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몸이라는 유산 - 김영후 빅밴드 단독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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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글로 옮기는 데 겁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공연장을 찾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음악이 가진 그 명확하지 않은, 설명 불가능성이 나를 자꾸 이끌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가 여전히 간직해야 할 신비로움이 있다면 그곳에 있으리라는 어떤 막연한 믿음이 내게는 아직 있다. 고유의 존재가 아닌 그저 하나의 개체로 환원되는 세계의 흐름 속에서 신비로움을 지닌 고유한 무엇으로 남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품고 있을 것이다.
음악을 향유하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 아닐까.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통해 내 안에 신비로움을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공연장에서는 떨림과 울림을 내 몸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연주자와 같은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 때문에, 공연장에 가는 일을 멈출 수 없다. 그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생각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
김영후 빅밴드의 음반 <범인류적 유산>은 “언어와 기록에 의한 소통으로 쌓여온 인류의 공동 자산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려고 한다.
김영후는 인류의 역사가 이어져 오며 주목할 만한 변화 혹은 사건을 주제로 곡을 창작했다. 그는 인지 혁명 이래 팬데믹을 맞이하며 우리가 어디에 주목해야 하며, 어떤 정동을 공유하는지, 무엇을 이어받았는지, 이를 통해 미래를 어떻게 구성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골몰한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유산의 상속자이자, 동시에 미래의 선대다. 이 지점은 살아가면서 간과되기 쉽다. 공연을 보니 내가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로서 현재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생경하게 와닿았다.
내가 물려받은 범인류적 유산은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많은 것이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몸’을 떠올렸던 것 같다. 몸이야말로 진화를 거듭해오며 선조의 경험과 정동이 머무르고 전달된 장소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불안과 해명되지 않는 직감을 통해 위기를 감지하고 이에 대비한다.
재즈 클럽에서 듣는 소편성 연주와는 다르게 오케스트라와 같은 풍성한 구성의 연주는 연주자의 즉흥성과 흥얼거림, 몸짓 때문에 꼭 현장에서 볼 필요가 있었다.
음악을 연주하며, 그에 심취해 내리감은 눈, 흥얼거림, 리듬을 따라 들썩이는 몸, 그 모든 것을 직접 보고 경험함으로써 나는 내 몸이야말로 일종의 유산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들썩거리는 발과 몰입하고자 기울이는 고개에서 내 취향을, 그리고 음악을 즐기는 내 가족들의 모습을, 예술을 향유하고 발전시켜 온 인류에 대해 생각했다.
음악이라는 수단으로 하나의 의미나 주제를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인류가 오래도록 시각이라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구히 남지 않는 청각적인 요소를 언어화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다. 느낌이나 흥얼거림 같은 무의식의 영역은 여전히 사적인 요소에 머물러 공적 영역에서 힘을 갖지 못한다.
과연 예술이 사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예술이야말로 소통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사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예술은 ‘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에서, ‘우리’로, 그래야 ‘인류’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사적이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이라는 이유로 무시해 왔던 내 감각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 단상과 감각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기로 결심해 본다.
[박하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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