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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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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지루한 인상을 남길 뿐이다. 그을린 사랑이라니, 제목만 봐도 어딘가 정열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아놓았을 법한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돌린 데에는 한 가지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 영화나 드라마를 다 보지 않아도 소위 말하는 ‘킬링 포인트’를 담아 작품을 홍보하는 계정이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 세상을 유유자적하던 나에게 우연히 뜬 하나의 영상 속에는 넋이 나간 채로 수영장에 앉아있는 여자가 있었다.

 

스릴러 영화에서나 보던 공허한 표정에 호기심은 폭발했고, 손은 자연스럽게 댓글 창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장면에 대한 해석 대신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영화를 볼 것’. 댓글에 달린 몇만개의 '좋아요'를 믿고 상영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이 영화를 보라는 것은 꽤 좋은 가이드다.

 

하지만 몇 가지 생각을 곁들일 수 있다면 더 재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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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사랑은 2011년 개봉한 드라마 장르의 영화다. '듄'으로도 유명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과 흥미진진한 스토리라인이 매력적인 이 영화는, 130분이라는 러닝 타임 내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어머니의 유언을 따라 쫓아가는 과거와 곧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 그 속에서 나에게 다가왔던 질문은 단 하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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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다른 말로는 악순환이다. 서로에게 복수하고, 반격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복수의 불씨가 옮겨붙는다. 그렇다면 끝나지 않는 무한한 연결 고리의 시작은 어디일까.

 

영화에서 그려내는 전쟁은 단순한 의견 충돌이 아닌, 폭력으로 분출되는 복수의 감정을 담고 있다. 기독교와 무슬림, 민병대와 민간인,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자신만의 신념을 믿으며 복수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지우고 상대를 침묵시키기 위한 폭력에서부터 시작되고 만다.


하지만 사랑은 ‘침묵을 깨려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의 출발은 나왈이 남긴 두 개의 편지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어머니인 ‘나왈 마르완’은 편지를 단순한 애정 표현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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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양립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전쟁과 사랑은 완전히 다른 개념인 것일까?

 

영화 속에서 전쟁은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존재로 묘사된다. 반면 사랑은 그 침묵을 깨려는 행위로 표현된다. 영화 속 잔느와 시몽은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했지만, 복수를 선택하지 않는다.

 

악순환의 고리는 자연스럽게 깨지고, 그 자리에는 사랑이 시작된다. 용기를 내 진실과 마주하는 것, 그 진실과 마주해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그것은 자식들에 대한 나왈의 사랑이자 자신의 바람이었을 것이다.


내가 영화를 보며 던진 질문은 단지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를 묻는 것이 아닌, 어떤 행동이 삶을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성찰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을 기대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영화 <그을린 사랑>.

 

지속적으로 전환되는 시점과 나왈의 인생을 보여주는 일련의 흐름이 굉장히 흥미진진한 영화로, 재미와 교훈 모두 묵직하게 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무지의 상태로 한 장면씩 뜯어보며 머릿속의 생각 공장을 마구 돌리길 바란다.

 

전쟁의 악순환과 인간의 실존적 비극이 즐겁게 얽혀드는 영화, <그을린 사랑>은 6월 25일부터 메가박스, CGV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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