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화훼마을

사람이 꽃이 되는 곳
글 입력 2024.03.0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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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자격증 시험들이 있어서, 공부하러 밖에 나가는 게 일상이다. 동네의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게 되면 괜시리 마음이 편해지는 감이 있다. 스스로가 나태해지는 게 싫어서 일부러 먼 동네에서 공부하고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류장까지 내가 좋아하는 길을 걷고,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다 보면 공부하는 동네가 나온다. 그러다보니 많은 동네를 지나친다.

 

평소 아침이면 피곤해서 바로 눈을 붙였을 테지만 며칠 전엔 잠이 잘 오지 않아 창문 너머 풍경을 구경했다. 내가 몰랐던 동네의 풍경들이 지나갔다. 이른 시간부터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햇빛을 받아 노란 빛으로 물든 암회색의 건물들, 푸르스름한 하늘에 떠있는 하얀 달의 모습 등. 그렇게 몇 십 분을 달려, '장지동' 정류장을 지나쳤다.

 

'장지동' 정류장은 서울과 성남의 경계선 즈음이라서, 도로도 복잡하고 운송 위주의 건물도 높고 무겁게 서있다. 그리고 뭔가, 발달된 건물이랄 게 없달까? 주유소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상가 같은 게 없어서 항상 휑하다고 느끼는 곳이다. 그 날은 그 '장지동' 정류장의 풍경을 정확히 볼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흰 색 울타리로 둘러쌓인 '화훼마을'.

 

하얀색 울타리에 그림이 그려져있다.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그려져서 동화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울타리 밖에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 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그 울타리 너머에 뭐가 있나, 고개를 들어 살짝 확인해보니 검은색의 무언가밖에 안 보인다. 이상하다는 생각과 함께 달리는 버스 덕에 울타리의 끝에 다다르니, '검은색의 무언가'는 집이었다. 정확히는, 지붕. 그것도, 그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집의 지붕이 모두 다 검은색 비닐 내지 무언가로 덮혀있었다.

 

화훼마을. 재개발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비닐하우스를 판잣집으로 개조해 살아가는 마을. 그래서 카카오맵에 화훼마을을 검색하면, '꽃집'이니 '꽂 배달' 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애초에 사람이 거주하는 용도가 아닌 곳이니까. 판자촌이라는 걸 실제로 본 건 화훼마을이 처음이다. 그 전까진 산업화 시기의 청계천 근처 판잣집들의 자료들이나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재단의 홍보물로만 판자촌의 사진을 봤었을 뿐이다. 어떻게 저 문을 겨우 들어가지? 어떻게 저 길을 걸어가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좁고 꼬불꼬불하다. 특히, 내가 사는 서울과 내가 공부하는 동네는 도시 중의 도시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판자촌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문득,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도 도시 빈민 문제가 나온다. 재개발이 되는 지역에 사는 난장이네 가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낙원구 행복동'이란 어디일까 많이 찾아봤었다. 그 지역이 어딘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성남의 상대원공단이 영희의 빵집 요소 등에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다. 묘하게도, 화훼마을에서 조금 더 가면 그 상대원이다. 화훼마을에도 '영희'는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둑한 밤, 공부에 지친 몸을 다시 버스에 태워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본 화훼마을이 생각나서 복정역 근처에서 화훼마을을 다시 한 번 잘 바라보았다. 방수 용도로 지붕에 깐 검은색의 비닐 비슷한 것 때문에 잘 보이지가 않았다. 내 눈에 띈 건 오직 두 개였다. 하나는, 교회의 십자가, 또 하나는, 길을 비추는 가로등.

 

화훼마을의 집들은 다른 동네에 비해 낮게 형성되어 있다. 십자가도, 다른 곳보다 낮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낮은 길조차도,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보이던 화훼마을에 처음으로 생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바라보는 길은 암회색에, 그들의 하늘은 검은색 물결이 흘러 어두울 텐데, 빛을 간직한 모습이 어딘가 숭고하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도시 빈민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하였지만 정작 이제서야 제대로 판잣집을 처음 본 것도, 항상 땅만 보며 어두움만 찾았던 것도, 알게 모르게 가졌던 그들의 삶에 척박한 기운이 주류로 흐를 거라는 편견도, 모두 부끄러웠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그들의 모습이, 내 하늘이 어두웠던 이유는 내가 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몇 분 뒤, 버스는 잠실 롯데타워를 향했다. 롯데타워는 그 육중한 몸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다. 번쩍이는 불빛에 눈이 아팠다. 화려하게 빛났지만 내게 진정으로 찬란한 것은 화훼마을의 가로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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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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