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풍류를 즐겨보자꾸나, 밴드 양반들(Yangbans)의 EP [New Moon] [음악]

수록곡 'Moon Salutation' MV와 한국적 메타포를 중심으로
글 입력 2024.03.0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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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불고 물은 흘러간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간다.


생(生)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흐르는 것은 그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우리는 그 자연 속의 흐름을 살아내며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 흐름 속에서 부러지는 것보다는 구부러짐을 택하는 것이 어떨까? 유한함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순환을 받아들이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즐기는’ 것.


불고 흘러가는 - 풍류 (風流). 바람 풍에 흐를 유자로 이뤄진 이 움직임 안에는 ‘즐거움’이 있다. 두 움직임이 만나 하나의 단어가 되었을 때, 단순한 자연의 묘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멋스럽고 풍치가 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서부터 등장하여 다양한 시문, 그림과 음악에 꾸준히 등장한 풍류는 그 흐름을 멈추지 않고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

 

 

 

풍류가 세계로 뻗어나가다, 밴드 양반들의 new moon ep


 

[크기변환]양반들 전체 사진.jpg

 

 

밴드 양반들(Yangbans)은 이러한 풍류의 즐거움을 몸소 실천한다. 바람과 흐름을 직접 찾아다니며 지리산에서 [바람과 흐름], 해남에서 [에루화], 그리고 캘리포니아 조슈아트리에서 [New Moon] EP를 마지막으로 수련기 3부작을 완결한 그들은 21세기 풍류를 보여준다.


리스너로서 양반들(Yangbans)에게 고마운 점은, 자연의 흐름과 감각을 그들이 어디에서 느꼈건, 이 모든 풍경을 ‘풍류’로 엮어 즐거운 소리로 풀어서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조슈아트리 국립 공원을 필자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양반들(Yangbans)은 마치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은 듯, 이국적 정서를 가득 담은 음악 사이사이에 우리 문화의 특징들을 책갈피처럼 넣어 길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돌아와 전하는 구전 동화와도 같다고 느껴진다.


이런 지점이 양반들(Yangbans)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지리산 – 해남 – 캘리포니아로 그들이 밟는 자연이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어 국경을 넘나들게 되어도, 그들이 자아내는 부드러운 한국적 멋과 메타포들이 노래를 이해하는데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풍류의 세련됨으로 앞으로도 그들이 더 많은 자연을 즐기며 리스너들에게 풍치 있는 간접 경험을 선사해주었으면 한다.


24년 3월 2일, [New Moon] EP의 ‘Moon Salutation’ MV가 공개되었다. 해당 곡은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달을 보며 Jam을 하다가 나오게 된 곡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 뜬 달을 양반들(Yangbans)은 어떠한 시선으로 보았을까. 가사의 빈 부분들을 채워주는 설화적 메타포가 가득한 영상을 통해 양반들(Yangbans)의 풍류에 깊이 빠져보자.

 

 

 

[New Moon] EP - 'Moon Salutation' MV


 

 

 

까마귀 해를 훔쳤다 – 양의 속성, 까마귀


인물이 눈을 뜬다. 깨어보니 빛으로 가득한 곳에서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손에는 심장의 모양과 흡사한 빛이 들려있다. 그를 품고 있듯, 그에게 심장 박동을 주듯 빛은 규칙적으로 깜빡인다.


가사의 까마귀, 그리고 몸통 부분에 검은 천이 날개처럼 휘날리는 옷을 보아 인물은 까마귀를 상징하는 듯하다. 까마귀가 흉조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긴 하지만,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도 알려져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는 태양 속에 발이 세 개 달린 까마귀인 삼족오가 등장하고, <삼국유사>에 적힌 우리나라의 태양신화인 ‘연오랑세오녀설화’의 두 주인공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름에도 까마귀 오(烏)가 들어간다.

 

 

달 위에 토끼가 산다 – 음의 속성, 토끼


까마귀와 대비되는 달에는 토끼가 산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태양과 까마귀가 양의 속성을 지닌다면 이와 반대로 달과 토끼는 음의 속성을 보인다.


제목 ‘Moon Salutation’처럼, 까마귀는 달을 찾으려는 걸까. 까마귀가 태양을 훔쳐 인간 세상으로 달아난다. 지상이지만 해가 잘 들지 않는 곳에서 그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어스름한 빛들을 보며 바람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곳에선 달이 보이지 않는다. 어색한 듯 두리번거리며 위를 쳐다보던 까마귀는 더 높은 곳으로 간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밝은 불빛을 까마귀는 위에서 아래로 쳐다본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빌딩 숲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는다. 퍽 아름답다고 생각했는지 본격적으로 인간 세상을 탐구한다. 맨발로 강가를 거닐며 바람을 느끼고 강물의 차가움을 손 끝으로 만져보며, 까마귀는 풍류를 즐긴다.

 

 

안녕 안녕 – 태양과 달의 만나다, 개기일식


풍류를 즐기던 중 까마귀는 드디어 물에 비친 달을 본다. 꽉 찬 보름달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달이 보이면서부터 보컬 전범선의 ‘Adieu to the sun / Salute to the moon / 안녕 안녕’의 가사가 강렬하게 꽂힌다.


한국어 가사에서는 안녕이 연달아 두 번 쓰이게 된다. 첫번째 안녕은 태양에게의 작별 인사, Adieu를 고하는 것이고, 두번째 안녕은 달에게 새로운 인사, Salute를 건네는 것이다. 태양을 들고 달아난 까마귀가 드디어 달에 사는 토끼를 마주했다. 양 극단의 음과 양의 존재는 어떻게 될까?

 

 

[크기변환]new moon 앨범 커버.jpg

 

 

이야기의 마무리는 [New Moon] EP의 앨범 커버에서 찾을 수 있다. 언덕을 넘어 어떤 형상이 하늘을 바라본다. 지평선 너머 보이는 것은 바로 개기일식. 태양과 달의 만남이다. 풍류를 통해 달을 찾아낸 까마귀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며 신비로운 개기일식을 보여준다. 커버 아트 속에서 이를 조망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양반들(Yangbans), 그들이 이번 EP 작업의 배경이 된 캘리포니아의 숙소 앞 모하비 사막을 넘어 이 만남을 목격한 것이다.


까마귀가 본 보름달과 양반들(Yangbans)이 바다 넘어에서 본 보름달은 어딘가 닮아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풍류 속 마주한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을 테니까.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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