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팻말 세우기 Part.1 – 사랑과 희망

글 입력 2024.05.2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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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말 세우기


 

최근에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시 말해, 내가 쓴 글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도저히 짧게는 요약할 수 없어 일정한 기준에 따라 고르고 고른 글 몇 편을 보내주곤 했는데, 고작 그것으로는 전부 말해질 수 없고 충분히 설명될 수 없음을 느낀다.


나라는 인간의 복잡성을 납작하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설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물을 여러 편의 글들로 이제껏 쌓아올려왔다. 그러나 순서없이 들꽃과 잡초 사이에 널려있으니 한 번쯤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유사한 것들끼리 모아 줄세우고 팻말을 꽂고 적절한 각주와 해석을 달아주어야겠다.


그간 써온 글들을 일정한 주제로 모아 정리하고, 필요하다면 훼손된 맥락을 복원하고, 문단사이를 도약하거나 비약된 논리를 보충하고, 당시의 비관이나 낙관으로는 보지 못했던 부분을 채워넣으려 한다.


읽다보면 과거의 글이 여전한 지금의 고민들에 납득할만한 답을 전해주는 순간도 있었다. 순수한 감탄과 경탄으로 그 글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고 싶다. 글쓴이에게 글은 애증의 대상이지만, 드물게도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면이나 순간이 있기도 하다.


그 면들을 잘 포착해 환절기에 꺼내입은 바람막이처럼 둘둘 두르고 싶다. 냉정한 찬바람같은 냉소와 회한에서 나를 지켜주고, 사람들이 어디서든 나를 잘 알아볼 수 있게 말이다. 그러므로 몇 편의 글을 골라 다시 쓰는 이 글은 나에게 있어 일종의 자기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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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희망


 

한동안 사랑과 희망에 대한 글을 썼다. 삶을 버티기 위해 썼고,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해 써온 글들이라 거슬러 읽다보면 저절로 그때가 재생되어 다양한 감정과 향취를 불러일으킨다.


당시에는 내가 얼마나 취약한지 오래 생각했고, 무너질듯 휘청이는 내가 슬프게 안쓰러웠는데 이제와서 작년의, 재작년의 기록들을 보다보면 내가 얼마나 단단한 인간이었는지 보인다. 그 많은 일들 속에서도 흐려지지 않는 단단한 알멩이를 지닌 아보카도 같은 인간이랄까. 그래서 여전히 웃으며 볼 수는 없지만 울면서 보지 않을수는 있게 됐다.


어쩌면 내 글들은 화분에 꽂아놓은 조화같은 것들이라 일종의 허세이고, 살아남기 위해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들을 적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나를 증명하는건 내가 피워올린 단단함이다. 나는 그런 시간들에서도 마음을 단단하게 뭉쳐낼 수 있는 인간이다. 사랑 많은 아보카도 같은 인간.


글 쓰는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듯하다. 번거롭고 귀찮고, 오래걸리고 어렵고, 당장 큰 수익도 되지 않는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자연스레 궁금증이 생기나보다.


여러번 언급한대로 나는 이제 쓰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기본적으로 내 글은 불만족과 불만, 일상의 권태와 우울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글은 힘들어 어쩔 줄을 모르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더 나은 삶을 향한 지지대이자, 이 외로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소통의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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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을 거라고 믿으며, 어쨌든 사랑으로 살자


 

[에세이] 다리를 다쳤다. 이 이야기는 나의 다친 다리에서부터 시작한다. 다행히도 지금은 재활까지 잘 되어서 걷고 뛰는 일에 불편함이 없지만 당시에는 두 달간 목발을 짚었고, 반 년이 넘게 다리를 살짝 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정말 많이 아팠다. 징그러워 차마 올리거나 보여주지 않았지만 올려둔 사진보다 다리가 두배는 부어올랐고 온통 피멍으로 범벅되었다. 비가 오는 새벽에는 어김없이 잠에 깨서 진통제를 집어삼켰다. 신기하게도 발목으로 일기예보가 됐다. 장마기간 내내 저기압이 하늘을 가릴 때마다 발목이 쑤셔서 언제 비가 내릴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몸과 함께 마음도 많이 다쳤던 시기였다. 몸을 쓰는 곳에서 일하다보니 다친 다리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있었고 무언가를 같이 하지 못할 때면 미안함과 자괴감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어떤 과정에서 다쳤는지 모두 알았기 때문에 부담을 주는 사람은 없었으나 자아효능감과 자존감은 떨어져만 가고 업무는 과중했다.


하루에 120통 가까이 되는 전화를 해가면서 업무를 처리했고 계급과 경력에 밀려 떠맡게 되는 업무도 많았다. 그 즈음에 2년 가까이 만나던 연인과 헤어졌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관계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너졌다. 몸과 마음이 전부 쉽지 않던 나날이었다.


그럴 때는 [에세이]뒤로 걷는 연습을 했다. 지나온 걸음을 오래오래 되짚어봤다. 살아오면서 좋았던 날들을 반추하면서 어떤 가능성들을 추출해냈다. 내가 뭘 하면서 좋아했더라,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기대들이 배신당하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막막할 때는 음악을 들으며 오래오래 길을 걸었다.


힘을 주어 걷지 않으면 다리를 약간씩 절게 되던 때라서 한참을 걷다보면 막막해질 때가 있었다. 어느 세월에 돌아가지, 갈 곳 없는 걸음이 향하는 길이 길게만 보이고 발목은 아파왔다. 그렇게 아프거나 지루해지면 몸을 돌려 뒤로 걸었다.

 

그러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보이는 시야가 달라지고 발목은 왠지 덜 아프고 내가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생각이나 감정들이 머리 뒤 뒤통수에서 나와는 관계없는 무언가가 된 것 같아서. 그런게 필요한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뒤로 걷기,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기, 당연하게 속해있던 세상에서 잠시 빠져나오기, 생각을 완전히 돌려 다른 것을 상상하거나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보는 그런 시간 말이다.

 

 

우리는 어떤 이득도 이유도 없이 시작되는 그런 순간의 진심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이 인생의 해결책은 아닐지라도 사랑이 있는 삶은 우리를 조금 덜 외롭게 만들어준다. 함께 걸을 사람 하나쯤 있다면 '어쨌든' 괜찮을 것이다. 어느 날에는 괜찮지 않더라도, 그것은 어쨌든 사랑이라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득실을 따져서 하는 것은 거래이지 사랑이 아니다. 이득을 바라지 않고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고, 반대로 대단한 무언가를 주지 않고도 부족한 모습, 가시 같은 결함을 가지고 그대로 사랑받을 수 있는 것. 그런 순간이 우리를 조금 더 성장하게 만드는 것일테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하고, 바꾸어 놓기도 한다.

 

<어쨌든 사랑> 중에서

 


사랑은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꿈꾸는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정말 가능할까. 우리의 이해는 짧은 순간에만 유지되는 착각 같은 거라서 나는 이미 멀어진 꿈을 꾼 기분이다. [에세이]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


사랑이 답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꿈꾸는 순간들은 종종 우리를 생각해본 적 없는 세계로 데려간다. 그래서 자꾸만 사랑을 생각하나. 살다보면 불가피하게 빠져드는 사랑의 순간이 있고, 스스로에게 상처주고 서로를 할퀴면서도 떠나지 못히는 순간도 있다. 그 즈음에는 그냥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도 지난 사랑에서 내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친구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좋아했던 누군가의 자작곡에 그런 제목-[에세이]어쨌든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슬픔이 너무도 가득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런 글들을 썼다.

 

나는 냉정한 머리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도 희망과 사랑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사후처리로 직관에 논리를 부여하는 일이더라도 그럴듯하게 설명해내고 싶다. 삶을 다해 설득해내고 싶다. 우리 [에세이]사랑으로 살자고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단순히 이성간의 감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고, 자신의 지나온 시절을 잊지 않고 호의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것. 아무도 의미없이 죽지 않고 누구도 너무 오래 외롭거나 고통받지 않는 세상. 나는 더 좋은 것들을 꿈꾸고 사랑과 희망을 생각한다.

 

힘든 시기를 지날 때는 꼭 중얼거리게 되는 위험한 혼잣말이 있었고, 나는 더 나은 계절을 만들기 위해 그것을 다른 단어로 태어나게 해 자주 되뇌었다. [에세이] 더 좋을 거야라고 외치면 왠지 많은 것을 견딜 수 있었다. 다가올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나을거라고 기대해볼 수 있었다. 지나온 글들은 대부분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비슷한 시기를 지나는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힘을 조금은 수월하게 얻을 수 있다면 좋겠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마음들을 기록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내게 시기별로 메모장에 자주 등장하는 뭉장들이 있곤 하는데, 얼마 전까지는 '더 좋을거야'였다. 내 앞에 다가올 미래가 불안하고 현재는 불만족스러워 제발 그랬으면 하는 심정으로 주문을 외우듯 자꾸만 되새겼다.

 

절박하게 믿고 싶었고, 어느 날은 가만히 믿고 있기 두려워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계획까지 착실히 세워가기도 했던 하나의 구호였다. 더 좋을 거야. 더 좋아지게 만들 거야. 메모장에 적고, 입 밖으로 소리내말하고, 나와 닮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종종 꺼내놓던 잛은 한 마디

 

그러니까 이건 믿음이자 기대이고 동시에 다짐이기도 했다.

 

<사랑으로 살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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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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