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키드밀리의 대서사시 [음악]

'BEIGE' 리뷰
글 입력 2024.03.2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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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앨범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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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면 변한다. 자신도, 주위도. 키드밀리에게는 예전부터 이 말이 자신에게도 해당할까 두려워하고 탐색했다. 프로듀서 dress와 함께했던 ‘face & mask’와 ‘Cliché’에서 특히 알 수 있다.


‘BEIGE’는 그 탐색의 연장선이다. 지난 작품들과 비교하면 맛보기가 아닌 시원하게 모든 내적 갈등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옛날에 즐겨 들었던 음악들처럼 신나는 음악을 만들었다’는 인터뷰도 주목할 만하다. 변하기 전인 초심으로 돌아가 고민을 훌훌 털고 싶었을 터.

 

그렇다고 그의 영민함과 감각까지 처음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전부터 많은 곡에 참여했던 ron과 pH-1, 릴러말즈 등으로 이뤄진 피쳐링진에 묻히지 않고 그들의 색을 하나의 장치로 이용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ron의 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기계적인 목소리나 파열음을 빌려 온 ‘BEIGE theme’부터 ‘Simple Poem’이 그러하며, ‘Still friend?’, ‘R.I.P’에서 보여주는 멜로디컬한 플로우도 pH-1 못지않다. 특히 잘 쓰지 않던 신디사이저 활용이나 DPR Cream의 비트에 힘입어 대놓고 K팝스러운 음악과 피처링을 사용한지라 신선하다. 이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그의 인터뷰를 보면 계획적인 음악적 변화였는지 모른다. 요컨대, 이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파트이자 키드밀리에게는 가장 실험적인 파트다.


또한, 자유자재로 다루는 오토튠은 물론, ‘Test me?’에서의 장면이 그려지는 듯한 가사나 ‘추월’, ‘BORA’에서의 랩스킬은 그의 발전을 느끼기 충분하다.

 

앨범의 전체적인 유기성도 뛰어나다. ‘Test me?’에서 ‘Leellamarz interlude.’로 넘어가는 부분이나 ‘Let Me Down!’에서 ‘25’로 넘어가는 부분은 청각적인 짜릿함을 선사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앨범 전체가 인터뷰에서 그가 만들고 싶었다는 거대한 백그라운드 뮤직 한 곡처럼 들리는 이유다. 그 덕에 네 가지의 interlude로 분리됐지만, 하나의 앨범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된다.


그가 여러 고민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꼬인 실타래처럼 같은 곳으로 귀결되는 하나의 고민임을 알 수 있는 스토리텔링 또한 앨범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리고 그 고민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또 그동안 여러 채널이나 곡에서 얘기한 것처럼 성공하면서 딸려온 회의감이나 잃어버린 순수한 사랑이다. 가령 1번 트랙인 ‘ron interlude.’에서의 가사인 “다 필요없는 걸 배웠고 돈땜에 잃어버린 친구도 원래 안 이랬어 순수함은 가면으로만 보이네”가 그러하다. 처음부터 후회와 괴로움이라는 개인적 심상을 감추려는 듯이 그는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토로한다. 이윽고 애써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는 듯 자기 과시를 늘어놓는다. ‘BEIGE theme’의 가사에서 특히 알 수 있다. “난 나 곡에 참여하면 니 회사가 원해”나 “22 21 20 19 또 18 모든 년 다 죽였어” 같은 무차별 폭격이 그 예.

 

다음 두 번째 파트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랑했던 옛 연인에게 러브송을 쓰지만, 순수한 사랑을 잃은 자신 때문에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해답을 묻고 싶어 한다. 얼마나 절박한지 ‘RIP’에서는 완전히 압도된 듯한 형국까지 보인다. “아예 내 숨을 앗아/그건 나의 머릴 조여.” 하지만, 그녀는 곡 제목처럼 이미 순수함은 죽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이후 파트는 그의 숙명론적인 태도마저 보인다. ‘Leellamarz interlude.’의 가사에서 이를 찾아볼 수 있다. “Oh bro 참아야 돼 우린 무명 몇해였어 랩퍼들은 무시했어 주인공에게는 Cliche지” 라는 가사가 그렇다. Cliche라는 표현 때문인데, 이는 주위의 질타나 무시가 성장의 필요 요소라는 표현임과 동시에 그의 싱글인 ‘Cliché’의 내용처럼 기존의 것들을 잃는 것 또한 필요하다는 뜻이기에 그렇다.

 

성장 서사처럼 보이는 이 구도를 비로소 받아들인 그는 피쳐링진들과 멋진 콤비를 보인다. 후반부에 이뤄진 다양한 프로듀싱은 곧 그의 성장을 내비치는 듯하다. 압권인 트랙은 역시 ‘25’. 국내 힙합 씬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레이지를 양홍원과 함께 또렷이 해낸다. 키드밀리는 자신도, 주위도 변했지만, 더는 그 방향이 옳지 못한 곳으로 가게 두지 않는다.

 

피쳐링진으로 이뤄진 동료들을 얻은 그는 이제야 자신의 얘기를 용기 있게 꺼낸다. “집에서 비춘 날 봤어 내 모습은 제일 싫어하던 걔였고 너를 품어주고 싶었네” 그리고 앨범은 심플하면서도 시니컬한 곡인 ‘BORA’로 마무리된다. ‘BORA’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많은 관객들과 공연하는 키드밀리의 모습이 주 내용이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삶을 지금 살고 있다며 숨을 들이마신 뒤, 다시 마이크에 숨을 내뱉는다.

 

그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한, 클리셰라는 그의 말처럼 비슷한 일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의지는 꺾이지 않은 듯하다. 최원재일 때의 사랑은 떠나갔지만, 키드밀리로서 얻은 사랑이 찾아왔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해봄 직한 것은 도 그렇고 대부분의 미디어에서는 왜 자신의 처지를 사랑으로 대변하는지에 대함이다. 어쩌면 사랑을 통해 대개의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의 또 다른 특징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주고 모든 것을 뺏는다는 것이다. 이는 삶과 닮았다. 너무 넘치면 잃고 본질이 흐려진다. 키드밀리 또한 이를 느꼈을지 모른다. 이는 개인적인 추측일뿐이지만, 그는 앞으로도 꺾이려 들 때마다 이 앨범을 꺼내 들으며 위로받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는 단순한 시(Simple Poem)가 아닌 대서사시다.

 


[유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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