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더 좋을 거야

내가 나를 달래는 방식
글 입력 2022.10.0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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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개월이 나에게는 정말 많은 의미가 있었다. 그 시간동안 내가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면 이렇게 많은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밀도가 높았다. 좋은 일과 즐거운 일이 있었고, 나쁜 일도 힘든 일도 쉬지 않고 일어났다. 어제 본 글에서는 인생은 작은 기쁨으로 큰 아픔을 덮으며 살아가는 거라던데 큰 기쁨으로도 작은 슬픔이 잘 덮어지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일도 있었다.


누구의 삶에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사정과 아픔이 있다, 하지만 내가 크기를 견주어 보기 어려울 정도의 사연을 여러개 듣고 나서도 나의 작은 아픔들은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내가 엄살이 많은 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기쁜 일과 아픈 일, 누군가의 사정과 나의 사정은 아주 별개의 일이라서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어영부영 넘어갈게 아니라 잘 들여다보고 달래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같은 사연도,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도, 나와 주변인에게 치명적인 질병도 없는, 밖에서 보면 은근 안온하고 평온한 나날처럼 보일 요즘의 내 일상이지만 감정적으로 안정되지 않는 내 마음을 달래는 일이 해결되지 않는 요즘 나의 숙제다.

 

 


밀린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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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겉옷을 챙겨입고 무작정 나왔다. 산책을 하러 나오면 공원에서 목줄 하나씩을 붙잡고 서성이는 어른들의 풍경이 좋았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으며 몰려다니고 꼬리를 흔들고 그러다 서로를 향해 짖기도 하는 강아지들을 사이에 두고 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예뻐보인다. 작은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 가족이 산책을 나와 카메라를 들고 여기를 보라며 걷는 장면도 귀여웠다. 평소라면 굳은 표정으로 서로를 스쳐갔을 텐데, 동물과 아이가 함께 있으면 다들 마음이 조금 약해지는 걸까. 그런 풍경을 보고 있으니 나도 마음이 조금 말랑해졌다.


시간을 두고 공원에 앉아있거나 오래오래 걷다보면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럼에도 역시나 산책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 공원에 멍하니 앉아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생기지 않는다. 오늘은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 세상이 나만 이 자리에 두고 흘러가버리면 좋겠다. 시간을 견디지말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라는 문장이 있었던 어느 책을 떠올리면서 흘러가는 시간을 애써 붙잡지 않고 가만히 둔다.


채워져있다가 비워진 자리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더 많이 그리워하는쪽이 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참을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결국 참지 못해 연락 한 통을 남기고, 다른 알림만 울리는 핸드폰을 힐끔거린다. 아마 답장은 오지 않을 것이다. 에어팟 프로 주변음 허용 모드를 켜놓고도 주변음이 묻힐정도로 큰 소리로 음악을 듣는다. 제작년까지 한동안 이명에 시달렸고 요즘도 이따금씩 귀의 통증을 느끼지만 그냥 그렇게 한다. 정밀검사를 했을 때 귀에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단지 신경이 너무 과민하다고, 내가 세상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괜찮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어쩌면 그냥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 거다.


시간을 겪으며 사람이 점점 성장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내가 그동안 시간을 그냥 통과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적지 않은 사건과 시간을 지나왔는데 나는 배운 것도 자란 것도 없이 그저 옮겨져 온 듯한 착각. 그동안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착각. 나 같은 건 앞으로도 사랑받기 어려울 거라는 착각. 감정에 휩쓸려 오버를 하다보면 스스로도 ‘에이 그건 좀 아니지’생각한다. 착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덧대어 쌓아가며 그 생각들이 착각일 뿐이라는 것을 인지시킨다. 깊은 가짜 우울에 기대어 작은 슬픔들을 날려버린다. 그럴리가 없다고, 괜찮다고 다독여본다.


휴식이 길어져 조금 피곤하고 답답해지기 시작하자 벤치에서 일어났다. 다시 집으로 향하는 길에 본 달은 크고 밝았다. 추석은 추석인가보네 생각하며 마음이 몽글해진다.




9월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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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Day의 Wake me up when september ends를 들으며 글을 쓴다. 노래를 들으며 9월이 지나면 더 좋을거야.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9월에는 생일도 있었고 10월이 되면 어쩔수 없이 다시 바쁘게 살아야 하니까, ‘9월까지는 힘들어해도 나를 좀 놔둬’하는 어리광이기도 했다. 지금의 불안을 합리화할 유예기간이 필요했다.


마치 반환점을 바라보는 기분으로 저 앞을 지나면 조금은 달라질거라고. 눈앞에 보이는 저기만 지나면, 다시 내가 아는 풍경일테지만 오르막이었던 그 길이 내리막으로 보일거라고 희미하게 믿었다. 지금은 반환점 앞 마지막 언덕이라고. 꾸준히 걸어온만큼 힘들겠지만 조금은 상쾌한 기분이 될거라고 나는 희망을 쓴다. 그러고나면, 조금은 내리막을 즐겨도 괜찮겠지. 10월이 되면 들통날 거짓말이어도 괜찮다. 따스한 말로 9월을 넘기고 나면 10월의 나도 잘할 수 있을 테니까.

 

20대 초반에 난 현실에 악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들 사실은 선의를 위해 애쓰고 있는 거라고, 더 잘하고 싶고 서로에게 잘해주고 싶어 노력하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근데 아닌 경우도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타인의 노력에 묻어가려하고, 표현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정말로 상대방을 미워하고 상처주려 애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아닌 척 하지만 나도 언젠가 그 중에 있었던 순간이 떠올라 서글퍼졌다.


무슨 마음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너무 많이 궁금하고 알고 싶었던 표정들이 있었는데 해가 지나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며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날도 있었다. 그때 네가 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짐작하며 상대의 상처받은 눈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 모습에서 이전의 내가 보여 서글펐지만 나 역시 별다른 말을 보태지 않고 돌아섰다. 이해하고 싶은 순간들을 쌓아가고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게 지난 몇 년간 내가 걸어온 길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테지.

 

요즘은 잘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좋다. 잘하면 좋겠지만 성과가 있지 않아도 되는 것들.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한 그런 일들을 찾아서 즐기는 게 좋다. 그러다 칭찬이라도 잔뜩 받는 날에는 마음이 들뜬다. 잘해야 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자꾸 도망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렇게 무책임할 때 달래지는 마음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어떻게든 하나씩 이해하고 좋은 일을 찾아 긍정하고 반성하고 작은 아픔들을 들여다보면서 나를 달랜다. ‘좋은 시절 다- 갔다’싶을 때도 있지만 이제 더 좋은 나날이 올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면서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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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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