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프랑스 미술관 탐방기] 극적인 순간의 사진가, 위지 [미술/전시]

포착과 풍자를 카메라 안에 담다
글 입력 2024.04.1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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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드문 비가 오던 3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파리에서 열린 한 사진전에 다녀왔다. 한국에도 제법 유명한 사진가인 앙리 카르티에의 재단에서 열린 전시다.

 

사실 나는 미술 전시를 즐겨 보기는 했지만, 사진 전시를 본 적은 없었다. 사진은 그림보다 조금 더 창작에서 먼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포착하는 것이 사진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표를 사고 미술관에 입장하면, 화이트 큐브에 앞서 앙리와 그 부인의 몇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미처 내 카메라 안에 담지는 못했지만 놀라운 사진들이었다.

 

앙리 카르티에가 보도 사진을 예술적으로 찍기로 유명했다던데 그 이유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색의 대비와 구도를 기가 막히게 사용한 작품을 감상하며 사진이 이토록 예술적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 때문이다. ‘사진’에 대한 아리송한 기대와 재정의를 품으며 특별전이 진행 중인 화이트 큐브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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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은 지금 ‘Weegee, Autopsie du Spectacle’ 전을 진행 중이다. (2024.01.30.~2024.05.19.)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위지, 극 劇의 부검’ 정도가 되겠다.

 

위기는 자기 작품을 두고는 “범죄 현장을 극장 장면처럼” 여겼다고 하곤 한다. 이는 미국 사회가 사건을 하나의 쇼로 치부하곤 하는 행태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문장을 읽기도 전에 그가 작품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단박에 알아차렸는데, 그것은 위기의 작품이 잘 만든 극의 마지막 장면, 혹은 연극의 포스터 장면과 같은 압도감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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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k pape, arrêté pour avoir tué un petit garçon par strangulation, New York, 1944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진이 예술인 것이구나, 순간성을 보존하는 것이 바로 사진이구나'하고 되새겼다. 살인 사건이나 도난 사건 등을 주제로 한 위지의 사진을 보면, 마치 사건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끄트머리에 내가 유일한 목격자이자 관객으로 서 있고, 내 눈앞에서 사건이 진행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수십 년이 지난 2024년에 화이트 큐브 안에서 위지의 사진을 보고 있지만, 그의 카메라 너머로 간접적으로 그 시간대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자세한 전후 관계도 모르고, 그 순간에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가졌을 법한 감정과 분위기를 나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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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euble endormi pendant une vague de chaleur, lower east side, New York, 1941

 

 

위지는 20세기 초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에 이민한 가정이었다고 한다. 으레 20세기의 이민 1세대가 그렇듯, 극심한 가난을 경험한 위지는 개념이 아닌 현실로서의 ‘가난’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위에 보이는 사진에서 우리는 건물의 비좁은 공간에서 몸이 설킨 채로 푹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여자아이의 팔에는 작은 새끼 고양이도 있다.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이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임을 이해하게 되는데, 여기서 나는 위지의 사진이 가진 입체성을 느꼈다.

 

보통 가난을 포착하는 사진은 그 타자화된 시선을 노골적으로 숨기지 않는다. 배가 곪아 홀쭉해진 아이라든지, 한눈에 보기에도 열악한 환경이라든지, 가난 때문에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표정 말이다. 그런 것들도 가난의 일부임에 틀림없지만, 어쩐지 ‘이것이 너희가 기대한 가난이야’하며 가난을 겪지 않는 사람들을 충족시키는 시선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위지의 사진에서는 그런 경제적 상태의 대상화가 덜하다. 가난이란 덜 타자화되었고, 인물들은 더 입체적이다. 나는 어쩐지 아이들의 사진 앞에서 떠날 수가 없어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곤히 자는 아이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이 고양이와 어린아이들은 잠에서 깨면 어떤 삶을 살아갈까? 사진 밖에 담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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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Caplin, New York, 1943

 

 

그는 1935년부터 1945년까지 뉴욕 언론사에서 근무하였고, 위와 같은 사진을 남겼다. 그 이후 그는 1948년부터 할리우드의 스타들을 왜곡된 형태로 찍는 캐리커쳐 작품을 남기기 시작했다.

 

극적이고 멋진 사진을 찍던 작가가 갑자기 풍자 사진을 찍다니, 갑작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죽은 조폭, 불타버린 집 앞에서 우는 여성, 차 사고에 지쳤다’고 언급하며 할리우드에서 그가 만나는 스타들을 우스꽝스러운 렌즈로 찍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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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liyn Maonroe, distorsion, 1955

 

 

뉴욕 언론의 사진사 위지의 전시를 볼 때, 나는 충실하고 발빠른 그의 조수가 된 것만 같았다. 극적인 공간에 극적인 순간 자리하는 그의 행보를 빠지지 않고 좇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후반 할리우드 스타들을 풍자하는 작품을 볼 때는, 마치 독창적인 추상화 작품을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새롭고도 낯선 즐거움에 휩싸였다.

 

위지는 훌륭한 사진가일 뿐만 아니라, 사진전을 처음 감상하는 내게 사진이 이토록 예술이고 사회 그 자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회화가 가진 재미가 관람객의 부드러운 상상을 끌어내는 것이라면, 사진의 힘은 관람객을 사진이 찍힌 바로 그 순간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닐까?

 

어쩐지 앞으로 회화 전시 못지않게 사진 전시도 자주 보러 가게 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박소은 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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