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맥스 달튼 영화의 순간들 63 - 숲을 보든 나무를 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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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설레는 만남
‘이번 겨울은 케빈’과 함께라는 말이 있다.
연휴 기간 중 채널 좀 돌려 봤던 사람이라면 친숙할 이름, 케빈. 영화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주인공이다, 케빈에게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매번 홀로 남겨지는 징크스가 있다. 다른 가족들은, 심지어 케빈네 집은 대가족인데도, 어떤 이유로든 케빈을 놓치고는 저들끼리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버리고 만다.
크리스마스 같은 즐거운 명절에, 그것도 어린애 혼자서 ‘나 홀로 집’이라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영화 속 케빈의 모습은 마냥 외롭지만은 않았다. 1편에서는 내내 형제들에게 치이다 처음으로 자유를 누리고, 2편에서는 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며 아빠 카드를 긁는다. 물론 자신을 노리는 좀도둑 듀오를 상대로 두뇌전을 펼치는가 하면, 아이답게 엄마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우왕좌왕할 때, 그 난리 통에서도 우연한 즐거움을 얻어가는 때가 있다. 수많은 영화를 그림으로 담아내었다고 한 맥스 달튼을 통해 어떤 영화와 만날 수 있을지,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은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며 전시전으로 향했다.
숲, 그리고 나무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좋아하는 것을 넘어 모든 등장인물의 이름을 싸그리 외우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을 몇 번이라고 돌려볼 정도의 사랑꾼이라면, 달튼의 전시회는 보물창고와도 같다.
달튼의 그림은 정성스럽다. 내가 이만치나 이 영화 및 드라마에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숲을 먼저 보든 나무를 먼저 보든 눈이 즐겁다. 도로의 전경이나, 아파트를 통째로 들고 온 듯한 구조 속 숨은 디테일을 찾는 재미가 있다. 해당 매체를 접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주인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들을 그린 ‘베스트 프렌드’. 나는 그중 아홉 쌍 정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많은 친구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반갑게 느껴질 그림. 영화에 박식한 지인과 함께 방문해 누가 누가 더 잘 아나 대결을 해봐도 좋을 것이다.
다시 보는 '오징어 게임'
달튼의 그림에서 여러 반가운 얼굴들을 찾을 수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국내 작품을 그린 그림은 더욱 반가웠다. 서울을 상징하는 마천루, 63빌딩에서의 전시회였던 만큼, 달튼 역시도 그의 방식으로 한국 관람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이 갓 나왔을 무렵, 최대한 스포일러를 피하며 다음의 게임을, 희생양을, 최종 승자를 기대했던 기억이 있다. 이야기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따라가며 느꼈던 감정은 각별했다. 그런가 하면 모든 것을 다 본 다음에야 가질 수 있는 감상도 있다. 달튼이 포착한 작품을 볼 때, 그것은 열쇠가 되었다.
서로 엇갈리는 방향으로 향하는 참가자와 진행 요원. 웅크려 있는 오일남 할아버지. 공중에 매달린 돼지 저금통과, 뚫린 벽 너머로 보이는 술래 인형과 오징어 놀이판. 오징어 게임을 본 시청자라면 이것들이 어떻게 얽혔는지를 알고 있다.
동물 가면을 쓴 채로 참가자들을 감상하던 이들처럼 관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숨은그림찾기’ 하듯 재미있게 감상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영화에서 본 모습 그대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내부는 그윽한 빨간색이다.
영화 속 색감을 그대로 옮겨 바른 듯한 내부가 크리스마스 시즌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들여놓은 소품 또한 관람객의 몰입을 도왔다. 언제라도 직원이 나타나 끌고 갈 듯한 이동식 카트, 그리고 화사하게 꾸며 놓은 장식 아래 보이는 키 보관소.
그곳에 계속 있자니 나도 모르게 체크인 수속을 밟아야 할 것만 같아, 없는 직원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됐다. 과연 다른 관람객들 역시 데스크 위 놓인 전화기를 이용해 사진을 남기는 등, 이 공간의 연출을 즐기고 있었다.
달튼의 세계관 속에서 '나'를 찾아내다
반복을 싫어하는 나는 아무리 좋은 영화라 해도 대개 한 번만 보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잊게 되는 부분이 많은데, 그가 보여준 패러디를 통해 가물했던 추억을 일깨울 수 있었다.
한편 달튼 스스로의 상상력 또한 풍부했다. 수십 개에 달하는 프레임 속 동화를 따라가며, 그만의 세계관 속 톡톡 튀는 주인공 어린아이의 모습을 감상했다. 한 부분 한 부분이 잘 이어져 있어,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달튼의 전시회 속 메인 키워드인 ‘영화’를 통해, 무엇보다 추억을 얻어갈 수 있었다. 사람마다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나는 주로 예전에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노래를 통해 과거와 마주한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는 자우림의 스물 다섯, 스물 하나를 들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했고, 어렸을 때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가 그리워 성인이 된 이후 해당 시리즈를 다시 사 모으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거쳐 왔던 영화들을 달튼의 전시회에서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나와 마주하게 된 시간이었다. 2023년이 끝나기 전 또 새로운 영화가 나를 찾아올 수 있길, 그래서 되돌아 볼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안세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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