대 위 공연이 그렇게 작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 나에게는 공연이 그랬다. 무대 위에서 울리는 소리와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하루 동안 겪은 힘든 일들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마음도 공연장을 나설 때쯤이면 따라왔다. 언젠가 상실감에 파묻혀있던 내게 엄마는 말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이 가장 현실적인 위로라는 걸 알게 됐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라는 말은 결국 그런 뜻 아닐까. 끝나지 않은 오늘을 계속 살아내기 위해, 나를 붙드는 무언가를 찾으라는 것. 책이든 사람이든 공간이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실패에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를.
인간이 마지막으로 잃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유머예요. 우리가 자조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면, 우리에게는 더이상 희망이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 258~259쪽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