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픔을 폭식으로 달래는 사람들 [음식]

일명 ‘스트레스성 폭식’에 대하여
글 입력 2024.04.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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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사람들은 얼마나 먹으면 만족할까? 통상적으로 1인분이라 부르는 양이 정해져 있지만,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1인분이 있다. 그런데 자신만의 1인분을 먹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1인분을 해치우고도 끊임없이 먹을 것을 찾는 사람, 허기를 충족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 사람. 이렇게 멀쩡한 한 끼를 끝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폭식한다’고 한다.

 

먹고 누릴 것은 풍족하나 마음이 빈곤한 현대인들은 음식으로 굶주린 내면을 채우려 한다. 폭식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최근 들어 주목해야 할 폭식의 시발점 중 하나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에 의한 폭식이 너무나 만연한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슬픔과 우울감 등 지긋지긋한 감정을 껴안고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고삐가 풀린 듯이 마구잡이로 먹어치우곤 한다.

 

여러 소셜 미디어와 검색 엔진에 ‘스트레스성 폭식증(정식 의학용어는 아니다)’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보면 상당한 수의 검색결과가 산출된다. 유명 연예인이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증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일반인이 업로드하는 이른바 ‘(스트레스성) 폭식 브이로그’ 또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니,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해결하려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필자의 경험을 일례로, 현대인들이 스트레스성 폭식을 하는 원인과 그것의 효과 및 부작용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앞서 짚고 넘어가자면, 이 글은 폭식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내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대신 스트레스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밀한 심리를 드러내고, 음식을 위안 삼아 혼자 삭이곤 하는 슬픔을 주제로 공감대를 형성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단지 핑계에 불과”하다던가 “자기관리를 실패한 사람의 나약한 변명”이라는 비난은 정중히 사절하고 싶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자, 또한 이웃의 이야기이고, 매일을 살아내는 당신의 이야기와도 제법 닮아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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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은 내밀한 위로


 

바쁘고 외로운 현대인에게 음식은 최적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일상에서 사람들이 숨 쉴 구멍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개인의 인간적인 감정은 감추고 항상 이성적이며 말끔한 모습으로 대처하길 요구하고, 그 가운데 사람들은 타인의 토로를 들어줄 마음의 여유조차 잃었다. 그러한 매일은 반복되어 일상이 된다. 힘겨울 때에 기댈 존재 없고 내 마음은 서둘러 추슬러야 하는데, 오늘의 괴로움이 내일의 것이기도 하다는 출구 없는 좌절감에 빠지면 땅이 꺼지는 듯 무너져내리고 만다.

 

갑작스러운 스트레스의 등장은 시한폭탄처럼 내면의 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럴 때야말로 순간적이고 절대적인 기쁨이 필요하다. 음식을 먹는 것은 황홀한 마법의 순간과 같아서, 먹기만 하면 사르르 눈이 감기고 미각을 자극해 즉각적인 행복이 차오르게끔 한다. 이렇게나 공평하고 편리한 마법이 또 있을까. 단지 음식을 입에 넣고 깨물기만 해도 손쉽고 빠르게 행복을 느끼게 하니 말이다. 심지어 단돈 천 원으로 구매한 음식일지라도 여지없이 행복을 준다. 즉, 음식은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만으로도 황홀한 행복을 보장한다. 그러니 절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음식의 힘을 빌려야 한다.

 

또한 음식을 먹는 것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보다 편하다. 오롯이 혼자서도 슬픔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내가 겪은 불편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풀어놓는 수고로움과 그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고 말았다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으니 음식을 찾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음식은 누군가의 도움도 없이 슬픔을 덮을 수 있게끔 하는 유일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음식은 최고의 친구이자 내밀한 버팀목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음식을 찾다 보면 그렇게 자신을 달래는 방식이 익숙해진다. 허한 속을 달래려 음식을 먹는 순간은 행복 그 자체다. 그런데 하나를 다 먹고 나면 텅 비어진 입이 허전하니 새로운 기쁨으로 채우고 싶어진다. 자연스럽게 또 다른 음식을 가져와 첫술을 뜨면, 우습게도 그렇게 폭식이 시작되곤 한다. 처음에는 폭식이 가벼운 후식의 개념으로 시작되기도 한다. 그러나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음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슬픈 허기


 

필자도 후식의 개념으로 폭식을 시작했다. 폭식을 시작했던 무렵은 오늘이 한심스럽고 내일이 두려웠던 시기였다. 언어화할 수 없을 정도로 꼬인 감정들을 낱낱이 풀고 스스로를 달랠 여력은 없었다. 다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다면 그로 인한 슬픔을 덮기라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에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잘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단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기에, 저녁 식사 후에 가벼운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간식을 먹는 빈도와 양이 늘어나면서 간식은 폭식이 되었다. 그때의 기쁨이라면 폭식 뿐이었다.

 

그러한 며칠을 보내고 나면 폭식은 순간적인 일탈의 수준을 넘어 일상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음식을 제한해야겠다는 얄팍한 의지마저 흩어지고 최소한의 자제력마저 놓아버리게 된다.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푼다는 논리가 일상에 자연스레 자리 잡고, 그것이 효과가 있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하여금 폭식의 굴레가 시작된다. 필자의 경우, 이렇게 시작된 폭식이 2개월 동안 매일 저녁 반복되었다.

 

폭식의 대상은 대개 빵이나 과자와 같은 탄수화물이었다. 조각조각 잘라내어 먹을 인내심도 없어서 입으로 크게 한입 물어 베어내면, 입안을 가득 메우는 충족감과 함께 편안함이 차올랐다. 맛이나 식감을 품평할 여유도 없었다. 어느 순간, 폭식의 목적이 음식을 즐기며 슬픔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를 먹으면서도 다음으로 먹을 것을 떠올렸고,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포장을 뜯곤 했다. 그럴 때 “이미 많이 먹었다”던가,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쁘다”,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니까 먹지 말자”는 식의 달램은 효과가 없다. 폭식을 시작한 순간부터는 단순한 행복에 길들여져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처음은 즐겁지만, 갈수록 마법의 효력은 줄어든다. 음식의 맛을 감지하는 센서가 닳아 기능을 못하게 되는 양, 무엇을 먹어도 처음만큼 행복하지는 않은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모두 먹어치우니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음식만이 남는 것도 일조한다. 더 이상 먹는 것이 즐겁지 않지만 그럼에도 손과 입을 멈출 수는 없다. 한 차례의 폭식 이후에도 여전히 마음속에 고여있는 스트레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폭식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내면은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식욕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감정 하나 어찌하지 못하여 본능에 굴복하고만 자신의 모습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최소한의 이성마저 날아가버린다. 먹어야겠다는 충동이 솟아오른다. 꾸역꾸역 음식을 밀어넣으면 피어나는 불편한 행복을 위안 삼으며 나를 탓하는 마음마저 덮고 싶어진다.

 

그렇다면 하루의 폭식은 언제 끝이 날까? 대부분 스스로 끝을 맺지는 못하고, 외부의 요인에 의해 끝을 맞이하게 된다. 그전까지는 폭식이 계속된다. 주방과 냉장고, 그리고 자신의 방을 헤집어서라도, 식구들이 먹던 것을 얻어서라도, 나에게 허락된 자유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제는 잠에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주위를 돌아보면 먹고 남은 포장 용기와 온갖 비닐들, 접시들이 놓여있다. “사람들은 빵 하나 먹으면 만족한다던데, 왜 나는 이렇게나 많이 먹어놓고도 여전히 더 먹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과 함께 자책감이 슬그머니 떠오르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머리를 비우고 뒷정리를 한 뒤 잠자리에 눕는다.

 

그렇게 밤마다 그다지 즐겁지도 않은 폭식을 반복하던 필자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마침내 사라졌을 때가 되어서야 폭식을 멈추었다. 오래간만에 음식이 당기지 않았다. 음식을 공급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함께 사그라들었던 것이다. 매일 밤 열리는 외롭고 허무한 파티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괜찮다


 

모든 일은 여파를 남기듯, 폭식을 하는 습관도 일종의 흔적을 남긴다. 스트레스성 폭식을 겪고 난 후에는 사소한 불편감에도 반사적으로 먹을 것을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고, 이미 충분히 배가 부름에도 무언가를 또 먹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 혹은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연이 생긴 것처럼 음식에 대한 생각 아래로 개인의 일상이 묶여버린다.

 

그 흔적이 필자의 피부에도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가끔씩 가벼운 후식을 먹고 나면 다음으로 먹을 무언가를 찾게 되는 습관이 생겼다. 만성적인 소화불량과 엄청나게 증가한 체중을 얻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당연한 변화에 불과하다고 인식하여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불편감을 느끼면 폭식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가끔은 씩씩거리며 “나는 스트레스 받으면 먹는 것으로 풀어야 하는 사람인데 폭식을 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분풀이성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일상과 같이 스며든 습관을 고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가끔씩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달고 맛있는 것을 탐한다. 폭식을 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때엔 죄책감이 들어서 과한 운동을 해서라도 먹은 열량의 일부를 상쇄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미 소용돌이의 정점은 지나간 상태, 지금은 그 폭풍이 휩쓸고 간 잔해 위에 서 있다. 그리고 황량해진 땅을 다시 복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끔 폭식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고쳐잡고 천천히 원상태로 회복하려는 것이다. 과거의 필자가 그러한 선택(폭식)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한다. 외롭던 순간에 음식만이 위로가 되던 심리와 그때의 상황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한다. 그때의 자신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폭식이 옳거나 그르거나 그때의 필자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최고의 위안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시도할 수 있는 여러 해소법을 찾고 있다. 음식을 탐하는 대신에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그리고 주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이렇게 천천히, 스스로를 매몰차게 비난하지 않는 선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까지 함께해준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본인이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한다면, 자신의 나약함을 비난하지 말길 바란다. 폭식이라는 방법을 택하면서까지 괴로움을 잊으려 하던 스스로를 다독이고, 폭식을 했던 모습까지도 자신이라는 점을 수용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자신의 못난 모습에도 무너지지 말고, 나의 여러 모습들을 이해하는 것에서 첫발을 떼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폭식을 하지 않는 여러분에게도 부탁을 드리고 싶다. 스트레스로 인해 폭식을 거듭하는 누군가를 보고 마냥 탓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리라 짐작하고 상대의 자유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만약 그 당사자가 가까운 사람이거나, 혹은 도움을 요청해온다면 그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폭식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허기져 괴로워하는 것이고, 위로와 공감은 그들의 내면을 다시금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스트레스가 힘에 겨워 폭식으로 잊으려던 여러분, 더 이상은 음식을 미어넣으며 속마음을 꾹꾹 숨기지 말자. 철저한 자기관리, 냉철한 판단능력 따위 개인 일상의 영역에서는 하늘의 별을 따는 일과 같다. 대신 조금 내려두고 숨을 쉬자. 숨을 내쉬듯 마음속 스트레스를 내뱉어보자. 동시에 너무 좌절하지도 슬퍼하지도 말자. 어떤 모습이더라도 우리는 존재 자체로 괜찮고, 언제든 더 나은 모습의 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저녁이 음식으로 가득 찬 배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하는 불편한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다독이고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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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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