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언으로 다시 쓰기 - 김애란, 홈파티 [도서/문학]

재현을 넘어 그 미래를 상상하고, ‘예언’하는 예술
글 입력 2024.01.1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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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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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배우 이연은 후배 성민의 권유로 모 대학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마친 동기들이 여는 홈파티에 초대받는다. 이 홈파티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다시 말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이 모여있다. 이들은 은은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계급적 격차를 보여주며 서로에게서 우월함을 확인하려 든다.


집이라는 공간을 전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홈파티는 그것을 열 수 없는 계층과 열 수 있는 계층 사이의 격차를 드러낸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집은 단순히 거주 공간 이상을 의미하기 떄문이다. “이연은 물건 하나하나에 깃든 집주인의 시간과 체력, 미감과 여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98쪽) 집은 집주인이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하고, 어떤 취향을 물려받았는지를 알려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계급 격차


 

웬디 브라운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사회는 물질적 불안정, 극심한 경쟁으로 불안감, 좌절감, 무력감, 소진, 우울을 양산한다. 자본이 다국적화되고, 노동이 초국가적으로 이동하면서, 노동은 불안정해졌고 계급 구조는 변동되었다. 사회와 국가의 체계적 안전망은 축소되고, 사회적 위험은 증가했다. 개개인은 각자도생해야 하며, 그들의 노력은 삶과 행위 규범으로 확립된다. 개인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 상태를 적극 관리해야 한다.

 

 

이연은 이 밤이, 그리고 또 이 계절이 낯선 듯 익숙해 마치 보이체크가 마리를 죽이기 전 한 말처럼 “몸이 차가우면 더 이상 얼어붙지 않으므로” 많은 이들이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처럼 느껴졌다. (122쪽)

 


소설 <홈파티>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회야말로 “다 같이 추워지기로 결심한 어떤 시절 혹은 시대”와 같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는 계급이 폐지되었지만, 부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제, ‘개천에서 나는 용’보다 ‘올드머니’를 선망한다. 다시 말해, 세대를 거듭해 축적된 ‘자연스러운’ 부와 명예를 세습하길 원한다.

 

'이연'과 '성민'이라는 개인의 이름과 달리 ‘서(명상센터 소장), 오 대표, 박(성형외과 의사), 김(법률회사 변호사)’과 같은 소설 속 지칭은 몰개성하지만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 이는 작중에서 언급되는, 이연이 코로나로 무대에 올리지 못한 뷔히너의 희곡 <보이체크>의 형식상의 특징을 빌려온 것이다.

 

극심한 빈곤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보이체크는 돈을 받고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 연구의 실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보이체크는 끝내 미쳐 자신의 연인 마리를 살해한다. 독일 최초로 하층민이 주연인 희곡 <보이체크>에서는 사회적으로 상류층이거나 지배계급인 인물들은 모두 ‘대위’나 ‘박사’, ‘교수’처럼 구체적 이름 없이 직업과 신분으로만 등장한다. 김애란은 ‘오 대표’, ‘박’, ‘서’와 같은 지칭과 ‘이연’과 ‘성민’이라는 지칭을 대비함으로써 명시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신자유주의 사회 속 계급을 가시화한다.

 

 

 

마리의 예언



이연은 먼저 일어나려다가 오대표의 팔십 년 넘은 빈티지 잔 세트를 깨트리고 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연을 오대표는 오히려 진정시키고 위로한다.


 

오 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121-122쪽)

 


오 대표는 비싸고 귀한 찻잔을 잃었다. 그러나 오히려 태연히 허둥거리는 이연을 진정시키며 여유롭고 자애로운 면을 보여준다. 그 순간,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찻잔을 대가로 오대표는 이연의 ‘급’을 알아채고, 동시에 그와의 계급 격차에서 비롯된 우월감을 만끽한다.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이다.


오 대표의 반응을 본 순간, 이연은 차갑게 얼어붙는다. “오늘 어땠어요?” 묻는 오 대표에게 이연은 문득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주고 싶다면 그에게서 먼저 그걸 빼앗으라’는 법칙을 떠올린다.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요.

―…….

―너무너무 좋았어요, 정말. (123쪽)

 


그러나 이연은 오 대표의 계산을 망친다. 오 대표의 성취, 우월감을 전유하면서 이연은 퇴장한다. 김애란은 <홈파티>에서 계급적 격차를 가시화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예술적, 혹은 소설적으로 장면을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지배계급의 우월감을 다른 계급이 전유할 것임을 ‘예언’한다.


 

“그때 이연은 연출에게 ‘왜 보이체크는 자신의 진짜 적인 대위나 군악대장, 하다못해 의사도 아닌 마리를 죽였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요즘 시대에 이 설정이 혹 퇴행적으로 읽힐까 걱정된다’고. 그러자 연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퇴행이 아니라 오히려 예언으로 읽힐 수 있으니 너무 걱정 말고 관객을 믿어보자’고 했다.” (112쪽)

 


뷔히너의 <보이체크>가 하층민의 현실을 재현하고 그의 비극에 주목하도록 했다면, 김애란은 더 나아간다. 현실을 재현하는 문학을 넘어 그는 그 미래를 상상하고, ‘예언’한다.


이러한 예언의 주체가 ‘보이체크’가 아니라, 연인 ‘보이체크’에게조차 살해당하는 ‘마리’의 역을 맡았던 이연이라는 점은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이다.

 

 

*김애란, <홈파티>,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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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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