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연한 봄날의 금요일 저녁. 성수동 골목골목 가득한 식당과 카페들은 문을 활짝 열고, 품을 넓혀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지쳐 있던 와중, 반가운 온기가 가득했던 그날의 성수는 발걸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들뜬 분위기에 힘입어 찾아간 곳은 성수아트홀. 그곳에서는 봄밤의 그윽한 분위기를 더해줄 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11일, 성수아트홀에서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의 첫 내한공연이 펼쳐졌다. 재즈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마티스 피카드를 주축으로, 재즈 신의 떠오르는 유망주인 베이시스트 파터 맥앨리스터와 드러머 조에 파스칼로 구성된 그들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곳곳을 돌며 젊고 감각적이며 매혹적인 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이전의 몇몇 공연으로 국내 재즈 팬들과는 이미 구면인 마티스 피카드이지만, 그가 자신의 트리오 라인업을 이끌며 갖는 첫 내한공연인 만큼 많은 재즈 팬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그들은 전통적인 재즈 요소들을 충실히 녹여내면서도 독특한 연주 기법과 신선한 화성적 접근을 더한 여러 곡들을 선보이며, 약 1시간 30분 동안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재즈의 시간을 선사했다.
마음이 오가는 순간
다양한 음악 공연 관람을 좋아하지만, ‘재즈’ 분야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는 것은 처음이라 이번 공연의 방향성이 어떻게 색다를지 궁금했다. 일반적인 공연의 형태는 퍼포머가 준비한 여러 공연 내적·외적 요소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일방향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마티스 트리오의 공연은 달랐다. 그들의 공연은 연주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그 모든 과정을 포괄하고 있었다. 마티스 피카드는 피아노를 연주하면서도 계속해서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의자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피아노 줄을 직접 뜯으며 다양한 음을 만들어내는 그의 리드에 맞춰 관객들은 손뼉을 치고, 함께 곡을 따라 부르며 공연을 함께 이끌어갔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관객들도 점점 달아오르는 열기에 이끌려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들의 공연에 있어서 관객과의 소통은 필연적인 요소였다. 관객들의 호응에 부응하듯, 그들은 다시금 강렬한 연주를 선보였고, 공연은 더욱 생생한 열기를 뿜어냈다.
관객들의 반응에 만족하는 듯한 그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그들의 음악적 감수성의 원천은 다름 아닌 ‘공연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관객을 조련하는 듯한 마티스의 꿈틀거리는 눈썹, 파터의 방긋한 볼, 조에의 신이 난 듯이 흔들리는 머리칼은 그 사실을 증명하는 듯 했다.
다채로운 조화의 삼각형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들의 자리는 온전한 삼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관객과의 소통 이전에, 그들은 그 삼각형 안에서 재즈의 flow를 서로를 향해 흘려보냈다. 그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바라보고, 눈짓을 주고받으며 공연의 강약을 조율했다. 그 단단한 재즈의 삼각형이 있었기에 관객들의 서투른 참여 역시 멋들어진 공연의 요소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점은, 그들 각각의 태생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었다. 마티스는 공연의 초입에서 자신의 팀원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출신지를 빠뜨리지 않고 언급했다. 프랑스, 미국, 영국 출신의 서로 다른 세 연주자의 정체성은 삼각형의 각 꼭짓점을 정확히 찍어내며 각자의 색깔을 드러냈고, 동시에 균형 잡힌 트리오를 만들어냈다. 즉, 다양한 배경과 경험들이 삼각형 안에서 어우러지며 풍부한 상상력의 자양분이 되었고, 그것이 결국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만의 독자적인 재즈로 이어졌다고 본다.
특히 프랑스인 아버지와 마다가스카르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현재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프랑스인임을 밝히며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마다가스카르인 어머니를 향해 작곡한 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드넓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마다가스카르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신의 뿌리를 잃지 않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며, 다채로운 사람들과 어우러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탄생시키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야말로, 마티스 피카드 트리오만의 ‘재즈’가 아닐까 해석해본다.
선율 너머의 진심
첫 곡이 끝난 뒤, 마티스는 관객들에게 반갑게 인사하며 곡의 이름을 소개했다. “Hello.” 비록 곡이 다 끝난 뒤에야 제목을 알게 되었지만, 첫 만남의 반가움은 이미 어렴풋이— 아니, 분명히—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후 이어진 Space Between Breath, Penthouse 등의 곡들 역시 모두 직관적인 제목을 지니고 있었기에,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이미지와 감정들을 따라가며 상상력을 발휘했고, 그렇게 공연의 흐름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곡은 본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다. 마지막 곡의 제목은 Inner Child 였다. 내면의 아이, 즉 어른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어린 존재를 가리키는 이 단어를 마지막 곡의 제목으로 내세운 마티스는, 그 곡에 담긴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관객들에게 되새겨 주었다.
확신에 찬 눈빛으로 “No matter what... your job is to love your inner child”라고 말하는 마티스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 있던 금요일 저녁, 마티스 트리오가 들려준 재즈의 다정한 위로 덕분에, 공연장을 나설 무렵에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살랑이는 봄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재즈’란 무엇인가? 라는 다소 추상적인 질문에 마티스 트리오의 공연은 하나의 답을 툭- 하고 건넨다. 내가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재즈의 과정이기에, 이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상상하고 표현해보라고 말이다.
마티스 트리오가 선사했던 재즈의 시간을 통해서 배웠던 나릿나릿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