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순간이 모여 완성되는 한 사람의 세계 –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글 입력 2023.12.3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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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는 유독 영화를 많이 봤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늘 다른 사람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했다. 누군가와 같이 본 영화라면 집에 돌아오며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고, 혼자 봤다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감상평을 읽거나 영화관을 나서는 다른 관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간접으로든 직접으로든 영화 감상평을 나누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같은 영화를 봤더라도 감상은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나에게는 인상적인 장면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았고, 나에게는 조연에 불과한 인물이 누군가에게는 영화 전체를 좌우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영화 감상평에서 그 사람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그럴 경우, 감상은 그 자체만으로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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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31일까지 63아트에서 열리는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은 일러스트레이터인 맥스 달튼이 영화에 모티프를 받아 그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다. 나에겐 지난여름에 이어 두 번째로 보는 전시였다. 처음 볼 때는 내가 아는 영화와 모르는 영화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면, 이번에는 맥스 달튼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그림에 담는지 좀 더 주목해서 봤다.


시간의 예술인 영화를 어떻게 공간의 예술인 그림으로 옮길 것인가. 맥스 달튼은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영화의 시그니쳐, 즉 상징적인 장면 하나를 포착해 캔버스에 옮기는 것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대표적이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영화 오프닝에서 오드리 햅번이 뉴욕 티파니 본점의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장면을 포착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경우 인류의 조상인 유인원이 공중에 집어 던진 뼈다귀가 우주에 떠 있는 비행선으로 전환되는 유명한 시퀀스를 그림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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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식은 영화에 나오는 건축물, 주로 집을 그리는 것이다. 맥스 달튼이라는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였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여기에 해당한다. 여러 작품을 보다 보면 맥스 달튼이 정교한 건축물을 그리는 데 특화된 작가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특기는 웨스 앤더슨 감독 특유의 정교한 영상미와 잘 맞아 떨어졌기에 큰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외에도 맥스 달튼은 <레옹>, <아담스 패밀리>, <이터널 선샤인> 등의 영화를 건축물을 그리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각 영화의 개성이 반영된 건축물을 그린 다음 거기에 영화 속 인물을 배치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특히 <레옹>의 경우 영화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캔버스 하나에 펼쳐 놓아서 마치 동시에 벌어지는 일처럼 그려냈다. 시간의 예술이 공간의 예술로 전환된 것이다.


앞서 영화의 상징적인 한 장면을 포착하는 방식이 그 영화를 이미 아는 사람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건축물로 영화를 표현하는 방식은 해당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영화의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특히 <기생충>이나 <설국열차>처럼 영화에서 배경이 되는 장소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는 상징적인 요소일 때는 맥스 달튼의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영화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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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유형은 등장인물 나열하기다. 단순해 보이지만 역사가 오래된 시리즈물은 등장인물을 모두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작품이 된다. 맥스 달튼은 <스타워즈> 시리즈와 마블의 히어로 영화 시리즈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모아 그렸다. 해당 시리즈물의 팬이라면 한곳에 집합한 모든 등장인물을 보며 심장이 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꼭 하나의 시리즈에 나오는 등장인물끼리만 묶을 필요 없다. 맥스 달튼의 작품 중 <호러 다이커 컬렉션>은 공포영화 속 크리처나 귀신들만 모은 것이다. 여러 편의 영화에서 연인과 친구들만 모아서 그린 작품들도 있다. 각각 다른 작품에서 소환된 듯한 캐릭터들은 생김새도 분위기도 달라서 보는 재미를 더한다.

 

영화 속에서 근무하던 캐릭터들이 휴일을 맞아 쉬던 중에 갑자기 한 자리에 소집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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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과 2막에서 맥스 달튼이 영화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을 충분히 보고 나면, 3막 ‘맥스의 순간들’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맥스 달튼의 오리지널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를 소재로 그린 그림과는 또 다른, 달튼이라는 작가 자체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여기서는 <뉴욕의 마지막 공중전화>, <꿈꾸는 다락방 타자기> 등 맥스 달튼이 작업한 그림책 원화를 포함해 LP에 그린 그림도 전시 중이다. LP판 그림은 맥스 달튼이 어릴 때부터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들의 LP판에 헌정의 의미로 그린 것으로, 그의 세계를 이룬 것들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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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영화의 순간들’이라는 전시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그 순간들이 더해져서 만들어진다. 맥스 달튼 역시 영화의 순간들을 모아 자신만의 이야기 한 편,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었다, 그의 전시는 조각보를 닮았다. 각각 다른 영화에서 비롯된 다른 재질과 무늬의 자투리 천들이지만 합쳐지니 조화를 이룬다.


맥스 달튼의 그림을 보며 우리의 일상도 그렇게 새롭게 엮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이라는 이유로 그냥 지나쳐버린 짧은 시간을 모은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조각을 모으고 모아 우리는 분명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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