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위하여! - 힙노시스 [영화]

글 입력 2024.04.2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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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좀 듣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LP 커버들.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무지갯빛 프리즘, 불 타는 사람과 악수하는 [Wish You Were Here],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Houses of The Holy] 등.... 현대에서까지 그 예술적 가치가 여전히 회고되는 독특하고 감각적인 작품들을 탄생시킨 사람들. 바로 힙노시스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진실>은 <킹스맨>의 콜린퍼스가 제작하고, <모스트 원티드 맨>의 안톤 코르빈 감독이 연출한 음악 산업 황금기의 순간들이다. 1970년대 록 음악에 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는, 시사회에 가기 며칠 전부터 핑크 플로이드 앨범을 시도 때도 없이 재생하곤 했다. 2003년에 태어난 내가 그때 당시의 감성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했다. 그러나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도, 101분간의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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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스톰의 집 문 앞에 시드가 휘갈긴 낙서 Hipnosis. 힙(hip)하고 똑똑하다(gnosis)라는 뜻을 지닌 이름처럼, 스톰 소거슨과 오브리 파월은 그들만의 디자인을 해나간다. 영국 케임브릿지에서 어릴적부터 친했던 로저 워터스, 데이비드 길모어, 시드 바렛이 핑크 플로이드 밴드를 결성하고 첫 앨범 커버 디자인을 맡긴 것이 그 시작이다. 힙노시스는 그 뒤로 레드 재플린, 폴 매카트리, 섹스 피스톨즈, 텐씨씨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LP 커버를 디자인하며 그들만의 독자적인 디자인 내세운다. CG도 포토샵도 없던 시절, 암실에서 직접 뽑아낸 사진들로 탄생한 빛나는 예술작품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다큐멘터리는 총 17개의 앨범 커버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은 4,000여 점이 넘는 시청각 자료는 실제로 그들의 작업 현장에 함께 있는 것과 같은 현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덕분에 힙노시스 회사가 지닌 역사나 LP 커버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이고, 스톰과 폴(파월) 혹은 그 주변인의 관계성까지를 생생히 알 수 있었다. 불같고 까탈스러운 성격을 참을 수밖에 없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고 창의적인 스톰의 아이디어는. 머릿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구현해 내는 폴의 촬영 실력을 만나 완성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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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Led Zeppelin의 [Houses of The Holy] 앨범 커버 제작 과정은 힙노시스의 디자인 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꽤나 선정적이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신비로움과 오묘한 신성함, 그리고 아름다움. 아이 두 명의 몸에 은빛 스프레이를 뿌리고, 북아일랜드의 자이언트 코즈웨이에서 촬영한 작품이다. 당시 엄청난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촬영을 진행했으나, 생각했던 만큼의 경사가 아니었기에 머릿속에 그려지는 구도를 완전히 실현시킬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폴은 돌의 모양이 모두 팔각형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결국 사진을 직접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사용해 훌륭한 결과물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실현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힙노시스다운 것이다. (물론 폴은 어느 정도 예산을 고려하고자 했지만 말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35kg 조각상을 옮겨 찍은 폴 매카트니의 [Greatest]와,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정신과 소파 위 양을 올려놓은 10cc의 [Are you normal] 도 그러하다. 그들은 '사서 고생하는 것'과 '진짜 오리지날을 추구하는 것'의 경계에서 젊음과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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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자체의 작품성과 연출력도 꽤나 주목할 만한 포인트이다. 다큐멘터리는 말 그대로 fact를 나열하는 것이기에, 지루하지 않게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 관건이다. 록 음악 자체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 관객들도 흡입력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힙노시스 : LP 커버의 전설> 다큐는 그런 부분에서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17개나 되는 에피소드를 유연하게 연결해낼 수 있었던 것은 스타일리쉬한 편집기법과 그래픽이 잘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잘 잡아낸 유머스러운 포인트와 귀를 사로잡는 록 음악의 사운드가 지루할 틈 없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다큐가 그렇듯 유명인들의 개인 인터뷰를 편집한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인터뷰 사이사이의 거리감을 짧게 연출한 점이 좋았다. 개개인의 인터뷰였지만, 같은 장소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기분이랄까.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그때 그 시절의 청춘과 낭만을 떠올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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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그들의 추억과 낭만은 핑크 플로이드의 [Animal] 앨범 커버 사진에 담긴 스토리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실제 돼지 풍선을 띄워서 촬영하고자 하는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당일에 어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고, 결국 저 멀리 날아가 버린 돼지를 수습하기 위해 누구에게 전화했어야 하는지... 우당탕탕 그 시절 한바탕 소동이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하늘에 떠 있는 돼지 풍선을 사진으로 건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앨범은 후작업으로 완성되었지만, 그때의 돼지 풍선 소동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눈은 하나같이 반짝거렸다.

 

개인적이고 사소한 에피소드는 힙노시스라는 위대한 디자인 회사의 창립자라는 이미지를 허물고, 어리고 패기 있던 청년에게 다가갈 디딤돌을 마련해주었다. 자신의 전성기, 열정이 가득했던 한때를 같이 추억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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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quaring The Circle : The Story of Hipgnosis >. 영문학과인데도 해석이 잘 안되지만, 분명한 건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이라는 제목보다는 훨씬 더 근본적인 메시지를 세련되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힙노시스라는 회사에 대한 인지도가 훨씬 더 적은 한국이기에 왜 이런 제목으로 번역되었는지도 알만하다. 그럼에도 힙노시스가 이 제목을 본다면 썩 달가워하진 않을 것이다. squaring the circle 이라는 멋진 제목을 살리지 못했으니 말이다.

 

squaring the circle, 즉 원적 문제는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 전해온 기하학의 3대 문제 중 하나라고 한다. 원의 면적과 같은 정사각형을 자와 컴퍼스만으로 작도하는 문제인데, 결국 실현 불가능함을 증명하고 현재는 근사값을 구하는 방법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원을 정사각형으로 만들기'에서 '원'은 LP판을 연상시키고, '정사각형'은 LP 커버를 떠올리게 한다. 원형의 음악을 정사각형의 커버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것. 또는, 둥글둥글 각이 없는 원으로는 정사각형을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계속해서 도전함'을 힙노시스답게 내세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아시스 밴드 노엘의 딸이 LP 커버를 모르는 것처럼, 오늘날의 앨범 아트워크는 어쩌면 그저 아이튠즈에 표시되는 작은 정사각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해서 맴도는 엔딩 크레딧 삽입곡 10cc의 'Art for Art's sake' 처럼. 더 이상 LP를 듣지 않을지라도, 아트워크를 펼쳐보지 않을지라도, 앨범을 사지 않을지라도. 예술은 그저 예술로 남아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 많이 들면 어떻고. 비효율적이면 어떤가. 무모하고, 용감하고,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힙노시스를 위하여. 그리고 그들의 심장 뜨거운 열정과 낭만을 함께 느낄 수 있을 나, 그리고 모두를 위하여. 예술을 위한 예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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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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