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레즈비언 공간이 지닌 의미, 나의 홈그라운드

글 입력 2023.12.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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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레즈비언, '홈그라운드'


 

'홈그라운드'는 노년의 중성적인 인물이 거울을 보며 단장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됐다. '퀴어 영화'라는 정보 외에는 어떠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관람하러 갔기 때문에,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노년의 레즈비언 이야기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던 듯 싶다. 노년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일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저 배우도 아무리 이렇게 레즈비언을 연기하지만, 실제로는 헤테로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막상 내 생각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내가 '어차피 헤테로'가 아닐까 의심했던 배우는 실제 레즈비언 일반인이었고, '홈그라운드'는 그녀와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것이다.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레즈비언 공간에 대해 다룬 이야기.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세계를 90분 안에 모두 볼 수 있다니! 영화의 매력은, 우습지만, 정말 이렇게 관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다.

 

'홈그라운드'에서는 칠순을 앞뒀지만 여전히 명량하고 쾌활한, 레스보스 운영자 윤김명우 씨의 솔직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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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우 씨의 레스보스


 

1970년대 때부터 논란이 되었던 명동의 '샤넬 다방', 2000년대의 '신촌 공원', 그리고 오늘날의 '레스보스'까지 국내 레즈비언들이 서로 의지하고 연대와 결속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인연을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 그러니 당연히 성소수자들끼리의 교류하는 것도 고민거리가 아니다. 어렵지 않게 동네 성소수자와 소통할 수 있는커뮤니티와 앱은 단순한 검색만으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과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였던 레즈비언들이 서로 유일하게 환대해 줄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등장한 곳이 "레스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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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공간성


 

영화를 보면서 성소수자들이 서로 유일하게 반겨 주고 환대하며 위로하는 공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김명우 씨를 중심으로 한국 레즈비언, 그중에서도 "바지 씨"로 불리우는 이들 간의 결속을 공간사로 풀어 낸 이야기였다.


공간은 발견, 생산, 향유, 새로운 창조까지의 복잡한 과정이 재구성되는 곳이다. 공간의 의미 역시 역시 실재하는 공간만이 아닌, 공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일컫는다. 레즈비언 집합소로 축약되는 이 실재 공간 '레스보스'는 지금까지 그들이 성장해 오고, 살아 오고, 투쟁해 온 모든 역사와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위로로서의 추상 공간이자, 의지할 수 있는 정신 공간, 그리고 연대할 수 있는 사회 공간, 또 그들만의 문화를 아우른 역사 공간이었던 '레스보스'를 단순히 '레즈비언 술집'이라는 짧은 단어로 다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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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다는 것, 공간의 의미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이 교류하였던 공간의 의미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화면 속의 숏에서는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만 보여 줬을 뿐이지만, 그것과 동시에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었던 지난날 그들의 고민과 사유, 전달하고팠던 수많은 메시지가 스크린 너머로 온전히 넘어왔기 때문이다.

 

공간의 정신성을 이야기할 때는 공간의 환원 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레스보스'에 들어서서 추억에 잠긴 여성들의 모습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레스보스'는 어떠한 곳일까? '신촌공원' 그리고 '샤넬다방'은 어땠을까?

 

물론 영화는 감정을 설득적으로 호소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영화 속 레즈비언들이 그 공간에서 굉장히 특별한 경험을 한 것처럼 그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성소수자라고 해서 달랐을까? 그저 일반인들이 겪는 똑같은 성장을 그 공간에서 경험했을 것이다. 사실 뭐, 딱히 다를 게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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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청춘을 쏟아부었던 '샤넬다방', '신촌공원', 그리고 오늘날의 '레스보스'까지. 물리적인 하나의 공간, 일상의 공간,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객관적인 공간들이 개개인의 내면화와 집단의 재구성에 따라 새롭게 활성화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뭉클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성소수자들이 조금 더 양지로 나왔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주말에 어떤 모임에 참석하냐는 물음에, 운동 모임이나 등산 모임, 2030 모임, 직장인 모임과 같은 말은 쉽게 대답할 수 있지만, 누구 하나 "레즈비언 모임"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나마 과거의 샤넬다방을 기억하며, 이제는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에 기뻐해야 할까? 영화가 끝나갈수록 마음 한켠이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소수자로 분류되는 이들이 함께 소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늘기를 바란다.

 

 

 

 

 

[신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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