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가벼움과 무거움 - 500일의 썸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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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사랑의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블루 발렌타인>이라는 영화를 소개하고 그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기 위해 떠올렸던 제목(당시에는 가장 적절해 보였다!)이었는데, 지금 이 제목을 <500일의 썸머>라는 영화를 이야기하고자 다시금 꺼내들게 되었다. 이 제목만큼 두 영화에 어울리는 것이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자 변명이 될 수 있지만 결국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키워드가 일관되게 영화의 플롯을 관류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블루 발렌타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 이어서 새로 이야기하게 된 '500일의 썸머'. 사람들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사랑의 여러 성질들 가운데 가벼움과 무거움만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고 대조함으로써 나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쓰고 있자니, 마치 이번 글의 이름을 '사랑 4부작 - 마지막 영화' 따위로 정해도 괜찮을 것만 같다.
그래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사랑의 가벼움과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하고자 한다. 근래 사랑에 관한 글을 너무 많이 썼다는 생각이다. 언젠가 다른 형식과 주제로 사랑에 대한 글을 쓰게 되겠지만 그전까지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다.
썸머,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 운명으로 시작되어 이루어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혹은 지난 사랑의 경험들을 통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했을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다는 것은 반드시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사실, 저기 말야...... 진지하게 생각해서 이러는 건 아니야. 그래도 괜찮아?"
문자 그대로 썸머는 가벼움의 영역에 속한 인물이다. 운명을 믿지 않으며 사랑은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여자. 이러한 인물의 전형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래 전부터 멜로 영화 혹은 소설에 등장해왔다. 물론 현실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남녀 간의 관계를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사랑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타인으로부터 어디까지 이해받을 수 있는 걸까? 그녀는 톰과의 관계를 시작하기 전, "전 제 자신으로 존재하고 싶어요."라는 말로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드러냈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항상 '썸머'로 남을 수 있겠지만 연애를 시작한다면 이내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되어 그러한 관계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부담이 된다.
사실 이러한 부분은 우리 모두에게 항상 고민거리가 된다.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본인이 결코 그 관계를 가볍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관계는 정의되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전환되는 새로운 단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일이 요구된다.
그리고 썸머는 톰이 아닌 다른 남자와 함께 그 일을 실행했다. 그녀는 톰과의 관계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운명적 요소들을 이것저것 찾아내거나(혹은 만들어내거나), 다른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정의되는 것을 넘어 한 남자의 아내로 정의되는 일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여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 누군과와의 만남에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걸린 시간이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왜 그녀는 톰과 함께 있을 때 그러한 결심을 할 수 없었을까? 톰이 생각보다 부족한 남자여서도 아니고, 썸머가 철이 없고 생각이 어렸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다가 알았어."
정말이지 이 대사 외에 다른 이유는 찾을 수가 없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다. 톰과 사랑할 때는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을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누던 어느날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 것이다.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란 그렇게나 자연스럽다. 함께 무거움으로 넘어가지 못해 홀로 가벼움에 남게 된 남자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톰, 무거움에서 가벼움으로
톰이 자신의 여동생에게 썸머와 관련된 고민을 털어놓을 때, 여동생은 이렇게 말한다.
"오빠가 바라는 대답을 듣지 못할까봐 무서운 거야. 그래서 지난 몇 달 간의 아름다운 환상에 숨으려는 거지."
이는 운명적인 만남으로 사랑을 시작했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들이 그러한 운명에 배신당하기 전까지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A를 운명(무거움)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A 하나만 운명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의 입을 통해 B와 C 역시 운명이라는 것을 확인하려 든다.
섬머가 그렇게 어느날 아무렇지 않게 무거움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을 톰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은 함께 했는데, 그 사랑이 나에게만 운명이었다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그래서 그는 결국 본인이 무거움의 영역을 떠나 가벼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사랑에 대한 섬머의 사고방식을 자기화한 톰은 그녀와의 이별 이후 사랑을 불신하는 회의주의자가 되었다.
그러나 섬머는 톰에게 마지막 순간 잔인하게도 그가 옳았음을 확인시켜준다.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운명과 무거움에 대한 그의 태도가 옳았음을.
그리고, 실제로 그가 옳았다! 비록 그가 더는 운명과 필연적인 만남, 사랑의 무거움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여름(Summer)이 지나니 가을(Autumn)이 온 것이다. "꼭 그 사람만 특별한 건 아니야."라는 여동생의 대사처럼, 톰은 곧 새로운 특별함과 무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쯤일까?
아마,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다가 알 게 될지도.
[유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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