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새해 복을 거절하려다 [사람]

발가벗은 초콜릿
글 입력 2024.01.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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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아래 보기 중 거절하고 싶은 것은?

 

1. 잘 지내?

2. 밥 한번 먹자.

3. 축하해.

4. 새해 복 많이 받아.

 

[정답] 위 보기 모두

 

해가 바뀐 것이 무슨 대수라고 최근 4번을 꽤나 받았다. 문장 자체는 거부감이 없다. 단지 그 문장의 무게 없음이 싫을 뿐이다. 눈빛에서, 음성에서, 손가락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1-4번을 썼다 지운다. 상대도 나처럼 느낄까 봐 조심스러워서. 내가 돌려받았을 때 부끄럽지 않을 때만 건네는 것을 누가 알까.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이라, 재수 없는 인간을 자처한다.

 

 

카카오.jpg

 

 

그러다 진심이 꼭 차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100% 카카오가 떫고 텁텁하듯 86%, 72%, 56%, 그 이하여도 나쁘지 않은 진심인 듯.

 

이때 폰이 진동한다. 옛 동료가 생각나서 전화했다며 새해 복을 준다. 동료의 숨소리를 들어 보니 30% 언저리다. 진심 함량에 대해 생각하기 10분 전에 이 전화를 받았다면 고맙다는 말로 끝냈을 것을 추가로 TMI가 오간다. 통화를 마치며 나도 용기 내어 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발가벗은 느낌이다. 참신하다. 과하지 않은 진심이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적당히 단 맛이 난다. 이래서 사람들이 인사를 주고받는 건가. 내킨 김에 더 해보자 싶어 생각만 했던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울리자마자 그쪽에서 전화를 받는다.

 

“어머, 네가 전화를? 잘 지내지?”

“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니가 복 받았으면 해서요.”

“괜찮니? 별일 없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복을 주다니! 고맙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했다가 괜찮냐는 말을 듣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마는 이번에도 느낌이 좋다.

 

내가 너무 동굴 속에 있었구나, 100%일 때만 주고받으려는 생각에 다른 사람의 진심을 차단했을 수도 있겠다. 나의 100%가 다른 사람이 느끼기에 1%로 느껴질 수 있듯, 다른 사람의 온전한 진심을 나만의 방식으로 수치화하여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그동안 100m 이상 안전거리 유지했던 친구들에게 복을 마구 뿌렸다.

 

며칠 뒤, 한 친구가 내 복에 대한 답으로 안부를 묻는다. 안부만 묻고 끝날 친구가 아닌데.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을 거란 생각에 나답지 않게 관심을 가지고 묻는다.

 

“잘 지내?”

 

친구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내 안의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진다. 사과가 머리 위로 떨어지듯. 아프다.

 

“네 목소리 들으니 긴장이 풀려.”

 

친구따라 같이 운다. 왜 우는지 모르겠지만 얘가 슬프다는 사실만으로 울 이유는 충분하다.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네가 힘들 때 같이 울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그래서 말했다.

 

“밥 한번 먹자.”

 

1번은 그렇다 쳐도 내가 싫어하는 2번까지 스스로 뱉어 버렸다. 친구는 내 진심을 몇 %로 느꼈을까.

 

그동안 내가 뿌리친 진심은 총 몇 %일까.

 

측량할 수나 있을까.

 

 

 

김윤 에디터 명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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