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량공주 모모코 - 방황하는 당신, 당신의 행복을 두려워 말고, 용기있게 잡아요 [영화]

글 입력 2024.03.13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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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할리우드에서 들어온 올드머니룩이 서서히 한국에도 트렌드로 자리 잡은 듯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그리고 여전히 한국 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패션 트렌드 중 하나가 Y2K 가 아니었을까 싶다. 2000년대 초반의 일본 하라주쿠 감성부터, 프리스타일의 y가 떠오르는 향수 돋는 비트를 내세우는 복고풍 컨셉의 아이돌들까지.

 

불과 몇 년전 까지만 해도 2000년대의 복고풍 트렌드가 패션 암흑기, 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새롭게 재해석된 Y2K 감성은 내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이유는,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그러나 지금처럼 본격적인 스마트폰이 보급되지도 않았고, 인터넷이 존재했지만, 아직까지 세기말의 아날로그적 감성과 새로운 밀레니엄 적 기대감이 화려하게 뒤엉킨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리라고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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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공주 모모코는, 이런 2000년대에 대한 묘한 향수와 동경을 더욱 부채질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혐오스러 마츠코'의 일생으로 유명한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2005년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주황빛이 도는 컬러감에 b급 감성의 유쾌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로코코 시대를 동경하고 공주처럼 레이스 달린 원피스와 화려한 장신구를 한 모모코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외양과 성격을 가진 이치고를 만나게 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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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Y2K 스타일에 대한 애정을 말한 것 치곤, 모모코의 스타일은 상당히 범상치 않다. 프릴이 잔뜩 달린 에이프런에 완벽하게 과한 소라모양 펌까지. 얼핏 보면 십대 초반인것 같기도 한 공주 스타일의 모모코는 체육시간에 '여자는 과격하게 운동하지 않는다'라며 연약하게 앉아있지만 동시에 흔들리지 않는 강철한 멘탈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순둥한 얼굴의 기존쎄'랄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려는 순간 두려움이 생겨요. 행복을 잡으려며면고통을 견디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해요.”

 

어린 시절 모모코의 엄마는 불륜 상대와 결혼을 해 떠나게 되었다며 모모코에게도 같이 가자고 말한다. 거절하는 모모코를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는 엄마에게, 모모코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용기를 내서 당신의 행복을 움켜잡아요.

 

아직 코흘리개 초등학생인 모모코는 자신보다도 철부지인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소녀였다. 모모코의 성장과 우애 서사 이전에, 그녀가 원래도 이렇게 단단하고 곧은 사람의 면모를 지녔다는 것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예요. 혼자 태어나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죽게 되죠.”

 

사랑스럽고 단단한 모모코는 친구와 사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로코코 식 원피스를 사 모으고, 예쁜 자수로 수선을 하고 커스텀을 하는 것이 취미생활인 그녀는 굳이 친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필요해서 집에 쌓여있는 짝퉁 티셔츠들을 중고 사이트에 올리게 되면서 느닷없이 그녀와 정반대의 이치고, 라는 동갑내기 소녀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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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울면 안돼. 혼자서 울어야돼. 왜냐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울면 동정을 받기 쉽거든.”

 

모모코와는 정반대로 험상 궃은 폭주족 갸루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의외로 유리멘탈인 구석이 있는 이치고. 그녀는 말은 거칠게 하면서도 모모코 주변을 게속 해서 맴돈다. 이렇게 만나게 된 정반대의 성격인 둘은, 겉보기엔 둘 다 친구가 필요 없는 듯 보이지만 결국 서로에게 둘도 없는 우정을 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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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코는 이치고를 통해서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고 신경이 쓰이는 친구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고, 이치고는 모모코를 통해서 정말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가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을 믿어주는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쌍방 구원서사라고도 볼 수 있는, B급 영화이면서 동시에 가슴 뭉클한 성장 영화이기도 한 것이다.

 

내 나이 22살. 부산에서 태어나 20여 년을 붙박이처럼 그곳에서 살았다. 하지만 내 기나긴 학창 시절을 회상해 보면, 진심으로 내가 소중하게 여기고, 나를 소중하게 여겨준 친구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모모코처럼 단단한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대학에 들어와 처음 사귄 마음 맞는 많은 사람들이 고마웠다.

 

그중 한 언니가 생각이 난다. 한국에는 현재 없지만, 그 언니 역시 Y2K 감성을 참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이 영화를 옛날에 한번 보고, 최근 다시 한번 보았다고 말했다. 보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고도 했다. 어린 그녀가 어떻게 보면 병맛인 이 영화를 보고 왜 울었을까. 정확히 그 이유는 모르지만, 웬지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면서 좀처럼 우는 일이 없는 나도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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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는 저마다의 그릇이 있단다. 너의 그릇은 비록 크지 않을지는 몰라도 예쁘고 훌륭한 그릇이야. 누구와도 다른 너의 길을 가도록 해.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꼭 찾게 될 테니까.”

 

“자기를 버려야 어른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평생 어린애로 있겠어.”

 

인간은, 그리고 특히나 변화와 혼돈의 시점에 서있는 인간은 방황하고 고뇌한다. 그 안에서 고독을 느끼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질문한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가, 나는 무엇인가, 하고. 그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란, 어이없을 정도로 쉬운 것이다.

 

모모코와 이치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모코는 평생 혼자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이치고는 폭력적인 폭주족 무리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원래 폭주족에 들어갔던 순수한 의미를 잃어버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만나게 되고, 서로에게 배울 점을 찾아가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고, 동시에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따뜻한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그릇, 크지는 않을지라도 예쁘고 훌륭한 나만의 그릇에 나만이 담을 수 있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담고 싶다. 그리고 그 소중한 그릇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공유하며, 이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 와서 종강쯤 되면 늘 외로웠지만, 나를 만나서 서울에 “연결감”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는 23살의 어린 언니는 지금 프랑스에 공부를 하러 갔다. 그리고 나는 곧 서울로 다시 올라가 열심히 공부하며 새로운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역시나, 일상 속 소소한 행복만큼이나 소소한 재난들이 불어닥칠 것이다. 하지만 그때, 이치고와 모모코처럼 20대 초반의 우리 둘 다 같이 용기를 내어 행복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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