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옵아트의 세계로 - 반응하는 눈, 빅토르 바자렐리

글 입력 2024.01.1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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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많은 사람이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회화에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을까. 지금은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 덕에 손으로 그린 그림도 비교적 쉽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세상이지만, 50년 전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10초 짜리 애니메이션을 위해서는 수십, 수백 장의 밑그림이 필요했다. 한 장의 그림은 찰나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반응하는 눈(The Reponsive Eye)>이 어떻게 화제가 되었을지는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출품작들은 구체적인 형상 없이 선과 무늬, 동심원 등 단순한 형태가 반복되고 변주되며 일정한 패턴을 이뤘다. 여기서 예술가 개인의 자아나 정서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 작품들은 전시 제목처럼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눈을 즉각 반응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림 앞에서 무언가를 생각하기도 전에 착시 효과로 발생하는 움직임을 감지하며 신기해했다.

 

당시 <타임>지에서 이 전시를 다루며 ‘옵아트’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후 이러한 미술 경향은 옵아트로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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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하는 눈>에 참여한 작가 중 한 명이었던 빅토르 바자렐리는 옵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다. <반응하는 눈>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동일한 제목의 빅토르 바자렐리 작품전이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헝가리와의 수교 33주년 기념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빅토르 바자렐리의 작품 원화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빅토르 바자렐리가 광고포스터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부터 옵아트의 대표 작가가 되기까지 차근차근 걸어온 발자취를 담았다. 의대생이 되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마음속으로 예술가를 꿈꿨던 바자렐리는 예술학교인 뮤힐리 아카데미에 진학한다. 이 시절 바자렐리가 그린 그림을 몇 점 볼 수 있는데, 당연하게도 옵아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거장의 시작은 의외로 평범했다. 바자렐리는 졸업 후 작가로 데뷔하는 대신 상업광고디자이너로 경력을 시작했다.

 

 

Victor Vasarely, 1939, Zebras, Gouache, pencil, colour and white chalk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jpg

Victor Vasarely, 1939, Zebras. Gouache, pencil, colour and white chalk on paper. Vasarely Museum, Budapest

 

 

광고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기 빅토르 바자렐리의 그림은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직관적이다. 컴퓨터로 그린 것처럼 반듯한 선에서는 앞으로 그가 그릴 옵아트 작품들의 시초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어지는 섹션의 '이심적 운동', '얼룩말' 등에서는 광고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도 자신만의 그림기법과 조형언어를 찾아가던 바자렐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 과정에서 바자렐리 스스로 ‘잘못된 길’이라 이름 붙인 시기가 있었다는 게 재미있었다. 이 섹션에서는 두꺼운 선으로 그린 추상에 가까운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확실히 이질적이다. 거장이라 불리는 이의 작품 세계 역시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물임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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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를 지나 4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다시 중심을 잡고 '옵아트' 하면 떠오르는 기하학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한다. 시작은 선이었다. 가느다란 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선이 수없이 반복되며 조금씩 변주될 때, 거기에 리듬감과 움직임이 생긴다.

 

바자렐리는 이 작품들을 '탄생' 시리즈로 이름 붙인다. 탄생 시리즈가 있는 섹션에서는 벌써부터 '반응하는 눈'을 느낄 수 있다. 선들이 물결치며 움직이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선들로 그리던 단계를 지나면 바자렐리는 마침내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요소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대형 옵아트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 시기 현미경으로 보이는 원소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에 관심이 많던 그는 특히 육각형을 자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심리학, 물리학 등 다방면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작업에 학문의 법칙을 녹여내고자 했다.

 

대비가 강렬한 색으로 이루어진 조형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바자렐리가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어떤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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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ctor Vasarely, 1979, Stri-oet. Acrylic on Canvas. Vasarely Museum, Budapest

 

 

바자렐리가 옵아트로 추구한 것은 미술에 지식이 있든 없든, 예술가를 알든 모르든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 보는 순간 경험하는 착시 현상이었다. 그의 그림 앞에서 교양이나 지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대목에서는 앞서 바자렐리가 광고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의 그림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광고 포스터도 깊고 심오한 의미를 담는 게 아니라 홍보하고자 하는 상품을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바자렐리의 가치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대형 옵아트 그림을 보며 컴퓨터 작업 없이 어떻게 작업이 가능했는지 궁금했는데, 전시실에는 그가 옵아트 작품을 어떻게 구성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도안도 함께 전시 중이다. 도안을 보면 그가 즉흥적인 영감에 따라 그린 게 아니라 건축을 하듯이 꼼꼼히 계산해서 작업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작업의 공식과 법칙을 만들었다. 색 역시 시중에 판매되는 물감의 원색만을 사용했다. 그렇기에 언제든 누구든 바자렐리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재현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예술을 접했으면 하는 바자렐리의 바람은 창작 과정에도 반영된 것이다. 바자렐리는 죽고 없지만, 누구든 바자렐리의 그림을 원작과 똑같이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다른 의미로 불멸의 명작을 남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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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움직임을 표현하기가 좀 더 쉬워진 오늘날 바자렐리의 그림이 일으키는 착시효과는 옵아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큼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여러 학문의 원리를 옵아트에 접목시키고자 했던 시도나 작업의 매뉴얼을 만들었던 것은 여전히 혁신적이고, 오늘날의 예술 양상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인 회화 전시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전시는 아니지만, <반응하는 눈, 빅토르 바자렐리> 전은 예술의 형식과 쓸모에 관해 계속 질문하게 만든다. 지금처럼 기술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50년 뒤, 100년 뒤, 바자렐리가 또 다른 평가를 받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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