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나의 프랑스 적응기 2] 니하오! [여행]

글 입력 2024.02.0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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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도착한 지 사흘째였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햄버거를 먹고 기분 좋게 가게를 나서려는데, 가게 주인이 중국에서 왔냐, 일본에서 왔냐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아하’하는 탄성을 내더니 웃으면서 ‘니하오’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처음 만난 인종차별 워딩이었는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저 사람은 내 출신이 궁금해서 물은 게 아니라 그냥 ‘니하오’를 하고 싶어서 화두를 던졌구나,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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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종이 누군가에게 재미가 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니하오’와 인종차별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니하오’를 듣는다면 캣콜링(길거리에서 여성에게 행해지는 언어적 성희롱)과 유사한 불쾌감으로 다가올까, 정도로만 상상했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 단순한 중국 인삿말은 그것과는 다른, 나의 정체성에 대한 모멸적인 행위였다.

 

지금 이 사람의 눈에는, 밥을 먹고 계산하려는 '평범한 손님 1'로 보이지 않고, 툭 튀어나온 ‘동양 여자’로 보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가 나에게 ‘네가 누군진 관심 없어, 그냥 넌 ’동양인‘이네!’라고 하는 기분이었다.

 

또 하루는, 파리 몽파라나스 역 근처에서 걷던 중이었다. 저 멀리서 전동 킥보드를 타고 있던 백인 남자가 방향을 틀어 이질적으로 보도와 가까이 오더니 즐거운 듯 “니하오!”를 외치고 사라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화가 나지 않았다. 이전에 느꼈던 위축감과 공포심 대신에 그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가 가진 악의와 의도가 지나치게 가시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후로도 에펠탑에서 우리에게 웃으며 ‘셰세’하던 백인 여자, 파리 지하철역에서 우리에게 다가와 ‘셰셰’거리던 중동 남자 등등, 제법 많은 ‘니하오’를 경험하며 프랑스 정착 초기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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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학교 주변에 거주하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길거리에서 동양인 차별 표현을 듣거나 하지는 않고, 나를 사람 ‘박소은’으로 대해주는 많은 친구가 곁에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동양인 차별 표현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다르게 생긴 누군가를 향한 혐오에 대해서 생각할 만한 계기를 던졌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대해서 생각한다. 국적을 가지고 누군가를 (혹은 어떤 사건을) 판단하고 모욕하는 일은 한국 인터넷상에서 불 번지듯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혐오 문화다. 중국인, 동남아시아인, 흑인을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에서 ‘툭 튀어나온’ 존재들을 판단하고 조롱하는 우리의 습관은 과연 이들의 ‘니하오’와 얼마나 다를까.

 

한국에 돌아간다면 1월의 내가 느꼈던 감정을 느끼고 있을 누군가에게, 툭 튀어나온 누군가에게 먼저 이름을 묻고 싶다고 생각했다.

 

 

 

박소은 컬쳐리스트 태그.jpg

 

 

[박소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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