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예술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

글 입력 2024.02.12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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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예술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을까?

 

몇 년 전만 해도 흐릿했던 인공지능 예술에 대한 전망은 AI 일러스트 확산 이후 선명하고 날카롭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AI작가님’을 구태여 찾아보려는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그들은 우리네 SNS에서조차 쉬이 발견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감쪽같이 속을 정도로 훌륭한 퀄리티의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동시에 창작자들이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AI 예술작품이 과연 사랑받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전히 저작권과 관련한 이슈가 해결되지 않았으며, ‘AI작가’님의 작품을 ‘기계가 만든 작품’이라는 색안경 없이 볼 수 없다. 과연 AI 예술작품이 인간의 것과 같은 값어치를 가질 수 있는가?


인간이 예술작품을 소비할 때는 오로지 그 예술작품 자체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게 된 맥락과 관련된 작가의 역사를 함께 소비한다. 실제 전시회 팸플릿 같은 경우에는 작가 개인의 역사와 연관 지어서 작품을 소개하고, 과거에 그려진 그림이나 문학 작품은 그 작품이 어떤 맥락과 역사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연구해서 가치판단을 내린다. 이처럼 예술에서 작가와 맥락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반면에 인공지능이 창작한 예술품은 개인의 역사와 맥락을 담아내지 못한다.


혹자는 모든 대중이 작가나 작품에 대한 배경 지식을 지니고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름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집에 장식해두고 감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이 비록 인공지능의 작품이더라도 인간의 것과 동등한 가치를 두고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술은 예술 그 자체만이 아니라 관련 맥락 및 역사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창작자와 맥락을 함께 소비하는 것은 예술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앞선 예시처럼 반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공지능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같은 가치를 갖는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공통의 기억과 역사를 갖고 그것에 ‘공감’한 것을 바탕으로 창작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이 창작한 모든 작품이 공감에서부터 비롯하여 표현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작품이 공통된 기억과 역사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인간의 작품은 ‘인간’이 만들어냈기에 진정한 ‘공감’이라는 기능을 발휘할 여지가 존재하지만, 인공지능의 작품은 애초부터 그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정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없고, 그렇기에 인간이 할 수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기능이 존재한다.


한 가지 예시로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마크 로스코는 20세기 추상 화가로, 그는 당시 시대의 슬픔을 목격하고 그것을 이해한 뒤, 그림으로 표현해냈기 때문에 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의 공감을 전해주었다. 또한, 그의 작품은 감상자로 하여금 슬픔이나 숭고함 같은 공통된 감정을 불러일으켰기에 평론가들도 그에게 높은 평가를 매기고,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공감이 학습의 영역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은 대상을 알고 이해하거나, 대상이 느끼는 상황 또는 기분을 비슷하게 경험하는 심적 현상이다. 이처럼 공감은 ‘경험’과 ‘체험’의 영역이기 때문에 학습만으로는 진정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즉, 인공지능은 이해하고 경험할 수 없으므로 ‘공감’을 배울 수 없다. 나아가서 작가가 인공지능인 것을 밝힌 뒤, 감상자에게 그 작품을 감상해보라고 지시한다면, 사람들은 작품이 만들어진 뒷배경이 떠올라서 온전히 작품을 감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통적인 유대감이 결여되어서 진정한 ‘공감’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편, 앞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공감을 학습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것이 공감을 불러일으킬지 파악하여 공감을 표현할 수는 있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가장 공감할만한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작품에 반영하는 방식은 가능할 수 있다. 물론 가능한 일이지만, 인공지능은 인간만이 자아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감’은 표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치적인 측면에서 두 창작 주체가 주는 ‘공감’의 의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인공지능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은 동일 선상에 놓일 수 없다.


작가를 밝히지 않는다면, 인간과 AI의 작품을 구분하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예술의 가치와 인간 예술의 가치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이 두 주체가 창작해낸 산물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내왔던 결과물과 인공지능의 결과물은 같은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의 예술작품은 인간이 인공지능 창작 이전까지 쌓아온 예술의 여러 가지 기능 중 몇 가지만을 충족시켰을 뿐이다. 인간 한 명이 예술의 모든 기능을 처리하지는 못하지만, 현재까지 만들어진 인간의 예술작품 기능을 살펴보면, 그것의 총합이 모든 예술의 기능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산물이다. 인공지능의 예술만으로는 이것을 모두 대체하진 못하고, 그렇기에 두 주체는 가치적인 측면에서 동일 선상에 설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인공지능의 예술이 ‘인간의 예술’과 구분되어 기술적인 측면이 강조된 ‘인공지능 예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가치를 제시하고 그것에 관한 역사를 써 내리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 예술의 가치를 따라잡을 수 없을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인간의 예술 분야를 대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예술에 있어서 미술의 구체적인 기법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이 필요할 경우, 인공지능에 그러한 기술을 학습시킬 수 있다. 또한, 주어진 틀에 짜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에, 이는 어느 정도 글을 만드는 공식이 존재하기에 이를 대입하면 인공지능은 훌륭한 이야기 한 편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부분에서 대체할 수 없는 것도 역시 사실이며, 그렇기에 인간의 예술이 아예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인공지능의 예술만 존재하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인공지능이 인간과 다른 존재라서 구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인간만의 예술’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다.


예술이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통념이 부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인간만의’ 영역이라는 개념에 회의를 품고 있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만큼 충분히 훌륭한 작품들을 창작해낸 사례들이 다수 존재하기에 이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그러나 인간은 작품을 소비할 때 만들어진 맥락과 작가를 함께 소비한다. 아울러 인공지능 예술 활동의 산물은 인간이 느끼는 진정한 ‘공감’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기에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과 완전히 같은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는 인공지능의 예술을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함께한다는 의식을 지닌 채 이를 영리하게 활용하는 태도를 함양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만의’ 작품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끌림은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강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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