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낙오시키지 않는 사랑 - 사랑은 낙엽을 타고 [영화]

우리 비극 속에서도 서로를 발견해 주도록 해요.
글 입력 2023.12.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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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의 공생


 

출처를 알 수 없는 불행은 시시때때로 우리의 삶에 들이닥친다. 그럴 때 우린 지나치게 자신을 꾸짖거나 변하지 않는 타인을 탓하며 인생을 헤집어 놓은 장본인을 색출하곤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업은 불필요한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수많은 이들에게 닥친 불행은 대개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인간은 사는 동안 통제할 수 없는 불행을 받아들이고 끌어안는 법을 평생에 걸쳐 익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형편없고 절망스럽고 고독한 일들의 연속이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의 남녀 주인공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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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몰래 집으로 가져와 열악한 끼니를 해결하는 안사. ‘폐암이 걸려 죽을 확률이 높은’ 근무환경에서 술에 의존하여 하루를 보내는 홀라파.

 

두 사람은 매일 땀 흘려 일하고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는 헬싱키의 가난한 노동자로, 크고 작은 비극과 공생한다. 현실에 지쳐 무감각해진 이들이 유일하게 한숨 돌릴 곳은 술과 음악이 있는 동네의 작은 술집이다.

 

퇴근 후 동료와 들른 그곳에서 조우한 둘은 시선을 주고받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된다.

 

 

 

다름 아닌, 응시와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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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의 일면을 기점으로 홀라파와 안사는 여느 관계를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몇 번의 우연으로 경계를 허물고 몇 번의 엇갈림으로 오해를 쌓는다.

 

속절없이 빠져드는 파괴적인 사랑은 아닐지언정 이들은 적어도 전에 없던 엷은 생기를 띈다. 누군가를 대접할 접시를 사고, 정성을 들여 요리를 하고, 멋진 자켓을 빌리고, 알코올중독을 치료받고. 그들은 희미한 기대로 분주해진다. 척박한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라디오에선 전쟁 상황을 중계하며 그들은 노동력 외의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육체노동자다.

 

그럼에도 이제 그들은 더 나은 자신, 더 나은 삶을 어렴풋이 희망한다. 깨진 유리 파편처럼 비극이 도사린 세상에서 홀라파와 안사는 서로를 발견했다. 서로의 시선 안에서 보편의 이름을 지우고 새롭게 환생한 그들은 더 이상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싸구려 노동력을 공급하는 인부 1이 아니다. 응시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혼수상태의 두 사람을 조심스레 흔들어 깨운 것이다.

 

장르가 로맨스인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서사는 도무지 축축하거나 구구절절할 줄 모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건조하고 무심한 태도로 주인공들을 혼란한 시대에 던져둔다. 감독은 사랑에 빠진 인물의 감정에 큰 힘을 싣지 않으려는 듯 보인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의 심리를 응축한 대사나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도 별로 없다. 배경 음악과 가사가 인물을 대변할 뿐이다.

 

다만 감독이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유머다. 무리에서 존재감 없던 사람이 뱉은 쌩뚱맞은 말에 삐져나오는 실소처럼, 이 영화는 어이없이 터지는 데드팬(표정이나 동작의 변화 없이 유머를 제시하는 코미디 장르)의 세계로 관객을 능청스레 유도한다.

 

분명한 돌파구 같은 건 없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으란 법도 없지 않냐는 듯 감독은 궁지에 몰린 이들의 이야기에도 웃을 수 있는 장치를 영화 곳곳에 마련해둔다. 그러니까 유머란, 비참한 삶의 한가운데서 빠져나와 천연하게 웃을 수 있는 명랑한 배짱인 셈이다.

 

이 영화는 인생에서 낙오자가 되지 않는 법을 넌지시 일러준다. 전쟁 상황과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일상을 습격하는 고용 불안, 존재의 고독, 삶의 허무 따위에 패배하지 않는 법은 사랑이라고.

 

그리고 그 사랑은 다름 아닌, 응시와 유머라고.

 

 

 

낙오시키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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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홀라파와 안사는 모진 세태에도 낙오되지 않았다. 서로의 고유함을 알아주는 응시와 꼼짝 않는 팍팍한 현실을 희석하는 유머 덕이다.


이 영화의 가르침으로 나는 얼마 전 시청한 방송인 신동엽과 이소라의 재회를 담은 유튜브 영상을 떠올렸다. 오래전 연인이 다시 만나는 장면은 언제나 조마조마하면서 궁금하다.

 

둘은 서로를 멋있고 웃긴 사람이라 담백하게 증명했다. 그들은 내내 꾸밈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살며 멋짐과 재밌음을 기념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아마 우리가 이별을 포함한 여러 삶의 비극에 부딪혀도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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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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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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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월드를창조한그는전설이다
    • 잘읽었습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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