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피라미드가 중요한게 아니야
이집트 국립박물관 근처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피라미드로 향했다. 피라미드로 가려면 지하철로 Giza역에 간 다음 그곳에서 미니버스를 타야 한다. 보통 관광객에게는 인당 10파운드를 부르는데, 여기서 더 깎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지인은 보통 5파운드에도 태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도 흥정하려고 여러 버스를 도전했지만, 우리가 동안(?)이라 만만해 보였는지 쉽게 깎아주지 않았다. 결국 인당 9파운드로 문이 없는(!) 미니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진짜로 열고 닫는 문이 없었다. 짜릿하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도착해서 올라가는 길에 어떤 호객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터번 같은 것을 씌워주었다. 그런 다음 언제나 그렇듯 돈을 요구했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우리는 진짜로 돈이 별로 없어서 그 사람은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 덕에 스카프를 얻었다. 호객을 당하고 오히려 돈을 버는 기적이 일어났다.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쭉 걸어가는데, 호객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사람들은 계속 ‘니하오’거리면서 따라오고, 햇볕은 뜨겁고, 공기는 건조했다. 길은 심각하게 울퉁불퉁하고 모든 곳에는 낙타 똥이 널려있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는 피라미드가 아니라 피라미드에 널린 셀 수 없는 낙타 똥이 아닌가 생각할 무렵, 중간에 어떤 호객하는 아저씨가 또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아주 친절하게 오셔서 호객으로 받은(?) 그 터번을 한 친구에게 씌워 주셨고, 낙타와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돈을 요구하셨지만 우리는 도망쳐 버렸다! 아무리 귀찮고 거슬려도 돈은 절대 안 낸다.
피라미드 가장 밑에 있는 돌에 앉아, 피라미드가 만든 그늘 안에서 잠시 쉬었다. 가까이에서 본 피라미드는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돌 하나가 엄청나게 컸다. 실제로 보니까 이 돌을 어떻게 옮기고 쌓은 건지 너무 궁금해졌다. 또 궁금한 것은, ‘대체 비둘기는 왜 서울이 아닌 이곳에도 존재하는가’이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영원한 집일 뿐만 아니라 온갖 비둘기의 안식처였다. 생긴 것도 한국 비둘기랑 비슷해서 더 소름이었다.
다시 돌아가는 길에 피라미드를 잡는 착시 사진을 찍었다. 우리끼리 잘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외국인 아저씨가 와서 “나도 그 바보 같은 사진 찍고 싶어요”하며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하셨다. 순간 폰을 들고 튈까 친구들하고 상의했지만, 응당 한국인이라면 혼을 다해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그럴 틈이 없었다. 다시 Giza 역으로 갈 미니버스 흥정을 했다. 피라미드에 올 때보다 조금 더 싼 가격에 미니버스를 탈 수 있었고, 역시나 이 버스도 문이 없었다. 이집트는 역시 개방적이야. (물리적으로.)
리빙포인트: 터번은 문이 없는 차를 탈 때 끝없는 모래 바람으로부터 기관지를 보호할 수 있다
작전명 청춘
이집트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항구가 있는 누웨이바에서 일어난 일이다. 좁은 차를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누웨이바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문을 열었더니 침대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는 쥐똥이 보였다. 하하.. 세면대와 샤워기에서는 녹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놀라지 마라. 우리가 5000원짜리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우린 돈 없는 청춘들임으로.
숙소 사장님께 방을 바꿔 달라고 요청 드린 후 먹을거리를 사러 마트로 나갔다. 왜냐하면 누웨이바는 항구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도시이다. 도시? 아니 시골이다. 그 흔한 식당도 제대로 된 곳이 없어서 마트까지 멀리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는 길에 이집트 아이들을 만났다. 누가봐도 관광객인 우리가 신기했는지, 새총으로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직접적으로 맞지는 않았지만 되게 신박한 경험이었다. 근데 진짜 신기한 건 우리가 한국 사람들이라고 하니까 BTS? 이렇게 말했다는 거다. 생각보다 K-POP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이런 이집트 시골까지 진출했다니.
숙소로 돌아와서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재료를 씻는데, 중간에 물이 끊겼다. 이젠 놀랍지도 않아. 사장님께 물이 끊겼다고 말씀드리니까 손수 수도관에 물을 채워 넣으셨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이집트가 아니다. 내일 점심 먹을 곳을 검색하고 있었는데, 친구 하나가 급하게 오더니 우리 숙소 세면대에서 물이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당황한 것보다도, 물도 돈이겠지 싶었다. 그래서 바로 물통에다가 물을 가득 담고, 세수까지 야무지게 했다. 정말 징한 여행객들. 돈이 이렇게나 무섭다니. 충분히 물을 즐긴 후, 세면대를 고치려고 이것저것 하다가 아예 수도관이 터져버렸다...!! 갑자기 물이 사방으로 튀며, 진짜 난리가 났고, 동시에 너무 웃겼다. 친구들이랑 겨우겨우 수도관을 붙잡고 애처롭게 소리쳤다. 그럼에도 사장님은 본인 전화하시느라 우리에게는 관심도 없었다. 여러 번의 시도와 호소 끝에 사장님을 불렀고, 그분도 살짝 당황한 것 같았지만, 수도관을 열심히 때리시더니 잘 처리해 주셨다. 역시 기계 고칠 때 때리는 건 만국 공통이다. 다행히 그 이후엔 아무 문제 없었다.
한바탕 소동을 마무리하고 저녁 준비를 마무리했다. 계란 볶음밥이랑 감자 볶음, 누룽지, 석류랑 오렌지까지! 생각보다 아주 맛있었고 후식까지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다 먹고 사다리 타기로 설거지 당번을 정했는데 재우라는 친구랑 내가 걸렸다. 족히 20년은 쓴 듯한 수세미와 10초에 한 번씩 물이 막히는 싱크대와 설거지에 철학을 가지고 계시는 조재우님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환장한다 진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얼룩을 용납할 수 없다는 조재우가 싱크대보다 더 징하다. 그래도 재우랑 같이 해서 즐거웠다. 진심.
이런 모습의 주방이었다
이젠 이런 상황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진짜로 재우랑 설거지할 때 즐거웠다. 믿어줘라. 아무튼, 이집트 다합에서 식당 하나 때문에 땀 뻘뻘 흘리던 아이는 수도관이 터져도 침을 튀기며 웃는다. (1편 참고) 불행이 와도 이젠 절망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하며 반짝이는 눈을 잃지 않는다. 그만큼 여행을 직접 책임지면서 우리가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아직 삐걱거리는 부분은 많고, 갈등은 이곳저곳에 널려있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을 수 있다. 넘어지든 힘이 빠지든 돈을 뺏기든 수도관이 터지든, 어떤 일이 와도 멈추지 않은 우리의 여행은 훗날 우리의 삶에 다가올 비와 바람, 천둥의 소리를 이겨 춤을 출 음악을 선물해 줄 것이다.* 어떤 음악을 받을 수 있을까?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이 여행은 빗속에서 추는 춤이 가장 아름답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 작전명 청-춘 - 잔나비
숙소 자체는 예뻤다
부록: 공항 노숙에 대한 고찰
그래. 이것을 쓸 때다. 우린 노숙을 했다. 무려 4번. 덕분에 숙박비를 많이 아꼈고, 허리 건강은 버렸다. 우리의 노숙은 불침번제였다. 혹시 모를 도난을 대비해 한 시간씩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문제는 시간이다. 맨 처음이나, 기상 시간 직전 시간에 걸리면 한 번에 쭉 잘 수 있지만 새벽 3시나 4시 같이 애매한 중간 불침번은 잠을 개운하게 잘 수 없다. 우리는 가장 공정한 가위바위보에 각자의 운명을 맡기고 불침번을 정했다.
노숙하는 장소도 꽤나 중요하다. 먼저 사람들의 이동이 잦은 곳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방해가 되기 때문에 최대한 구석진 곳이어야 한다. 또한 7명이 모두 머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며 충분한 개수의 콘센트과 벤치가 있어야 한다. 핸드폰 충전과 용이한 짐 보관을 위해서다. 그리고 화장실이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곳은 흔치 않아서, 시간을 나눠서 콘센트를 쓰거나 한층 내려가서 화장실을 가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가장 적절한 곳을 찾기 위해 공항을 많이 돌아다녔다. 노숙이라고 아무 곳에서나 자지 않는다.
첫 번째 노숙은 헝가리 공항이었다. 헝가리에서 바르샤바 경유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노숙을 했다. 이때만 해도 다들 쭈뼛쭈뼛 눈치를 보면서 침낭을 깔았다. 그리고 재우의 강렬한 빨강 침낭을 처음 마주한 곳이기도 하다. 나는 팔걸이가 있는 벤치에서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 몸을 구기며 잠을 청했다. 차마 침낭을 깔고 바닥에 누울 수 없었다. 우리가 자리 잡은 복도가 좁아서 지나가는 누군가를 방해할 것 같았고 내 침낭은 매우 얇은 편이라 바닥이 너무 딱딱할 것 같았다. 그렇게 비몽사몽인 채로 하루를 꼬박 새웠다.
정말 강렬한 침낭. 왜 저러고 돌아다닐까.
두 번째는 키프로스에 도착했을 때이다. 우리가 키프로스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두 번째라서 좀 용기가 생겼는지 침낭을 깔고 바닥에서 잠을 잤다. 첫 번째 노숙 때는 별로 안 피곤했던 것 같다. 피곤하면 어디서든 잘 수 있다. 바닥이 어쩌고 침낭이 어쩌고 그거는 아직 살만하다는 소리다. 세 번째 노숙은 키프로스에서 이스라엘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서 했다. 이스라엘 비행기가 새벽에 있었기 때문에 미리 키프로스 공항에서 잠깐 자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린 이 공항에서 2박을 해결한 것이다.
마지막 노숙은 이스라엘 공항이었다. 경유지인 바르샤바로 가는 비행기가 오전에 있었고, 이스라엘 숙박비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공항 노숙을 선택했다. 적절한 공간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이 움직였고, 결국 화장실은 멀지만, 아늑한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이때는 여행이 모두 마무리된 시점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지만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젠 바닥이 매트리스처럼 느껴지는 수준에 도달했다. 내 허리야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