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의 유산을 되새겨 현재를 이해하다. [문화 전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의 흐름
글 입력 2024.05.0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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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대한극장이 폐업한단다. 대한극장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영화관이다. 1958년 개관한 이후, 현재까지 운영했으니 66년 만이다.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처럼 60대 이상이 되면 늙은이 노(老)가 붙는다. 대한극장 역시 사람 나이로 치환하면 늙은이 노(老)가 붙을 만하다. 그렇다고 오래된 건물이 폐업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오산이다. 대한극장에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영화 역사가 숨쉬기 때문이다.


1959년에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가 개봉했다. 마차 경주, 십자가. 관객들에게 인상적인 장면을 선사한 ‘벤허’는 2017년 뮤지컬로 관객들에게 다시금 찾아왔다. ‘벤허’의 원작은 1880년 루 월러스가 발표한 소설이라고 할지라도 영화와 뮤지컬 사이에는 자그마치 58년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부모님 손을 잡고 영화를 보던 아이가 시간이 흘러 부모가 되고 조부모가 되어 뮤지컬을 보러 가도 충만한 시간이다. 문화는 돌고 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역사가 깊은 문화 시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2024년 3월 폐업한 학전블루 소극장과 함께 조명해 보고자 한다.

 

 

 

과거가 없으면 현재도 없다.


 

꽁꽁 얼어붙은 영화 시장 속에서도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아니면 이건 어떤가. 개봉 11일 만에 칠백만 관객을 돌파했다. 수치만 봐도 이들이 높은 성과를 냈음을 알 수 있다. 2023년 11월에 개봉한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비교적 비수기로 꼽히는 11월에 개봉해 천만 관객을 기록했다. 2024년 4월 24일 개봉한 허명행 감독의 ‘범죄도시4’는 무려 ‘트리플 천만’을 앞두고 있다. 두 영화의 악역 전두광과 백창기가 같은 작품을 한 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학전이 제작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서는 가능했다. 가수 윤도현의 첫 공연장 또한 학전이다. 학전은 ‘아침이슬’을 작곡한 대표 김민기가 설립한 이후로,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야말로 K-콘텐츠 전성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수상했다. 그러나 영화 ‘기생충’에서 음악감독을 맡은 정재일은 학전에서도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음악감독은 음악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즉, 정재일 감독의 역량이 없었다면, 영화의 매력이 덜해졌을지도 모른다. 더불어 학전을 설립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꿈을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을 보면서 꿈을 키운 젊은 예술가들도 없었을 것이다. 과거는 알게 모르게 현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낭만이 묻은 뒷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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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학(學), 밭 전(田). 배움의 밭. 밭에 씨앗을 뿌리고 작물이 자라기를 기다리듯, 학전에서도 ‘씨앗’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스스로를 ‘뒷것’이라고 칭하며 배우들과 가수들을 ‘앞것’이라고 대우한 김민기가 그런 사람이었다. 김민기는 6개월 일해 십만 원 벌던 시절에 계약서를 쓰고, 4대 보험에 가입시켰다. 그뿐인가. 당시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설경구를, 진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황정민을 무대 위로 올렸다. ‘○○ 밟으실 수 있으시죠?’라는 대화가 오가는 현대와 매우 다른 행보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을 헐뜯는다. 더 많이 소유할 것. 돈이 안 되면 가치가 없는 것처럼 군다. 그런 세상에서 김민기는 아르바이트하던 불확실한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었다. 김민기가 준 ‘기회’라는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서 톱스타가 되었다. 그렇기에 33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 기꺼이 한마음으로 동참했을 테다. 기껏 해도 ‘레이블 콘서트’라는 명분으로 모이는 현대에 사회적 신분은 중요하지 않음을 알리는 학전이다.

 

 

 

보이지 않는 뒷면


 

대한극장이 폐업한 원인도, 학전이 폐업한 원인도 결국은 같다. 적자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은 세부적으로 다르다. 김민기는 배우 개런티를 주기 위해 전 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팔려고 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최대한 끌고 가려고 하다가 건강상 문제로 놓아버린 것이다. 학전은 거인이 이번 생, 정말 잘 살았노라 하고 쉼을 찾아간다면, 대한극장은 생존이 목적이다. 업계 1위인 CJ CGV도 자금난을 겪었다. 그런 처지에 대한극장이 버틸 리 만무하다.

 

영화 한 편에 15,000원인 시대다. 이제는 다수가 영화관을 방문하는 대신 OTT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CGV는 단순한 영화 관람을 넘어 ‘공간 사업자’로서 확장하고 있다. 2020년부터 ‘아이스콘(ICECON)’을 선보여 콘서트, 북토크, 디지털 뮤지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대한극장 건물은 공연장으로 재건될 계획이다. CGV의 ICECON처럼 대한극장의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을 대중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다. 어떤 기억은 매우 소중해서 평생 잊지 못한다. 평생 잊지 못할 공연, 어렸을 적에 가족과 함께 본 경기, 평소 좋아하던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더니 DJ가 읽어준 순간 등 소중한 순간들은 ‘평생’이라는 이름표가 붙는다. 우리는 문화가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현재였다가 과거가 되었어도 ‘일부’는 ‘일부’일 뿐이다.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해준 기억들이 잘 있는지 들여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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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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