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레리나가 되지 못한 [영화]

글 입력 2023.10.29 12: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꼭 복수해줘!

왠지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랑 술 마실 때가 가장 재밌었어.

chef.choi_1004

 


common-11.jpeg

 

 

발레리나 민희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옥주에게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자살한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발레를 한다던 민희는 어떤 연유로 토슈즈를 벗게 되었을까. 옥주는 민희가 남긴 쪽지를 단서로 여성들과의 성관계 영상을 팔아넘기는 성범죄자 최프로를 찾게 된다.

 

옥주는 민희를 자살로 몰아세운 최프로를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아이러니한 복수의 시작


 

common-6.jpeg

 

 

영화 <발레리나>는 주인공들의 서사를 깊이 다루지 않고 옥주의 복수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렇기에 관객들 입장에서는 옥주가 죽은 친구의 쪽지 한 장만 보고 바로 복수를 시작하는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옥주와 민희의 과거 영상 속에서 둘의 관계를 인지할 수는 있지만, 복수를 부탁하고 결심할 정도의 각별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하다.

 

그리고 민희가 옥주에게 복수를 부탁한 이유도 하나의 의문점이다. 영화에서는 과거 옥주가 VIP들의 경호를 담당했다고는 언급된다. 그러나 민희가 옥주에게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하면서 복수를 부탁한 데에는 더 확실한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영화 중간, 회사로 복귀하라는 선배의 말에 옥주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옥주가 경호 일을 그만두고 방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또 왜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대한 옥주의 서사가 있었더라면 시작부터 의문점을 갖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예쁘고 뻔한 복수의 과정


 

common.jpeg

 

 

영화 <발레리나>는 유독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쓴 영화이다.

 

액션 영화에서 보기 드문 연출과 색감, 배경 음악은 스타일리시한 영화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보이는 것에 너무 치중한 탓인가. 정작 중요한 요소들에 신경 쓰지 못했다는 느낌은 감출 수 없다.

 

예쁘게 담아내려는 의도로 인해 액션신은 복수를 향한 처절한 싸움으로 보이기보다는 하나의 퀘스트로 인식되었다.

 

다음 단계를 향해 무미건조하게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장면들은 이번 퀘스트가 실패하면 다음 기회가 있기라도 한 듯, 옥주의 복수심과 분노로 가득 찬 장면들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common-13.jpeg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조 사장이나 여고생 같은 캐릭터는 극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복수 대상인 최프로를 부하로, 가끔은 친구로 대하는 조사장은 가지고 있는 무게를 보여주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죽는다.

 

물론, 보스를 항상 처리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그려내는 편견에 대응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허망한 죽음에 굳이 조사장 캐릭터에 무게를 실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제시되지 않은 최프로와 조 사장의 묘한 관계 또한 관객들에게 찝찝함을 남긴다.

 

어려운 상황에서 옥주를 도와준 여고생의 등장은 뻔하고 어색하다. 누군가 도와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자마자 나타난 그녀는 최프로에게 잡혀있던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패기는 넘치지만, 미숙함으로 가득한 여고생이 발휘하는 기개는 예상 가능한 타이밍에 발휘된다. 그리고 옥주가 여고생과 민희 사이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서, 옥주가 복수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세분화되는 듯하다.

 

오히려, 민희보다 여고생과의 서사 빌드업이 좋다는 주객전도의 느낌이 든다.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한 부조화


 

common-14.jpeg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탓에 영화의 좋은 연출들이 가려진 점이 아쉽다.

 

액션 영화에서 보기 힘든 힙합 음악의 활용과 몽롱하고 화려한 조명들, 이국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독특하고 눈에 띄는 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영화는 기본에 충실해야 나머지도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피해자를 결코 자유롭게 두지 않는 현실 속에서 가해자에게 선사하는 응당한 복수가 얼마나 필요한지. 가해자들이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세상에서야 비로소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피해자들의 현실은 얼마나 가혹한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고 나니 메시지의 무게만큼 영화의 짜임새가 더 촘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하다.

 

* 본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연재-3.jpg

 

 

[이연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