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정신의학의 혁명적 전환 -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한계를 직면했음에도 믿어야 하는 이유
글 입력 2023.12.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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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정신의학에 대한 의심과 한계에 대해 다루며 글을 시작한다. 촉망받는 기자였던 저자는 스물 네살 삶을 뒤흔드는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한다. 병명은 '자가면역 뇌염'이었지만 의사들은 그를 '조현병'이라고 진단했다. 저자는 정신 병원 강제 수감이 결정되기에 이르렀지만, 한 의사의 끈질긴 노력으로 정확한 병명을 밝혀낼 수 있었다. 저자는 목숨을 건지는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이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을 다른 사람들, 오진의 희생자들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이 문제를 탐구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여덟 명의 가짜 환자들이 정신질환자로 위장해 병원에 잠입한 '로젠한 실험'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마주한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저자는 데이비드 로젠한이 던진 중요한 질문을 따라 실험을 파헤쳤다.

 

스탠퍼드 대학 교수 데이비드 로젠한은 1973년 <사이언스>에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실험의 충격적인 내용은 정신의학 종사자들에게 혁명적인 전환이 되었으며, 당시의 정신의학의 진단이 사실상 정당성을 모조리 잃은 것처럼 보일 정도의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책의 저자 수재나 캐헐런은 로젠한의 미출간 원고를 추적하여 연구의 의미를 다시 조명한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이 이 책에 있다. 책은 이미 드러난 사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실험의 진면모를 가감없이 밝힌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 정신의학에 대한 의심


 

저자는 정상인과 정신질환자 두 세계의 간극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가교의 역할을 했다. 저자 캐헐런처럼 증상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신질환 같지만 자가면역 반응, 감염, 신체 기능장애 같은 원인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의사가 환자를 정신질환이 아닌 기질성 질환으로 진단했을 때, 환자는 다른 의학으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목숨을 살리는 치료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고칠 수 있는 신체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신질환으로 병을 돌리는 것이 아닐까?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 로젠한 실험(1973)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으로 발표된 데이비드 로젠한의 로젠한 실험은 의사와 의료진이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자신을 포함한 건강한 여덟 명의 남녀가 자발적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한 실험이다.

 

실험은 로젠한을 포함한 8명의 건강한 남녀가 "쿵, 비었어, 공허해"라는 동일한 환청 증상을 내세우며 정신 병원 입원을 시도하는 방식이었다. 충격적이게도 그 결과 이들은 12군데의 정신병원에서 모두 정신질환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단지 환자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오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모든 자원자들이 들어가자마자 '정상적'으로 행동했으나, 입원한 순간부터 임상의들은 모든 행동을 가짜 환자가 앓고 있다고 여긴 정신질환의 틀로 바라보았다. 의료진들은 아무도 그들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 논문의 요지는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별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로젠한 실험에서 의사들은 미셸 푸코가 말한 "의학적 시선(medical gaze)"의 전형적인 결과처럼 행동했다. 의사들은 차트, 백분율, 검사 결과라는 객관적 사실에 의존했다. 그들은 로젠한의 차트를 볼 뿐 눈앞에 있는 환자를 보는 데는 실패했다. 실험 참여자들은 입원하자마자 정신질환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환자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인식이 만들어지고 나면 의사들은 그가 계속해서 정신질환자일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환자가 회복하고 퇴원했더라도 일단 꼬리표가 붙고 나면 완전하게 정상적임을 증명해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실험은 우리가 보기를 기대하는 바에 따라 우리가 세상에 반응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로젠한은 연구는 <사이언스>에 소개됐다. "논문은 정신병원에서 정상인과 정신질환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가짜 환자들의 눈으로 관찰한 정신병원 입원의 실태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서술합니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열광했다. 정신의학의 혁명의 선두에 로젠한의 실험이 있었다.

 

 

 

의문


 

저자 캐헐런은 로젠한 실험을 파헤치던 중 세세한 오류들을 계속해서 발견했다. 턱없이 부정확한 환자 수, 사적인 기록에도 실험 참여자의 가명을 잘못 적는 실수, 로젠한의 기록과 실험 참여자 빌의 기억 간에 일치하지 않는 점들도 있었다. 빌은 입원 중에 상세한 자료를 기록하지는 않았다고 했으나, 논문은 직원들이 병동에서 보낸 시간을 분 단위로 밝히고 의료진의 행동 방식을 백분율로 나타내고 있었다. 또 로젠한은 자신이 병원에 잠입했을 때 본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학생들에게는 이러한 예방책을 취했다는 정황도 없었다.

 

저자는 로젠한의 진료기록도 입수했다. 출간된 논문과 진료기록을 비교하니 왜곡이 더 드러났다. 연구의 근본 원칙 중 하나는 가짜 환자 모두가 하나의 증상("쿵, 비었어, 공허해"라는 환청)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로젠한은 "전파신호에 민감하여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들린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추가했다. 남들의 생각을 듣거나 조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조현병의 핵심 증상이다. 자살 생각과 자해 위협도 추가로 언급했다. 로젠한은 자신의 논문에서 어떤 사항은 과장하고 부각시키는가 하면 어떤 사항은 그냥 빼버렸다.

 

로젠한은 실험 참여자를 감추기도 했다. 실험 참여자 해리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규모 공공병원의 정신병동에 가짜 환자로 들어가 19일을 보내고 나서 정신병원 시설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는 차후의 연구에서 기존의 시설들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기를 권한다." 그는 실험에서의 입원 경험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했다. 몰개인화는 없었고 직원과 깊은 유대감을 느꼈다고 했다. 심지어 해리는 그곳에서 이전보다 더 발전했으며, 마지막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그곳이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해리의 자료는 무시되었다. 아마 입원을 긍정적으로 서술한 해리의 자료가 정신병원 시설을 폐쇄해야 한다는 로젠한의 논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로젠한은 실험의 가치에 대해 이해했고, 세상이 자신의 연구에 주목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완전하게 논리적인 설명을 내놓아야 했다. 그것은 과학적이어야 했다.

 

 

 

실험의 영향력 - 반정신의학과 무너진 정신보건 시스템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가 발표되자 미국 사회는 크게 흔들렸다. 데이비드 로젠한은 반정신의학 진영이 오래전부터 목소리를 높여왔던 주장에 <사이언스>의 승인을 받은 증거를 내놓은 셈이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의 의견이 사실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사이언스> 저널의 위상이 정신의학 분야에서의 비판은 전혀 먹히지 않게 만들기도 했다. 대중과 전문가들은 정신병원이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젠한 이전에도 이미 일반 대중은 반정신의학 운동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과거의 정신의학이 매우 비과학적이고 부끄러웠기에 더 그랬다. 로젠한은 이 여론에 불을 붙인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정신병원 대신 네트워크를 마련하여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병원 밖에서 살아가도록 연방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했다. 린든 존슨 대통령의 정신질환 시설 제한 규정은 병상 수가 열여섯 개를 넘는 정신병원에 연방정부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주정부들은 병원을 폐쇄했다. 정신질환자들은 종합병원의 정신과 병동에서 제한된 병상을 차지하려 경쟁했다.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의료적 처치가 과한 부서로 내몰리고,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립 정신병원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환자들이 입원하려면 중증 장애이거나 임박한 위협이 되어야 했다.

 

지금 미국 정신 보건 시스템의 실태는 로젠한의 비판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상황은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데 자리가 없어서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역사회 돌봄이 실현되지 않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나가야 했고 갈 곳이 없어졌다.

 

로젠한의 연구로 수세에 몰린 정신의학은 확실성에 매달렸고, 잘못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대중에게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사했지만,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악영향으로 다가왔다. 로젠한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연구는 이를 가능하게 했다.

 

 

 

마무리


 

신체와 정신, 뇌와 마음의 이원론은 누군가의 생사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어떤 질병이 다른 질병보다 더 우리의 공감을 살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를 더 넓은 시야로 보아야 한다.

 

로젠한은 정신의학에 대한 믿음, 의사와 진단에 대한 믿음을 망가뜨리는 것을 도왔다. 이는 정신의학계의 가장 큰 독이 되었다. 그래서 저자는 정신의학의 한계를 온몸으로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의학을 믿기로 했다. 그것이 정신의학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정신의학계는 로젠한의 연구가 대중의 여론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한다. 로젠한 실험은 정신의학의 진단과 입원 방식의 문제점에 중요한 문제제기를 했다. 그동안의 정신의학은 병변이 눈에 보이지 않고, 환자가 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 진단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로젠한의 연구는 정신질환의 진단에 더욱 심도 있는 관찰이 필요함을 제시했다. 그리고 로젠한 실험은 정신보건에 관한 국가의 이해를 뒤바꿨다. 정신질환자의 적절한 치료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고, 탈시설화, 반정신의학, 정신질환자의 권리 투쟁 등의 다양한 운동을 촉발했다.

 

연구가 가진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로젠한의 문제제기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허구가 섞여 있지만 그의 연구는 진실을 드러냈고, 우리는 아직까지도 그것에 대해 논쟁하고 조사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계를 파악하고 발전을 논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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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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