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예술과 아름다운 것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1.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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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미술사의 이해'라는 강의 파이널로 에세이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주제였던 것 같다.

 

한 주 후에 과제를 돌려받았는데, 글 중에서 내가 아름다운 것이 곧 예술이라고 쓴 부분에 교수님이 빨간 펜으로 '반드시 아름다워야만 예술일까요?'라고 써놓으신 것이다. 그걸 보면서 아니 그럼 아름답지 않은게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며 A+가 아닌 A라는 성적을 오랫동안 납득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십년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드디어 그 교수님의 코멘트를 이해할 것 같다. 과거의 난 밝고, 예쁘고, 아름다운 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즐겨보았던 작품들도 다 비슷한 분위기였다.

 

현재의 나에게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여러 작가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작품 분위기가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전쟁의 상처, 집단적인 기억이나 트라우마, 이주민의 삶 등 오히려 팍팍하고 고단한 것들을 주제로 삼은 작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예술을 통해 그러한 아픔을 어루만지는 작가들의 손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알렉산더 칼더라고 하면 대부분 경쾌한 모빌 작품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허공을 부유하며 공기 흐름의 자그마한 변화에도 움직임을 달리하는 모빌은 그 리듬감과 가벼움 덕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런 칼더에게 의외의 작품이 있다. 대중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수은 분수'이다. 이 작품은 공중에 떠있는 칼더의 모빌을 그대로 바닥으로 내린 뒤, 물이 작품 위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설치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흐르고 있는 액체는 물이 아니라 독극물인 수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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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스페인 전쟁의 잔인함을 고발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가 칼더에게 커미션한 작업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다. 당시 스페인의 알마덴이라는 지역은 당시 전세계 수은의 60%를 공급하고 있던 요충지였는데, 프랑코 장군을 필두로 한 군대가 알마덴을 포위해버린다. 집권당이었던 공화당 정부는 이를 알리기 위해 칼더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스페인 전쟁'하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놀랍게도 이 두 작품은 1937년 파리만국박람회에서 함께 전시되었다고 한다.

 

작품이 만들어진 1937년에는 아직 수은의 성질이나 독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수은 채굴은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었고, 정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수은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그 독성과 위험이 알려졌다고 한다. 현재 작품은 작가의 기증으로 바르셀로나의 호안 미로 재단에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유리로 사방을 막아 수은의 독성이 관람객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관리되고 있다.

 

수은과 전쟁은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치명적인 재료와 칼더의 조형적인 구조가 만남으로써, 참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한 전쟁에 다시는 손을 대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를 해주고 있는 것 같다.

 

 

[강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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