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동학대, 그리고 이에 대한 무관심.

글 입력 2024.02.1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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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개봉한 영화 <어린의뢰인>은 2013년에 발생한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살인사건을 다룬 실화 기반 영화이다. 11살 언니가 9살 동생을 때려죽였다? 저게 말이 돼? 저걸 누가 믿어? 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말이 돼버리고 말았고, 누구는 진짜로 믿었다. 얼핏 보면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영화라고만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오늘 이 영화에서 나타난 무관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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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변호사 지망생 ‘정엽’이 회사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면접관은 ‘1946년 키티 제노비스 사건’에 대해 질문한다. 28세 여성 수잔 키티 제노비스가 범인에게 공격당하는 35분동안 주변엔 38명이라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일명 ‘방관자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건이다. 이 방관자들에 대한 유무죄를 묻는 질문에 다른 면접자들은 유죄라고 대답한 반면, 정엽은 법에 직접적으로 저촉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므로 무죄라고 답한다. 어쩌면 정엽의 말을 통해 감독은 영화초반부터 ‘무관심‘에 대해 관객에게 인식시키고 일종의 복선으로 활용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영화를 처음 볼 때에는 이 첫 장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서 보다보니, 이것이 곧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무관심을 보편적으로 암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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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인 다빈이는 자신과 동생을 학대하는 계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왔다. 경찰서에 찾아가기도 하고,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려고도 하였으나 모두 등을 돌렸다. 심지어 “어린애가 겁도 없네”, “바쁘다” 등의 말로 다빈이의 요청을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겼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첫번째 무관심이다.

 

다빈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정엽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등 돌리는 어른들 속에서 아이들이 붙잡은 마지막 끈이었다. 하지만 성공만을 추구하는 정엽 또한 결국 ‘어른들’에 불과했다. 이로써 두번째 무관심이 발생했다. 아이들에게 마지막 희망마저 없어진 뒤 영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절정으로 치닫으며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이들은 맞고 또 맞기 시작했고, 결국 한 아이(동생)가 죽었다. 그리고 이 화살은 모두 다빈이가 맞았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채로.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조차, 아이들의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별거 아니겠지” 라고 무시해버리는 같은 아파트 주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번째 무관심 또한 드러난다. 다빈이가 악마에게 의지하도록, 그리고 악마가 되도록 만든 것은 결국 그들이었다.

 

그리고 이 무관심이 가져다 준 결과는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결국 계모와 친부에게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그 형량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한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이제 아이들을 마냥 ‘어린사람’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옛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학교에 다니며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다 한들 아이들에게 굳이 일찍 깨닫게 할 필요가 있을까. 꼭 부정적인 것을 먼저 경험하게 해야하는 걸까. 자신이 배운 것이 그대로 실현된다고 믿는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을 깨뜨리는 것은 바로 어른들이다. ‘어른’과 ‘아이’라는 말이 상대적으로 여겨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 올바른 이유를 깨닫고, 부디 ‘아이같은 어른‘, ‘어른같은 아이’ 와 같은 아이러니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예상컨대, 영화 속에서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인물 ‘정엽’을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영화 초반부분의, 성공만 바라보고 사는 모습은 사실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이며 가장 현실적이다. 각기 다른 성공의 기준을 가지고 때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변화한 정엽의 모습일 것이다. 비록 무언가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변화하는 모습은 안타깝지만, 이것 또한 우리의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 성공을 바라고 산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고개를 들어 조금이라도 주변을 둘러봐달라는, 어쩌면 쉬워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요구를 이 영화는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주변에 관심을 안가지고 살았는지 깨닫게 해주는 영화였다.

 

2022년에 집계된 아동학대 건 수는 총 27,971건. 아직 집계되지 않은 2023년 건 수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당장 ‘아동학대‘라고 검색만 해봐도 좋지 않은 기사들이 금방 뜬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면하고 있진 않은가?” 만약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면, 영화 <어린의뢰인>을 꼭 봤으면 한다.


“이제 우리가 지켜줄게 너무 늦어서 미안해”

 

떳떳하게 아이들 앞에서 ‘어른’이 될 수 있는 사회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바란다.

 

 

[김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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