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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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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픔은 기이할 정도로 끊이지 않는다. 매년 돌아오는 4월, 지금 제주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이미지로 뒤덮였지만, 나는 다시금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꺼내 펼쳐본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주인공 경하의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리는 2014년 한강이 집필한 소설 소년이 온다의 존재를 알기에 경하를 작가 한강과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구분가지 않는 이야기와 문체 속에서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인선이 등장한다.

 

이 이야기의 두 주인공 경하와 인선의 직업은 소설가와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예술로 과거를 포착하는 사람들이고, 포착한 과거가 잊히지 않도록 사력을 다해 고통받는 이들의 전달자가 되는 사람들이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뻔뻔스럽게-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한강, 문학동네, 『작별하지 않는다』, 2021, 23p.

 

 

한강은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 그 고통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다.

 

인선은 목공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검지 손가락이 절단된다. 치료를 받기 위해 인선은, 3분에 한 번씩 절단된 부위를 바늘로 찔리는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에 대한 묘사는, 글을 읽는 우리의 손끝마저 저릿하게 만들 정도로 참담하다.

 

하지만 끔찍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 고통을 당하는 인선은 보는 사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픔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인선을 제대로 마주하고,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뿐이다.


인선은 제주도 집에 있는 앵무새 아마가 굶어 죽지 않도록, 경하에게 대신 먹이를 챙겨 달려고 부탁한다. 명백하게 무리한 부탁임에도 경하는 급하게 제주도로 내려간다. 하지만 아마는 이미 죽어있었다. “내가 살리러 왔어. 움직여봐. 내가 구하러 왔어.”라고 아무리 외쳐도 이미 죽은 아마를 다시 살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죽은 아마를 흙에 묻으며 경하는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자신의 새도 아닌, 이 정도의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는 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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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질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같은 책, 57p

 

 

끔찍하더라도 봐야만 한다. 직접 읽고 그 고통을 느껴야 한다.

 

손가락 두 마디가 잘린 사람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참담한데, 4.3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사랑을 준 적 없는 작은 앵무새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슬픔이 몰려오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 헤아려 봐야 한다.

 

1947년 제주에 내렸던 눈은, 2025년의 제주에도 내린다. 지구의 하늘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내린 눈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결국 모든 것은 순환하고 반복된다. 그날 제주도에 내린 눈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맞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의 일이다. 작가가 미지의 수신인에게 보낸 이 기록물은 우리에게 전해진다. 너무 무거운 책임감을 가진 일이라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 편지는 우리에게 닿았다.

 

사적인 작별로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의 작별로 이어지고, 결국 작가는 그 아픔과 작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그 작별을 기억하되, 그 기억과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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