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그네로 살아가는 당신에게 - 뮤지컬 '겨울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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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초반부터 민우는 총을 맞아 피를 흘리며 등장한다. "민우는 왜 총을 맞았을까?" 궁금증이 생길 무렵, 기다렸다는 듯 스토리는 흡입력있게 전개된다.
의대생 민우는 참 순수하다. 아니, 순수했다. 다혜와의 사랑에 설레는 마음이 부풀기도, 아버지의 슬하에서 가족이 주는 안정감도 누렸다. 비록 찰나긴 했지만.
민우의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사업은 파산 직전에 이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병세가 위중하시고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친형마저 민우를 떠나며 그제야 민우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민우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 누가 앞길이 창창하던 청년이 범죄자가 될 줄 알았을까?
너무 짧은 시간 동안 민우에게 벌어진 사건들은 참 가혹했다. 세상이 민우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민우는 고작 20대 초반 대학생일 뿐이었다. 내가 그 나이 땐 몸만 큰 아이였던 것 같은데, 그 사실에 더욱 마음이 아팠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민우는 결국 차가운 음지로 발을 내딛는다. 비참한 자신을 받아줄 곳이 그곳뿐이라고 굳게 믿으며. 그나마 다행인 건 어두운 뒷골목이라도 민우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는 것이다.
<겨울나그네>는 故 최인호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그의 작품에는 주로 방황하는 지식인과 상처 많은 작부가 나온다. 본 작품에서는 민우와 제니가 지식인과 작부의 역할을 대신한다.
제니는 클럽의 댄서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다 민우를 만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되는 서브 여주다. 제니는 민우를 흠모하다 결국 그의 아이까지 갖게 된다. 끝까지 다혜를 놓지 못하는 민우를 보면서 한번 쯤 화를 낼 법도 한데, 여전히 제니의 유일한 소망은 민우가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제니, 민우, 다혜, 다혜를 지키는 현태도 모두 순애보의 인물들이다. 본 작품이 쓰인 1970년대의 정서가 더욱 그러하다. 요즘 인스턴트식의 사랑에 익숙한 MZ들의 세상을 살다가 일편단심의 묵직한 사랑을 보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이 있었다.
극이 마무리되며 마침내 '겨울 나그네'라는 제목이 이해가 되었다. 민우는 비록 쓸쓸한 겨울 한 철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나그네와 같은 발자국을 남기고 떠난다. 그 발자국이 누구에게는 삶을 새롭게 시작할 용기일 수도, 누군가에게는 가슴 시린 기억을 떠올리는 발자국일지도 모르겠다.
각자 우리가 살아가는 계절은 모두가 다르다. 푸릇한 봄, 뜨거운 여름, 무르익은 가을, 추운 겨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나그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의 인생은 한 때이다.
한 때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나그네로 살며 인생에 어떤 발자국을 남길 것인가? 그러기 위해 오늘은 어떤 한 걸음을 내딛었는가?
쓸쓸하게 떠난 민우를 보며 마지막으로 든 생각들이었다.
[한대성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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