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을런지- 어느 공주의 이야기 [도서]

글 입력 2024.02.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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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소설가 어슐러 르귄은 1989년 그간 작성한 에세이, 강연용 원고, 서평 등을 조합해 <세상의 끝에서 춤추다: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을 펴냈다. 부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 해당 책은 '글쓰는 여자'로서 르귄의 정체성이 가감없이 드러나 있다. 그가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것은 논픽션 원고들마저 모두 설득력 있는 서사로 단단한 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 <어느 공주의 이야기>가 취한 서사화 방식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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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르귄은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표현을 선언처럼 던진다. 그러나 이 선언이 무색하게도 곧 ‘옛날옛날 암흑시대에 살았던 공주’ 이야기가 이어진다. 상투적인 동화의 껍질을 쓰면서 발화가 확 가벼워지는 것이다. 당황도 잠시, 이야기에 빠져들어간 나는 이 첫 선언이 일종의 주춧돌이었음을 깨달았다. 이야기 전반을 누르는, 독자를 이성으로 가라앉히는, 화자 스스로 현실의 자리를 선명히 찍어누르는 무게감으로 주춧돌의 존재감은 점차 선명해진다.

 

<어느 공주의 이야기>는 어슐러 르 귄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발화한 이야기이다. 임신중절을 선택한 계기, 과정, 그것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 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바를 ‘공주’에서 ‘나’로 서사 주체의 지칭을 바꾸며 차근히 밝혀 나간다. 내가 주목한 건 그가 자신의 경험을 서사화하기 위해 반쪽짜리 은유를 사용한 이유였다. 감히 그의 서사화 방식을 ‘반쪽짜리 은유’라고 일컫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그가 완전히 새로운 환상 세계를 조직했다면 어땠을까?

 

예를 들어 이런 이야기로 말이다. 높디 높은 성에 살던 공주는 왕과 왕비의 사랑과 과보호 아래 자랐고, 17년의 은둔 생활 끝에 성밖으로 나설 수 있었고, 운명처럼 만난 왕자와 사랑에 빠져 바깥 세상을 거닐다 아름다운 꽃을 땄는데, 사랑의 증표로 이를 옮겨 심고 가꾸다가, 사실 그 꽃이 영악한 악마가 심어놓은 독초임을 깨닫고... ―서툴고 형편없지만― 그가 이렇게 두꺼운 환상 아래 미약하게 현실을 은유했다면, 효과는 미미했을 것이다. 화자가 다른 방식을 택한 이유이다.

 

그 서사화 방식은 오히려 노골적인 드러내기라고 할 수 있다. ‘대학원’이니 ‘브루클린 하이츠’ 등의 실제 공간을 빌려오고, ‘속도 위반하지 않고 책을 잘 반납하는’ 등의 현실적인 묘사를 포함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 와중에도 그 시절에는 임신 테스트에 토끼를 사용했다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환상성도 가미했다. (개인적인 해석이지만, 당시 임신 테스트가 그만큼 신뢰도가 낮음을 보여줌은 물론,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화자에게 폭력적인 과정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했다 느꼈다.)

 

이 반쪽짜리 은유의 효과는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소재를 에둘러 말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듯 하면서도, 오히려 강력한 펀치를 직구로 꽂는다는 데 있다. 충분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임신중절은 인류 역사에서 언제든 행해지던 일이었고, 많은 여성들을 죄인으로 낙인 찍었다. 그가 택한 서사화 방식은 이제 어설픈 은유나 환상 세계로의 도피는 집어 치우자는 선언과 같다.

 

봉건적으로는 ‘마녀’라고 지칭되어야 하는 임신 중절 수술 경험자를 ‘공주’로, 이를 권유한 부모를 ‘왕족’으로 묘사하며, 당사자의 목소리와 실제 현실을 바라보자는 선언이다. 이야기를 적당한 은유로 두르며 수용성을 높이면서도, 현실과 유리되지 않도록 특정 설정을 유지하고, 이야기의 흥미를 잡으면서 진정성 어린 교훈까지 놓치지 않았다. 르 귄이 뛰어난 이야기꾼이라고 느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말은 알 수 없다. 어떤 이야기는 끝을 유보한 채 영원히 이어지기도 한다. 소설을 쓰고 소비하는 것은 그 불가능성에 매달리는 처절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뛰어난 이야기꾼이란 적재적소에 쉼표를, 줄임표를, 느낌표를 끼워 넣고 결말에는 끝내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찍는다. 물음표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 되고, 이야기는 그렇게 보편화된다. 르귄의 고백이, <어느 공주의 이야기>가 내게 오래 울림을 주는 이유가 꼭 거기에 있다.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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