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재활일기] 다리를 다쳤다

형, 나 다시 걸을 수 있을까?
글 입력 2022.07.3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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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나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아련하게 물으면 옆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대답이 들려온다. “당연하지” 나도 알고 있다. 시간이 좀 필요할 뿐 다시 걷고 뛰게 될 것이다. 나보다 걱정할 마음을 알기에 조금은 짓궂게 장난을 던져보는 것은 나의 습관이다.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보다 괜히 먼저 오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오히려 긴장이 풀리기도 하는 것 같다.


전에 읽었던 책에서 아프고 슬픈 일은 더 좋은 것으로 바꾸라고 했다. 시 같은 것으로. 웃음 같은 것으로. 애써 웃기지도 않는 장난과 농담을 늘어놓으며 불안한 마음을 감춘다. 그러나 사실 저 말은 과장된 장난만은 아니었다.


다친 다리가 걷잡을 수 없이 부어올라 일주일이 넘게 붓기가 빠지지 않고 발목 주변은 푸르뎅뎅한 멍이 들었다. 반깁스로 고정해놓은 발은 불안한 통증에 땅을 디딜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충분한 시간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다리에 얼음을 대놓고 붓기가 빠지기를 바라며 소파에 누워있다보면 마음이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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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후 하루 지난 날의 상태, 시간이 지나며 붓기와 멍이 더 심해졌다)


 

왼쪽 발목이 꺽여 돌아가면서 인대가 파열됐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인대파열은 일상생활로의 복귀까지 보통 8주를 진단한다고 한다.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할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고 그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거라는 것을 나도 알았다. 머리로는. 그러나 나의 상태는 3미터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편하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주변에서 배려해준 덕분에 한 주 정도는 집에서 휴식과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곧 다시 출근도 해야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실소를 흘리며 남몰래 일기장에 적어둔 말이기도 했다.

 

“나 다시 예전처럼 걷고 뛸 수 있겠지?”


약 4주간 반깁스와 아주 강한 타입의 보호대를 하고 다녔다. 목발을 짚고 다니다가 넘어져 한 쪽을 부러뜨려먹기도 하고 일을 하느라 한 쪽 다리를 절면서 여기저기를 바삐 오가기도 했던 우여곡절이 많은 날들이었다. 다리를 다쳐있으면서 몸의 다른 부분도 부쩍 안 좋아졌다. 몸의 좌우군형이 틀어져 허리랑 골반에 통증이 오고, 매일 누워있고 앉아서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하니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찼다. 같이 무언가를 할 때도 다리 때문에 자꾸 빠지게 되니 스스로 위축되고 주변의 시선도 그리 곱지는 않았다.


재활을 시작했을 때 ‘다친 부위만 재활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재활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꽤 공감이 가는 말이다. 몸과 마음은 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한 쪽이 문제가 생기면 영향을 받는다. 재활을 하면서 천천히 내 몸의 상태를 살피고 집중하면서 마음도 함께 돌보려고 노력중이다.


다치고 나서 마음에 답답함이 참 많아졌었다. 부주의해서 다친 스스로에 대한 속상한 마음, 통증과 무기력하게 누워있으면서 생긴 막막한 마음에 더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꽤 힘들게 했다. 그런 와중에 해야 하는 일은 또 많아서 하루에 7~80통 가까이 되는 전화를 해가면서 업무를 처리하고 내 일이 아닌 일과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책임을 받다보면 자꾸만 응어리가 졌다.


가족이라서, 친한 친구라서 나눌 수 있는 감정과 이야기가 있지만 반대로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누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겪었던 일들을 설명하면서 풀리는 감정도 있지만 설명하며 다시 떠올리는 것 자체가 버거워서 따로 다시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곁에서 같이 겪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항상 옆에 있어주는 것은 아니라서 달리 말하지 못하고 목 끝까지 올라온 쓰디 쓴 말들을 삼켜야 하는 날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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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무게를 다루는 웨이트 운동이나 빠르게 뛰는 것은 아직 무리지만 시간을 들여 오래오래 걷는 것만은 할 수 있다. 런닝머신 걷기, 사이클 타기, 계단오르기 이 세가지가 요즘 내가 가장 열심히 하는 운동이다. 음악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평소에 보고싶었는데 못봤던 영상과 콘텐츠를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지루하고 오래 힘든걸 견뎌야해서 유산소운동을 싫어했었는데 무리하지 않는 강도로 운동하면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재밌어졌다. 한 발 한 발 발을 뻗으며 걸으면 마치 휘청이는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균형을 잡듯 몸도 마음도 제자리를 찾는다. 이렇게 내 몸에 차근히 집중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별거 아니지만 내 몸과 작은 변화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마음도 재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한 달 정도를 애쓴 덕분에 발목의 가동범위는 정상수준으로 돌아왔다. 인바디를 재보면 부쩍 늘었던 체지방도 눈에 띄게 줄어가고 있다. 마음에 남아있던 짐도 어느 정도는 정상수준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이 필요했나보다. 하지만 아직은 통증도 꽤 남아있고 예전처럼 운동하기는 어렵다. 티가 잘 나지 않는 마음에도 마찬가지겠지. 다친 다리가, 다친 마음이 완전히 예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더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예전과 같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더 좋아질지도 모른다. 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으니까. 마음에도 다리에도 재활이 잘 이뤄지길 바라며 오늘도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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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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