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술관은 무수한 발굴의 현장이다 - 이야기 미술관

글 입력 2024.04.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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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왜인지 멀게 느껴진다. 작품 속 이야기에 몰입해 능동적인 상상력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영화, 드라마, 소설, 공연과 달리 이미 ‘완성’된 상태로 꿈쩍도 하지 않는, 정적인 예술로 여겨온 탓이다. 미술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는 정이 들지도,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고정된 자리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 채 가만히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미술관이나 그림 전시가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온 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품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 것 같았지만 나는 도대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해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작품을 정말 ‘보기’만 하고 나오기 일쑤였다.


하지만 모든 예술이 그렇듯, 미술 역시 삶과 세상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우리 모두에게 닿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미술은 그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전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가 ‘발굴’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이창용 도슨트의 저서 <이야기 미술관>은 그러한 발굴의 기록이다. 그는 작품이 창작되었을 당시 시대 상황과 작가의 인생을 풀어내며 작품을 해석한다. 그저 지나칠 수도 있었던 작품 속 인물의 표정과 의상, 작품에 그려진 오브제까지 하나씩 뜯어보며, 작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 이야기들을 곱씹다 보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와, 삶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 외침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물론, 그가 말했던 것처럼 작품 해석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작품과 작가, 시대를 알아갈수록 정적이라 여겼던 작품에 서사가 더해지고, 그 서사에 내 느낌과 감상이 쌓인다. 그리고, 늘 고정돼 있다고 생각했던 작품과 인물이 실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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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 미술관에는 ‘영감’, ‘고독’, ‘사랑’, ‘영원’이라는 네 개의 방이 놓여 있다. 작가들이 삶을 살아가며 느끼고, 미술 작품을 통해 표현한 삶의 주제들이다. 그 방에는 우리가 모두 한 번쯤은 들어보고, 보았을 여러 명화가 걸려 있다.


책은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우리에게 어떤 배경지식도 들려주지 않고 작품을 바라보게 한다. 유명한 작가의 유명한 작품. 아는 작품이라 생각하고 책장을 넘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작품 속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 이야기는 작가가 이 작품을 그릴 때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이었을지, 또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는지 등이다. 작품에 대한 소개를 읽을 때마다, 늘 그림을 그저 전시해 둔 앞장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본다. 내가 알고 있었던 건 작가, 작품이 아니라 그저 작가와 작품의 ‘유명세’였구나. 분명 같은 그림이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인다.


뭉크가 <절규>를 그리던 당시의 상황, 클림트가 사랑했던 두 연인, 이중섭이 작품활동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등을 전해 듣는다.


뭉크의 <절규>는 절규하는 남자의 모습이 아니라, 자연이 절규하는 소리를 듣고 귀를 틀어막은 남자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클림트의 <키스>는 서로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일 수도 있지만, 절벽 끝에서 언제라도 떨어질 것 같은 연인의 모습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는 연인에 대한 클림트의 불안과 초조함이 반영된 것일 수 있다. 흔히 작가의 우울함과 비관이 투영됐다고 여겨지는 이중섭의 <달과 까마귀>는 그의 절망보다는 멀리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게 닿고 싶은 그의 간절함이 보이는 듯하다.


그저 물체에 대한 묘사로만 여겼던 정물화에도 그 대상에 불어넣은 작가의 마음이 읽히며 작품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고흐의 <해바라기>에는 자기 뜻을 알아준 고갱에 대한 그의 고마움이 보이고, 그의 또 다른 작품 <꽃 피는 아몬드 나무>에는 겨울의 차갑고 매서운 바람을 꿋꿋이 견뎌내 건강과 희망을 상징하는 아몬드 나무처럼 조카가 건강하고 단단히 자라나길 바라는 그의 따스한 바람이 보인다.


이창용 도슨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미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미술 작품에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 역사가 한 데 담겨 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읽어내는 일은 우리 삶을 다채롭게 해줄 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하지만 우리는 미술 작품이 전하는 무수히 많은 말들을 잘 듣지 못해, 시간을 들여 작품과 작가를 공부하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 미술에 다가가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미술 작품에서 무언가를 발견해 내고, 결국 작품이 나에게 와닿는 순간은 더 소중하다.


이야기 미술관을 나온 후, 미술관에서 만났던 작품과 몇몇 이야기들을 곱씹는다. 그 작품들을 실제로 본다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혹여나 이야기 미술관에서 전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를 나에게 새롭게 전해주지는 않을지 생각해 본다. 이제 미술관을 찾아가야겠다. 전시장을 돌며 모든 그림을 그저 보는 것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전시장 한 곳에 가만히 멈춰 서서 각각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뜯으며 읽어야겠다. 그리고 개중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하나의 작품에 나의 상상과 해석을 불어넣어야겠다. 늘 그 자리에서 고정돼 있어서, 나에게 어떤 틈도 허용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미술 작품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 순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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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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