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슨 법칙이라고? - 연극 실종법칙

글 입력 2024.04.1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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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법칙 포스터.jpg

 

 

시놉시스

 

행방불명된 유진, 그를 찾아 나선 유영. 그리고 만나게 된 민우.


대기업에서 승진을 앞둔 유진. 그녀가 휴대폰을 꺼놓고 행방불명 된 지 24시간이 지났다. 유진의 언니 유영은 유진의 오래된 남자친구 민우를 의심한다. 평소 민우에 대해 꺼림직한 느낌을 가졌고 실종되기 하루 전날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유진의 고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민우의 범죄에 대해 강한 심증을 가진 유영은 민우의 자취방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해가 들지 않는 눅눅하고 컴컴한 민우의 반지하 방. 그곳에서 마주한 두 사람은 날 선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생각지 못한 진실이 하나 둘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예술의전당과 극단 커브볼의 공동주최 연극 <실종법칙>이 2024년 4월 10일부터 5월 12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황수아 작가는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을 시작으로 2023년 통영연극예술축제 희곡상 수상, 아르코 창작산실 대본 공모 선정  등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문새미 연출가는 “관객들이 이 작품을 추리 장르물 자체로 즐겼으면 한다. 유추해왔던 사건의 실마리가 종국에 풀리는 쾌감을 느끼기를. 그러나 동시에 각 인물들에 대한 실타래가 엉켜버린 채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으로 돌아갔으면 한다”고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 말을 전했다.

 

<실종법칙>의 등장인물 유영 역은 최근 드라마 <신성한, 이혼>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노수산나 배우와 뮤지컬 <에곤쉴레>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나인뮤지스 출신의 금조 배우가 더블 캐스팅으로 함께 하며, 민우 역에는 뮤지컬 <렛미플라이>와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보여준 이형훈 배우와 드라마와 연극, 영화를 오가며 활동하는 심완준 배우가 더블 캐스팅 되었다.

 


실종법칙 컨셉사진.jpg



조금 일찍 도착해서 리플렛을 읽고 위에 포스팅 한 기사를 보다보니 이번 연극에 기대감이 올라갔다. 수요일 8시, 평소 같으면 관객이 많을 시간이 아닐 듯하다. 그런데 오늘따라 어쩌면 이리 많은지, 관객석도 꽉찼다. 시놉시스에서 보았듯 사실 내용은 굉장히 심플하다. 실종된 여인을 찾는 두 사람의 날 선 대화이다.

 

셜록 홈즈나 코난,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의 광팬인 필자는 이런 추리물을 사랑한다. 이 광팬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같이 추리를 풀어가는 탐정 st. 극이 보여주는 바만 충실히 수용하는 관객 st.

 

난 후자다. 추리 능력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급박히 이뤄지는 추리는 따라가기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추리물을 연극으로 보니까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기에는 생기는 여유가 있었다. 이들이 추리물을 통해서 무슨 말을 전달하고 싶었을까 그것에 집중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우리의 친구나 가족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사람의 깊은 고민과 고통은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리플렛에 적힌 문구를 보며 한참 유행했던 정신 건강 및 상담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난 이런 부류의 프로그램이 성공하면서 정신 건강, 고통을 수용하는 사회의 분위기가 될 줄 알았지만, 역으로 고통조차 셀링 포인트로 소모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들었다. 남들이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울어야 하고, 현대 전문가들이 치료하고 분류할 수 있을 병명이어야 한다. 고통에도 조건이 갖춰져야 TV에서 다뤄지고, 소비된다.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고통이 생기자, 그 외의 고통은 오히려 더 깊은 심연으로 사라져야 했다.

 

난 이번 연극이 우리 사회의 이러한 '척'을 잡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종에 법칙이 어디 있겠는가. 그 감각에 붙일 수 있는 이론이 어디있으며, 그 고통을 계산하는 계산기가 어디 가능하겠냐. 그럼에도 극의 제목은 실종 '법칙'이다.

 

등장인물들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네가 범인이다, 아니다 쟤가 범인이다 싸운다. 그러면서 우리가 생각해 온 범죄의 법칙들을 시험한다. 이걸 듣는 관객은 박쥐가 된다. 여기도 그럴듯하고 저기도 그럴듯한 범죄 동기뿐이다. 결국 극을 따라가다 보면 유진의 실종과 관련 없이 셋 다 감옥에 가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선과 악의 교차로에 서서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 교차로는 연극을 보며 느꼈던 어느 순간보다도 현실같았다. 결국 모든 사람은 회색지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흑백으로 나눌 수 없는 지대이다. 이걸 강제로 나누고, 법칙과 원칙을 세워 분류하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법은 있어야 하며, 규칙은 존재한다. 연극에서도 결국 사건의 진실을 보여주고, 범인을 지목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짜 삶에선 선을 행하다가도 악을 마주하고, 악마의 손을 들어주는 신을 목격하기도 한다. 원칙과 혼란은 우리 삶에서 반드시 균형을 이뤄야 할 두 진영이다.

 

어디서 진실을 마주할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말이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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