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너희와 함께하고 싶어" - ACC 기획전시 '가이아의 도시' [미술/전시]

의인화된 식물 '트리 맨'이 인간에게 전하는 목소리
글 입력 2023.12.3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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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문화전당역 근처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방문했다. 광주가 고향인 나의 학창 시절에는 모든 모임 장소가 구시청 일대의 공간이라 자주 지나갔던 곳이었지만 서울 살이를 시작한 이후 제대로 방문한 적이 없어 아쉬움이 컸다. 연말을 맞아 본가를 가는 김에 다시 한 번 아시아문화전당을 방문했고, 익숙했던 광주를 떠나고서야 이 기관만의 고유한 가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제적인 예술기관이자 문화 교류기관인 ACC는 5·18 민주화운동(May 18 Democratic Movement)의 인권과 평화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는 배경에서 2015년 개관했다. ACC에서는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 참여자들이 아시아 문화에 대한 교류와 연구를 통하여 경계를 가로질러 화합한다.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의 5개원으로 구성된 이 기관에서는 1년 내내 다양하고 역동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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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는 ‘빛의 도시’인 광주답게 빛을 이용한 전시가 활발하다. 건물 설계 주제는 투명성과 빛을 상징으로 하여 광주와 아시아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자연광과 조명을 적극 유입하여 공간들을 구획한 ACC의 공간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특히 돋보인다.

 

ACC 예술극장 빅도어 미디어 파사드는 연말을 맞아 광주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예술극장 빅도어에는 이번 달 22일부터 내년 2월 4일까지 미디어 파사드 두 작품이 매일 30분 간격으로 5분간 상영된다. 마치 동화 속 세상을 연상시키는 이 공간은 작품이 상영되기 전부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ACC 전시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근원지인 광주의 지역적 정체성을 근간으로 한다. 또한 기관명 답게 아시아 문화 연구를 통한 국제전시로 매해 국제 연계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28일 ACC를 방문한 당시에도 상설전시를 포함해 총 16개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난 세 편의 전시를 감상하였고, 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사유하는 <가이아의 도시> 전시는 세 편의 전시 중 가장 인상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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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ACC 포커스 <가이아의 도시>는 자연을 대변하는 ‘식물’과 문명의 주체인 ‘인간’의 관계를 사유한다. 온 만물의 탄생과 죽음을 관하는 대지의 어머니 ‘가이아’는 모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지구의 화학적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능동적 존재’로서의 대자연을 의미한다.

 

<가이아의 도시>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욕망과 동시에 자연과 공존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는 모순적 존재임을 나타내며 인간들과 공존을 실천하려는 가이아의 능동적인 의지를 다룬다. 즉, ‘살아있는 지구’인 가이아의 목소리를 통해 지속 가능한 생태 문명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사회적기업인 소소한 소통, 그리고 발달장애인분들이 협업하여 ‘쉬운 해설’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전시 해설에 종종 어려운 미학 전문 용어들로 인해 이해가 어려웠던 적이 있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해설을 발달장애인분들의 도움을 받아 제공한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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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맨(Tree Man) - 유이치 하라코(Yuichi Harako)>

 

 

엊그제 맞았던 크리스마스로 인해 최근까지도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이 SNS 곳곳에 업로드되었다. 크고 작은 장신구들과 조명들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는 언제나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시 <가이아의 도시>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는 전나무가 연상되는 트리가 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형상이 아닌 사람의 몸을 갖추고 있는 하이브리드 트리 캐릭터 ‘트리 맨(Tree Man)’이다.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이 트리 맨은 식물도 인간과 공생하려는 의지를 지닌 능동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유이치 하라코(Yuichi Harako)’ 작가는 트리 맨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지구 저편의 숲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다른 생명체와 일상을 보낸다는 내용을 중심 스토리로 삼는다. 인간과 비슷한 신체구조를 가진 트리 맨은 인간이 식물보다 우월하다는 관점보다는 식물을 인간과 대등한 관계로 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까. 이 작품을 통해 식물을 비롯한 자연을 지구 생태계를 함께 만드는 우리와 같은 대등한 구성원으로 여겨 이들과 공생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의인화 시킴으로써 친숙함을 얻는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었던 수많은 인형들은 인간으로부터 인격을 투영받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었다. 마찬가지로 자연과 연대하는 좋은 방안은 자연을 의인화시키는 것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연을 정복하려는 욕구가 들 때 마다 이 트리 맨을 떠올려보자. 식물도 인간과 공존하고 싶어한다고, 식물도 인간과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가이아의 목소리에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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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협력시퀀스 - 노경택>

 

얼핏 보아도 기계와 식물의 융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중협력시퀀스>는 서로 다른 종인 인간과 식물, 기계가 협력하여 하나의 시퀀스를 구성하고, 즉흥적으로 서사를 만드는 작품이다. 위 작품은 세 종의 협력작품 중 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장치로 구성된 '마림바 시퀀스'이다. 식물에 부착된 근전도 센소로 식물의 미세한 전기신호를 잡아낸다. 그리고 어느 특정한 값이 나오면 마림바의 말렛을 떨어뜨리게 한다. 마림바를 두드리는 값은 식물이 결정하며 인간은 작품 속 핸들을 돌려 마림바의 음계를 결정할 수 있다. 즉, 궁극적으로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데에는 인간과 기계 그리고 식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 

 

인간이 기계와 협력하여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가 당연하게 알고있는 사실이다. <이중협력시퀀스>는 인간과 기계의 협력구조에 생태계를 더해 식물 또한 인간과 협력할 수 있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인간의 삶에 기계가 필수적인 것 처럼 자연 또한 인간의 삶에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함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다. 인간과 기계, 식물이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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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의 기술 - 김자이>

 

 

텃밭 가꾸기는 김자이 작가의 휴식 방법이다. 작가는 정신 없이 바쁜 현대 사회에서 휴식의 중요성에 집중했고 직접 경작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한 작업이 <휴식의 기술>이라고 한다. 

 

위 작품은 농촌이 아닌 도심 속에서 조성된 인공 텃밭의 형태로 구현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시켜 고층 건물을 세우고 지하철, 도로 등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향기를 잃지 않으려 여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휴식의 기술>은 자연 파괴의 주범인 인간이 식물과의 공생을 갈망하는 모순적인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고 변형시켜왔다. 인간이 자연을 배척하여 완성시킨 도시는 영원히 안정적일 수 있을까? 도시화로 인한 피해와 기후위기를 맞아 인간은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으로 자연에 대한 관점을 달리해야 할 시점에 놓이게 되었다.

 

자연을 무조건적으로 정복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인간은 생태적 연대에 대해 다시 재사유해야 한다. <가이아의 도시>를 통해 인간과 공생하고자 하는 능동적 존재로서의 자연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식물의 피동적인 특성이 아닌 현상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동물적 특성에 주목하여 전시를 관람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임예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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