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빼미', 비록 세상이 어두울지라도 [영화]

우린 많은 것들 앞에 생각보다 쉽게 눈을 감는다
글 입력 2023.11.14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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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 년이 된 영화다. 작년 겨울 즈음 개봉한 영화인데, 주로 OTT 등으로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드물게도 영화관에서 본 영화다. 재밌다는 친구의 평 하나만을 믿은 채 보러 간 영화 <올빼미>가 큰 여운을 주게 되어 글을 쓴다.

 

영화의 주 키워드를 꼽자면 '보다'이다.

 

주인공 경수는 밤에만 볼 수 있는 주맹증 환자다. 어두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경수는, 사람들이 모두 훤히 눈을 뜨고 다니는 밝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작중 사람들은 그가 소경인 줄로 알고 있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숨기냐는 소현세자의 물음에 그는, 자신과 같은 낮은 사람은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고 살아야 한다고 답한다. 처음 입궐할 당시, 그의 선배 의관이 해 준 조언과도 일치한다. '높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봐도 못 본 척 하라는 조언이었다. 이에 대해 소현세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안 보고 사는게 좋다 해서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지." -<올빼미> 中 소현세자

 

소현세자는 경수에게 안경을 선물한다. 그리고 드디어 안경이 제 주인을 찾았다고 독백한다. 작중의 소현은 어떤 인물인가? 시대의 격동기에 살았던 사람이고, 포로로 청나라에 끌려가서도 조선이 더욱 강해지려면 어떤 기술과 어떤 배움을 가져야 하는지를 두 눈 뜨고 배웠던 사람이다.

 

단체로 전쟁의 복수심과 PTSD에 빠져, 제대로 된 현실을 인정하고 발전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조선의 조정에 끊임없이 '눈을 더 크게 뜰 것'을 요청했던 투사였다. 소현이 선물한 안경은, 실력과 식견이 있는 경수가 세태의 부조리에 눈을 돌리지 않고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가르침을 내린 그의 결단이다.

 

영화 내내 단 한번도 '올빼미'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나는 이 영화를 끝마친 후 올빼미야말로 적절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주인공 경수가 주맹증임을 나타낸 말뿐이 아니다.

 

올빼미는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 눈을 감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다. 소현세자가 경수에게 준 가르침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두울 때 더 눈을 크게 뜰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올빼미였고, 세자였다. 어두울 수록 눈을 크게 뜨고, 시대의 억압과 부조리함에 굴복하지 말라는 소현의 조언이 형상화된 것이 바로 올빼미다.

 

어두운 조선에서 눈을 크게 뜨고 버티고 있던 세자가, 어두운 조정에 들어온 경수에게 내린 가르침이자 부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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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세자빈에게 독살의 결정적인 증를 넘기는 투서를 쓰는 용감함을 보이지만 왕이 배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동생이 떠오르자 살기 위해 세자빈을 배신하는 모습 또한 보인다. 하지만 또한 동시에 아이인 원손의 눈물에 가책을 느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을 잡기 위한 소란 속, 최 대감의 도움으로 경수는 몸을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다. 수문장이 문을 열어준 성문 앞에 선 것이다. 횃불과 등불로 '밝은' 궁 내의 소란과 대비되는 묘사로, 궁 밖은 '어둡고' 고즈넉하다. 경수는 고민한다. 궁 밖에는 자신을 기다리는 동생이 있고, 자신의 안위를 보장할 수 있는 누구보다 익숙한 어둠이 있다. 궁 안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 큰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다.

 

경수는 결국 자신에게는 어둠이나 다름없는 '빛' 속으로 뛰어든다. 두렵지만 그럴수록 눈을 크게 떴다. 안쪽으로 돌아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이에 맞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 <올빼미> 中 경수    


이 말과 함께, 왕의 시야가 흐려진다.

 

경수가 소현세자가 죽은 방식 그대로, 인조의 머리에 대침을 박아 죽이며 말한 이 한마디가 통쾌한 복수로만 느껴졌을지 모르겠다. 경수는 소현을 만나기 전 '나리같이 높은 사람'이나 보이는 것을 전부 볼 수 있지, 자신과 같은 낮은 사람은 봐도 못 본 체 하고 살아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한 시선에서 가장 높은 존재는 바로 왕이다. '보고 싶은 것'을 전부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불을 끄니 천한 경수는 왕을 똑바로 노려보고, 왕의 시야는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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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왜 왕의 '시야'가 흐려졌을까.

 

우리는 변화하는 세태의 큰 물결 앞에 모두가 약자다.

 

어쩌면 그것을 체감하기 가장 힘든 위치였을 소현세자는 늘 강자였던 궁 안에서 갑작스레 전쟁이라는 세태의 부조리 앞에 약자로서 내던져진다. 그런도 그는 용기 있게 이를 직시하고 변화하고자 했다. 하지만 왕은 눈을 감고 봐도 못 본 체, 살았다. 자신이 피하고 싶은 어둠에서 끝끝내 부정하고, 억압하고, 눈을 돌린 왕과, 안전한 바깥을 버린 채 자신이 찾아야 할 도리를 찾아 다시금 '불빛' 속으로 뛰어든 소경.

 

결국, 소경은 눈을 제대로 떴고 왕은 소경이 된다.

 

부조리함은 산재해 있고 예고 없이 우리를 덮친다. 우린 소현세자와 경수와도 같이 모두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 약자가 된다. 하지만 초기의 경수와 같이, 그리고 작중의 왕과 같이 그런 어둠을 외면하고 눈을 감는 소시민성에 반해, 소현세자는 올빼미로 대표되는 가르침을 남겼다.

 

어두워질 수록 눈을 크게 떠라, 직시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다.

 

 

[김우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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