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13살과 36살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나요? [영화]

실화 모티브 영화, <메이 디셈버>
글 입력 2024.04.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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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권에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을 두고 5월과 12월, 봄과 겨울 같은 관계라고 해서 ‘메이 디셈버’라고 부른다고 한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이쁜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속뜻을 알고 보니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줄리안 무어가 당시 13살이었던 현 남편 사이에서 곧 대학생이 될 두 자녀를 얻은 ‘그레이시’로, 나탈리 포트만이 그레이시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작품에서 그레이시 역할을 맡은 영화배우 ‘엘리자베스’로 나온다. 해외, 국내 할 것 없이 항상 포스터에는 이 두 배우만 나와서 영화 속 비중도 두 배우가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았지만 그레이시의 현 남편으로 나오는 ‘조’ 분량이 생각보다 많고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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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시의 남편 조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전남편 사이에서 얻은 아들 조지와 친구 사이였다. 어떻게 만나게 됐냐는 질문을 허다하게 들어서인지 그레이시가 아무렇지 않게 첫 만남에 대해서 말하길래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뻔했다. 바로 뒤에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에 대한 자료를 볼 때 사진들이 죄다 죄수복인 걸 보고 그제야 미성년자를 건드렸으니 감옥에 갔겠구나 싶었다.


조는 한국 혼혈 배우인 찰스 멘튼이 연기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리버데일> 속 남성미 가득한 이미지는 없고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기 전에 몸부터 커버린 어리숙한 소년 그 자체였다. 아들이 담배를 가르쳐 주고, 커뮤니티를 통해 만난 여성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도 취미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엘리자베스와 동갑인 조는 보통 그 나이대가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겪었지만 반대로 보통 그 나이대가 경험할 것들을 겪지 못했다.


조가 엘리자베스의 광고를 여러 번 돌려보는 장면에서 엘리자베스에게 이성적 관심이 있나 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동갑인 엘리자베스를 부러움과 동경의 눈길로 바라본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자신과 그레이시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의해 줘서 제 나이에 맞는 삶을 살아가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찰나에, 엘리자베스가 안타까움이 섞인 말투로 이렇게나 어린데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자 눈물을 터뜨릴 때 특히 미성숙한 느낌이 잘 드러났다.


엘리자베스를 만나고 나서부터 아빠가 아닌 조라는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찾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 조는 그레이시와 언쟁을 한다. 그런 조를 보고 서럽게 울다가도 눈빛이 싹 바뀌면서 우리 관계를 누가 리드했냐고 추궁할 때는 나도 조처럼 멘탈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레이시 본인도 이 관계가 비정상적인 걸 알았고, 어렸던 조에게 우리는 사랑하는 관계가 맞으니 의심하지 말라는 내용과 함께 이 편지는 꼭 태우라는 말을 쓴 편지를 줬다.


전 남편과의 아들이자 조의 친구였던 조지가 엘리자베스에게 엄마가 비정상적인 거 안다, 근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엄마의 오빠들이 엄마를...이라며 성적 학대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래서, 어릴 때 성적 학대를 당했던 피해자가 커서 똑같이 가해자 짓을 하는데 다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거니까 이해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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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도대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영화적 재미도 없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플을 비꼰다고 하자니 또 엉성하다. 그저 세 배우가 연기로 부족한 스토리를 끌고 간다는 느낌만 받았다. 특히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와 조가 처음 만났던 펫샵을 들러 혼자 창고를 둘러보며 문에 기대앉아 조와 관계를 하는 상황을 몰입해서 연기하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팍 웃어버리는 장면, 조가 태우지 않은 편지를 읽고 독백으로 연기할 때 줄리안 무어 특유의 입술 모양과 말투를 똑같이 흉내 내며 몰입하는 부분은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연기면에서는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지만 영화 자체는 실망스러웠다. 영화에서 엘리자베스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영화화되는 것을 꺼려 하는 그레이시에게 이 영화를 통해서 오히려 진실이 알려질 수도 있다며 설득한다. 그런데 정작 <메이 디셈버>는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들에게 영화에 대해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나니 영화 자체가 기만처럼 느껴졌다. 조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은 어찌됐든 피해자인데 그저 13살과 36살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만 보고 영화로 만들어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데만 급급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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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잘 팔기만 하면 되는 입장에서는 일단 흥행부터 시켜놓고 실존 인물과의 분쟁은 후에 처리해도 상관없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돈을 주고 보는 입장에서는 영화를 본 후에 표절이라거나 실존 인물의 동의 없이 만들어졌다는 등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찜찜해지기 마련이다. 좋아했던 영화를 이런 외적인 것들로 몇 번 잃은 적이 있어 더 이상은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이전 <아이, 토냐>도 그렇고 이번 <메이 디셈버>가 오스카 각본상 후보로 지명된 걸 보면 아주 먼 미래나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신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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