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쇼팽으로 만나는 지브리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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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교양이 없다. 클래식의 클도 모르고 악기 구분도 잘 못한다. 어릴 적에 잠시 플룻을 배울 때는 플룻 사이에 젤리를 넣어 얼리면 쇠맛이 날까 만을 궁금해했다. 이런 내가 제발로 공연을 보러 간 이유는 그저 지브리에 끌렸을 뿐이다. 직접 토토로 음악을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마녀 배달부 키키 노래도 나올까. 지브리만 생각하며 콘서트홀을 찾았다.
입장부터 당황했다. 웅장한 홀에 들어서자마자 씹던 껌을 뱉었다. 난 누구, 여긴 어디. 영화관보다 몇 배로 넓은 탓에 직원에게 물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앉고 보니 무대와 꽤 가까운 자리라 좋았다. 무대에는 피아노 한 대와 의자 네 개가 끝이었다. 그제서야 소개 글을 읽었다. 해설 및 연주 피아니스트 송영민, 바이올리니스트 임홍균,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 비올리스트 이신규, 첼리스트 박건우. 딱 다섯 명, 아담한 공연이구나. 인터래스팅.
곡명을 보는데 왈츠 7번, 마단조, 작품번호 18 등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공부 좀 하고 올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나갈까. 그러다 센과 치히로, 원령공주, 포뇨를 보고 나도 가능성이 있다 싶어 포기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해설자가 등장했다. 쇼팽에 대해 설명하다가 갑자기 연주를 하고 또 설명을 하고. 차분하게 설명을 잘 해주셔서 필기하려다 참았다. 교회에서 처음 온 사람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해 주듯 나를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잘 왔노라, 클래식의 세계로 너를 인도하노라.
전반부는 쇼팽 음악 속에 숨은 지브리 음악, 후반부는 지브리 음악 속 숨어있는 쇼팽 찾기로 진행됐다. 전반부는 잔잔했고 후반부는 경쾌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는 ‘녹턴 13번 다단조 작품번호 48-1’과 ‘천공의 성 라퓨타의 주제곡’이었다. 끌렸던 이유에 대해 자세히 쓰고 싶은데 도저히 모르겠다. 뭔지 모를 흡인력이 있어서 더욱 집중했을 뿐이다. 다시 듣고 싶다.
듣다 보면 분명 다같이 연주하는데 음이 분리돼서 들렸다. 각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이게 조화를 이뤄서 다시 합쳐지는 느낌. 예를 들어, 첼리스트 박건우님은 자신의 소리를 얹어 낼 때 너무 자연스러운 나머지 음소거로 연주하다가 소리를 여는 느낌이었고 바이올리니스트 박진수님의 소리는 꾸밈없이 담백하게 들렸다. 옆 사람들이 돋보이게 해주는 소리랄까. 나는 박진수님의 멋 내지 않는 소리가 제일 좋았고 연주하는 모습도 제일 멋있었다. 응원하면서 뚫어져라 그 분만 봤는데 레이저가 느껴졌는지 잠시 내 자리를 봤다. 흠칫, 얼른 시선을 돌려 모른척했다. 기운이란 게 무대까지 전달이 되는 걸까.
곡을 마칠 때마다 다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인사를 했다. 수고로움에 갸우뚱했지만 매번 물개 박수를 쳤다. 안에서 문 열어주는 사람은 몇 명일까, 연주하는 분들의 걸음수를 체크하면 얼마나 나올까, 다들 어떤 생각을 하며 걸을까. 허공에 질문을 던지며 이왕 치는 것 힘차게 쳤다. 옆 사람들이 무슨 죄라고 귀가 좀 아팠을 것이다.
벌게진 손을 감싸며 공연장을 나왔다. 세상에나 내 발로 직접 듣고 나왔다니. 다음에는 지휘자도 있고 더 풍성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클래식 공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올 수도 있는 기회를 위해 귀를 닦고 마음을 닦아둬야지. 음악을 내 삶에 초대해야지.
[김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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