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를 두드려 깨우는 - 쇼팽으로 만나는 지브리 앙상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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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피아노를 앞에 두면 매끄러운 건반 위를 마구 쓰다듬고 싶다. 나는 피아노를 볼 때면, 자연스레 피아노 학원의 작은 방이 떠오른다. 의자를 뒤로 넉넉하게 뺄 수 없는 좁은 방, 피아노와 나 단 둘뿐인 40분 남짓의 시간. 피아노를 마주하고 있으면 가슴 깊은 곳부터 전신으로 부드럽게 심장의 두근거림이 퍼진다.
아직 음악 스트리밍 앱을 결제할 수 없던 어린 나는 음성 녹음을 켜서 주머니에 넣어두고는 신중하게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학원 차에 탈 때, 버스를 탈 때, 집에 있을 때 언제든 그 녹음을 들었다. 나의 쇼팽은 늘 그렇게 휴대폰 작은 파일 속에 담겨서 삐뚤빼뚤 서툴게 그린 그림처럼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중얼거렸다.
어린 시절을 지나, 클래식은 멀어져 버렸다. 스트리밍 앱로 쉽게 찾아 들을 수 있지만, 조악한 녹음 파일로 듣던 때보다 아는 게 없다. 언어예술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아끼게 된 후로 더 그렇게 되었다. ’좋다‘에서 감상이 끝나기 쉬우며, 음악 용어나 기법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왜 좋은지 콕 짚어 이야기하기에 어려웠다.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는 지점에서 음악은 점점 내게서 멀어졌다.
<쇼팽으로 만나는 지브리 앙상블>을 찾아온 것은 멀어진 쇼팽을 가까이 끌어당기고 싶은 마음과 지브리라는 세계를 향한 애정 때문이었다. 또 어쩌면 클래식을 더 많이 접한다면 잘 표현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낭만시대를 대표하는 쇼팽, 감성적인 애니메이션 음악으로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음악. 서로 만날 수 없는 시대, 다른 장르의 음악을 접목하는 작업은 그 발상부터 신선하게 느껴졌다. 1부에서는 쇼팽의 음악적 특징을 스튜디오 지브리의 OST에 담아보고, 2부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 음악 속 숨겨진 쇼팽 음악을 찾아본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향한 관객의 친숙함을 이용한 이 프로그램은, 관객들로 하여금 쇼팽식 변주를 통해 쇼팽 음악의 특징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연주를 듣는 내내, 나는 ‘좋다’는 감각으로 몇 번이고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음악은 감각을 일깨우며, 나의 무의식을 발견하게 한다고. 클래식은 나의 무의식을 건드린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이. 그러자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취향이 깨어났고, 음악이 지어진 까마득히 머나먼 과거의 세계와 내가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좋다’고 말한다. 다만 지브리 음악의 쇼팽식 변주에서, 나는 쇼팽의 이런 부분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예술의 가치란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더 잘 알게 해주는 것. 그리고 세상과 우리의 연결을 선명하게 해주는 것.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피아니스트 송영민의 친절한 해설을 들으면서 문득 음악을 언어화하는 작업이 더 활성화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음악을 더 풍성히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 용어가 더 널리 알려져야 할 것 같다.
[박하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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