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영화를 찾게 되는 5월이다.
<만추>를 보는 것은 벌써 두 번째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진하게, 그리고 슬프게 떠올리고 싶을 때면 이 영화만큼 어울리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만추>는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다.
영화는 그것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극히 초반부터 훈(현빈)과 애나(탕웨이)의 사랑이 비극적일 것임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먼저 애나는 3일 내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여자다. 그녀가 외부에서 잠시 자유를 얻은 것 같다 싶으면, 그 순간 감옥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는 새 옷을 입고, 기쁘게 웃는 애나의 모습을 바라보다가도 그녀가 처한 현실이 무엇인지 상기하게 된다.
훈 또한 마찬가지로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훈은 자신이 에스코트 서비스를 제공했던 고객 중 하나인 '옥자'의 남편에게 쫓지는 처지다. 물론 그는 자신이 쫓긴다는 것을 관객들이 잊게 할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능글맞고, 자유롭고,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훈은 영화의 중간중간, 친구와 옥자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전화의 내용은 한결같이 어둡다. 훈이 쫓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내용이다.
그렇게 영화는 두 사람 모두 감히 사랑을 꿈꾸기 힘든 인물이라는 것을 알린다. 비현실적인 장면들을 비추다가 , 냉혹한 현실 속의 두 사람을 비추는 연출이 이 사랑이 얼마나 꿈 같은 사랑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관객들에게 이 두 사람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못박는 셈이다. 관객들뿐만이 아니다. 훈과 애나 또한 알고 있다. 자신들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비극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은, 그럼에도 '사랑하기'를 선택한다.
영화 중간에, 애나는 훈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사랑을 위해 죽을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왕징이라는 남자를 그만큼 깊게 사랑해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여자가 바로 애나다. 역설적으로, 그 사랑은 애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애나는 훈과 함께 왕징에게서 받은 상처를 딛고 일어난다. 왕징의 앞에서 울부짖으며 감정을 토해낼 수 있게 된다. 한번 사랑에게 배신당해 마음을 닫았던 인물이,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훈 또한 애나 못지 않게 매력적인 인물이다. 여자들을 만나 에스코트 하는 것이 직업인 훈은 한없이 가벼워 보이는 한량이지만, 정작 그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훈에게는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고, 수면 위로 끌어 올려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사랑에게 배신당했던 애나를 사랑으로 이끌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이런 두 사람의 사랑이 아프고 아름다워 눈을 땔 수 없는 건 나뿐일까. 사랑하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도, 사랑하기를 선택했다는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일까.
영화의 결말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애나와 훈이 재회했는지, 다시 만나지 못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수 있다. 다시 재회했던 아니던, 그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