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공감과 위로'의 음악: 나는 나로서 충분하지 않은가? [음악]

글 입력 2023.12.2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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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예술이 지닌 진정한 힘은 현실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인 ‘의지’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산출하는 이기주의적이고 맹목적인 충동이다. 이때, 모든 의욕은 개인이 지닌 결핍과 고뇌에서 파생되기에 한 욕구의 충족은 즉각적으로 또 다른 갈망을 낳는다. 즉, 인간의 의지 법칙 하에서는 결코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는 비슷하거나 동일한 목적을 지닌 이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내면적 욕구에 더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끊임없이 갈등하고 투쟁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타자라는 공동체적 성격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고 있음을 느끼지만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본능으로 인해 현실과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다.

 

이에 그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내건 것이 바로 ‘예술’인 것이다. 잠깐이지만 사회라는 공동체로부터 멀어져 개인적인 고립을 토대로 의지를 잠재우는 것, 그리고 난 이러한 사고의 흐름이 오늘날 ‘음악’이 지닌 강력한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불안과 방황’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내 그 빈자리를 고요와 위안으로 채울 수 있는, 따뜻한 음악들을 세 곡 소개해보고자 한다.

 

 

 


볼빨간사춘기 ‘나의 사춘기에게’ (2017.09.28.)



 

 

첫 번째로 소개할 곡은, 볼빨간사춘기의 EP [Red Diary Page.1] 수록곡 ‘나의 사춘기에게’이다.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매일 밤을 울던 날

 

 

누구나 한 번쯤 그런 날이 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듯하다가 별안간 이 세상 속에 기댈 곳 하나 없이 외로이 남겨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는 때 말이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며 처음으로 이런 감정을 느낄 때라면, 아마도 학창 시절의 성장통인 ‘사춘기’ 시기가 아닐까?

  

 

모두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두려워

...

아름다운 아름답던

그 기억이 난 아파서

 

 

아직 어리고 미성숙한 시기, 갑작스레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성적, 교우관계, 부모님의 기대 등 온갖 문제들과 뒤섞이며 더한 혼란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이 시간들은 이내 여러 아픔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난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밝은 빛이라도 될까 봐

어쩌면 그 모든 아픔을 내딛고서라도

짧게 빛을 내볼까 봐

 

 

볼빨간사춘기는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런 아픔을 딛고 빛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며 모든 사춘기들에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성장’을 통한 더 큰 세상으로의 도약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아마도, 처음으로 내가 음악을 통해 ‘공감’이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 바로 이 곡을 들었을 때가 아니었나 싶다.

 

 

 


Sondia(손디아) ‘어른’ (2018.03.29.)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그렇게 아이는 어느덧 자라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학창 시절에 겪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른 격의 문제들을 마주하며 더 큰 불안을 느낀다. 더 이상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줄 울타리가 사라지고, 이 넓은 세상에 정말 나홀로 서야 하는 순간이 왔기 때문에.

 

 

정신 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tvN 수목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등장한 2번째 OST, Sondia(손디아)의 ‘어른’은 너무 일찍 커버린 상처받은 아이와 그 고단한 삶의 무게를 다루는 흡입력 있는 곡이다. 사회에 나선 뒤 앞뒤 볼 겨를도 없이 달리기만 하던 아이는 자신의 꿈을 잊었고, 끝나지 않을 듯한 슬픔과 고달픔에 포기할 것만 같은 모습을 보인다.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하지만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감긴 눈을 뜨고 나서야 내가 오직 ‘나’로서 존재할 때, 내 안에 잠들지 않던 영원한 꿈이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깨달으며 여태 눈을 감았던 자신을 후회하고 되돌아본다.

 

이처럼 삶의 무게를 감내하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곡 '어른'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낄 소외감과 외로움에 공감하면서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나’의 존재를 일깨워준다고 생각했다.

 

 

 


최유리 ‘숲’ (2022.08.24.)


 


 

 

결국, 이 사회 속에 ‘나’로서 온전히 존재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내가 지닌 부족함을 탓하고, 이에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길 반복한다.

 

최유리의 싱글 [유영]에 담긴 더블 타이틀곡 ‘숲’은 남들과 함께 하나의 숲을 이루고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담하지만 울림 있는 감성으로 풀어내고 있다.

 

 

길을 터 보일게 나를 베어도 돼

날 지나치지 마 날 보아줘

나는 널 들을게 이젠 말해도 돼

날 보며

 

 

부족한 내가 고개를 숙이고 네가 원하는 대로 바뀌길 자처할 테니 부디 날 지나치지 말고, 날 보며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원래 아쉬운 사람이 더 매달리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난 저기 숲이 돼볼래

나의 옷이 다 눈물에 젖는대도

아 바다라고 했던가

그럼 내 눈물 모두 버릴 수 있나

 

 

사람과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집착과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잘난 주위의 큰 나무들과 달리, 스스로를 이 세상 속 그저 작고 약한 나무 한 그루로 볼 뿐이다. 이에 우리는 수없이 흘린 눈물이 만들어낸 바다에 슬픔을 녹여내며 더 이상 하나의 나무가 아닌 하나의 큰 숲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나의 눈물 모아 바다로만

흘려보내 나를 다 감추면

기억할게 내가 뭍에 나와있어

그때 난 숲이려나

 

 

그러나, 내가 여기서 집중한 바는 바로 하나의 모순이다. 나무의 존재가 아무리 작고 왜소하다고 한들 숲을 볼 때 그 존재를 배제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분명하게 '아니'였다. 아무리 사소한 존재라도 결국 하나의 숲을 구성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다.

 

더군다나 나무는 여러 곤충과 소동물의 잠자리가 되어주거나 식량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나무는 사실 이미 존재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굳이 사람을 위해 목재가 되길 자처하며 자신의 몸을 희생하지 않고도 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이 곡을 들으며 느꼈던 바는 누군가에게 쓰임을 증명하고자 이 악물고 달리는 것은 결코 내 삶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며 내 삶의 가치를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것, 그게 이미 하나의 숲으로 존재하는 나의 참된 모습을 깨달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마치며:  나를 사랑하기가 어려운 모든 이들에게


 

사실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티 하나 안 내는데, 난 고작 이것도 못 버티나?’ 하는 자책을 하루에도 수십, 수천 번씩 하고는 한다. 음악을 통해 위로를 받는다고 해도, 타인의 잘난 모습을 치켜세우며 나의 못남을 채찍질하는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사고방식이 한순간에 고쳐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분명 한 사람의 가치관은 오랜 시간의 반복적인 자기 세뇌로 굳어진 지 오래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 이 글 속에 담긴 모든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는 독자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자기 혐오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담은 것이다. 힘들 땐 잠시 쉬어 가도 된다는 마음으로, 남들이 대단하다고 해서 그게 곧 나의 못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에 슬픔을 토해내며 감정을 정돈하고, 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음악'이란 소중한 예술 장르에 또 한 번 깊은 감사를 느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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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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