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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지난 4-5년간 아이돌 시장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많은 그룹이 데뷔했지만, 그들의 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눈에 띄는 그룹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개성이라 할 수 있는 그들만의 색이 뚜렷하게 보이지않았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고 있었다. 눈이 빠질 듯 아프고 힘든 일이지만, 바늘이 존재하는 한 찾을 수 있는 법. 그리고 마침내 그 바늘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한 그룹의 앨범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들었다. 음악적 지식이 충분하지 않아 코드 구성이나 곡의 구조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는 없으나, 키키(KiiKii)라는 그룹이 추구하는 방향성은 명확히 보였다. 트랙리스트를 순서대로 들으며 '자유분방하면서도 주체적인, 자신만의 미래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소녀들'이라는 이미지가 무지개색 잉크로 종이에 꾹꾹 눌러 쓴 문장을 보는 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10대 소녀들의 발랄한 에너지가 돋보이는 'Debut Song'과 '난 비타비타 먹고 힘이 나'라는 위트 있는 가사로 시작한다. 분위기를 단번에 전환하며 진지한 결의를 강렬한 비트에 담아낸 'Groundwork'가 이어진다. 남들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I Do Me'와 '호기심 없는 세상은 재미가 없거든'이라는 청춘의 메시지를 담은 뭘 좀 아는 'There They Go'로 이어진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BTG', 그리고 이 여정을 시작하기 전 힘들었던 시간을 회상하는 '한 개뿐인'으로 끝내며 소녀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I Do Me, I Do Myself, Not Anybody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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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의 제목 UNCUT GEM과 타이틀 곡 I DO ME, 그리고 그룹명 키키(KiiKii)까지. 이 모든 요소는 '자유로운 소녀들'이라는 하나의 테마 아래 일관된 브랜드 스토리를 완성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10대 소녀들의 서사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선택한 방향은 타인에게 휘둘리는 수동적인 길이 아닌,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모험의 길이다.

 

뮤직비디오는 이 독특한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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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대들에게 자유분방한 소녀의 대명사는 '말괄량이 삐삐'이다. 주황색 양갈래 머리와 주근깨, 그리고 두려움 없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다. 뮤직비디오 속 '지유'에게서 이러한 삐삐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주근깨와 소녀스러운 원피스, 신비로운 주황색 톤의 비주얼은 삐삐라는 캐릭터를 잘 녹여냈다. '이솔'의 비웃음은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삐삐의 대담한 매력을 보여주면서 당찬 10대라는 키워드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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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의 배경이 주로 산과 숲, 드넓은 평원으로 구성된 점은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단순한 로케이션 선택이 아닌 키키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일부로 보인다.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고, 미지의 숲을 헤쳐 나가며, 결국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진 평원에 도달하는 인생의 여정을 시각화한 것이다.

 

이제 막 시작점에 선 소녀들 앞에 펼쳐질 무한한 기회와 꿈을 암시한다. 판타지 세계의 신비로운 호수와 전설의 검을 든 이미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Veni KiiKii Vici


 

아이돌 산업의 특성상 트렌드에 민감해야 생존할 수 있다. 특히 취향이 급변하는 MZ세대와 알파 세대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촌스럽다' 또는 '시대에 뒤처졌다'는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아이돌의 생명력은 급격히 감소한다.

 

다행히도 키키는 2025년의 트렌드를 정확히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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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terest Predict가 2025년 핵심 트렌드로 선정한 'Moto Boho'는 레더 재킷과 같은 바이커 룩에 자유로운 보헤미안 스타일을 접목한 패션이다. 키키의 뮤직비디오 의상에서 이 트렌드가 완벽하게 구현되고 있다.

 

집시와 히피 문화에 뿌리를 둔 보헤미안 스타일은 자유와 반항의 상징으로, 10대의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는 키키의 콘셉트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보헤미안 룩이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유라시아적 감성을 담고 있는데, 키키 멤버들의 이국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비주얼이 이 감성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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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목할 만한 트렌드는 'Mix and Max'다.

 

단순한 믹스 앤 매치를 넘어서 다양한 아이템을 과감하게 레이어링하는 이 스타일은 2025년 패션계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키키는 음악 방송에서 모자, 체크 셔츠, 다채로운 액세서리, 복합적인 패턴까지 총동원한 스타일링으로 이 트렌드를 선도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과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키키는 그 미묘한 경계를 좋은 쪽으로 잘 넘어섰다.

 

매년 수많은 아이돌 그룹이 데뷔하고 또 많은 그룹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K-POP 시장의 냉정한 현실이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업계의 인정을 받으며,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는 그룹만이 살아남는다. 키키가 앞으로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원석 같은 소녀들의 여정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빛나는 성공으로 채워지길 기대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처럼, 이들이 앞으로 어떤 보석으로 빛날지 지켜보는 것은 음악 산업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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