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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유령 포스터.jpg



연극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히 꺼내보고자 한다.

 

나의 취미는 한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시사 프로그램 시청이었다. 일과 중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길었기에 곁에 라디오처럼 재생해 둘 무언가가 필요했고, 때문에 거의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는 시사 프로그램과 함께였던 것 같다. 자기 전에도, 밥을 먹을 때도, 과제를 할 때도 함께했던 시사 프로그램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아주 오래 전, 몇몇 부모들이 생계 등의 이유로 장애가 있는 자식을 일명 '천사 아버지'인 남자에게 맡긴 후, 오래도록 소식이 끊겨 자식의 행방을 찾아나가는 에피소드였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머니는 결국 자식을 찾을 수 있었지만, 자식을 만난 곳은 한 병원의 차가운 영안실이었다. 오랫동안 인간다운 삶과는 먼 생애를 보냈던 그는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병원의 영안실에서 십여 년을 신원 불명의 상태로 지내야 했고, 그런 자식의 시신을 본 어머니는 엄마를 찾아오지 그랬냐며 목놓아 울었다. 병원의 영안실, 혹은 다른 어딘가에 놓여진 무연고자들의 시신이 누구이고,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내게 슬프고도 무척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이 에피소드에 관한 기억이 불현듯 다시 떠오른 것은 연극 [유령]을 보던 중이었다. 극 중 주인공, 배명순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끝에 도망쳐 정순임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삶을 다시 시작한다. 도망치던 중 제대로 행정 절차를 거칠 틈은 당연히 없었기에, 배명순이라는 진짜 이름만을 감춘 채 찜질방과 식당을 떠돌며 생계를 이어나가려 하지만, 세상은 무연고자에, 제대로 된 신분조차 보증되지 않은 배명순에게 차갑기만 하였다. 본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수 없던 힘든 삶의 끝에 배명순은 병을 얻어 가족도, 신분도 확인되지 않은 무연고자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쓸쓸한 죽음 이후, 배명순은 다시 안치실에서 깨어나 자신처럼 지워지고 잊혀진 무연고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들은 분명 세상에 살아 있었지만, 그들의 잘못이 아닌 이유들로 인해 세상에서 지워진 이들이었다. 빡빡한 행정 절차로 가득 채워져 있는 현대 사회에서, 그들은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일자리 하나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것은 고사하고, 학교를 다니거나 생계를 이어가는 일조차 그들에게는 버거웠다.

 

이렇게 세상에서 지워진 세 명의 유령의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건 가장 젊은 유령의 이야기였다. 제대로 된 일자리도, 잠자리도 구할 수 없어 소년원 혹은 교도소를 오가며 살던 사람이었다. 수감 시설에 들어가면 적어도 몸을 눕힐 곳은 있었기에, 크고 작은 비행을 반복하던 그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있던 염원 때문일지, 학교의 앞에서 뇌진탕으로 생을 마감했다. 실제로 소년원을 세상에서 도망칠 구멍으로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고, 비교적 나와 비슷한 나이였기에 더욱 와닿았다. 이 때문인지 단순히 행정 기록에 등록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또래들과 무척이나 다른 삶의 궤도를 그려왔을 그가 자신의 시신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무척이나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런 그들이 몇몇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유령마다 자신의 시신에 대고 마지막 한 마디를 건넬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스스로에게 말한 것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을 향한 연민과 슬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담겼던 눈빛들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때로는 배우의 표정이, 몸짓이 더욱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느낄 때가 있다. 유령들이 자신 스스로를 돌아보던 그 순간이 내게는 특히 그러했던 것 같다.

 

연극 [유령] 속의 유령들은 미디어에서 비추어지는 유령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을 괴롭힌 이들에게 복수를 하지도, 흉가에 숨어 누군가를 놀래키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서도, 죽어서도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롭게 살아갈 뿐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삶들이 있고, 그리고 그런 그들이 어떻게 하나의 유령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이름 없는 존재들의 삶에 대해 궁금했거나, 그들의 삶을 가시화 된 영역으로 이끌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경험이 있는 이라면 누구라도 [유령]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으리라 느꼈다. 연극 [유령]은 이번 주의 일요일(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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