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른이들을 위한 해부학 그림책 -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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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는 같은데 다르다. 모든 사람의 관계가 그렇겠다만은 내 바운더리 내에서 특히나 엄마와의 관계는 고요하고도 드라마틱했다.
우리의 관계는 오랜 시간 일방적이었다. 서로의 선호와 욕구를 존중하기보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들이밀기 바빴다. 종교든 학업이든 취미든 간에. 물론 좋은 의도였으나 내가 생각하기에 옳고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상대가 받아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을지도.
하지만 흥미롭게도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어린 시절 엄마를 떠올리면 서로 다른 점만 먼저 생각나기 일쑤였으나 나이가 조금씩 들고 보니 오히려 닮은 점이 먼저 생각나는 것이다.
완전히 가까워질 수 없다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인정한 채로 우리가 함께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책을 리뷰하는데 왜 갑자기 엄마 얘기인가 싶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같이 즐겁게 본 책이라 감회가 남달랐다고 해두자.
우리의 몇 안되는, 그러나 깊이 좋아하는 주제는 항상 자연과 예술에 맞닿아 있었으므로 무심코 펼쳐든 책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꽂혔던 것이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 등 여러 종을 다루고 있는 책은 해부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동물 스케치에 접근한다. 책을 읽고 나면 녹색이구아나, 아프리카들개, 올빼미를 그려내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연습해야 한다..)
저자인 팀 폰드는 딥펜과 잉크를 사용한 작업으로 유명한 이로, 작가가 그린 펜화는 <가디언> 같은 여러 출판물에 수록됐다고 한다. 알래스카 탐사나 멕시코 열대 우림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기까지 한다는 동물 그림에 대한 열정이 인상적이다.
사진 대신 스케치를 통해 동물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것은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번거로운 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관찰에 대한 결과를 온전히 내재화해 나의 일부로 소유한다는 성취감이 있을 것이다.
엄마와 나는 그 수고로운 작업에 공감했다.
엄마는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눈에 보이는 무엇이든 그려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에는 엄마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법을 배우곤 했는데. 책을 함께 넘기다 보니 잊고 지내던 추억이 머리를 스치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이십년은 훌쩍 지난 지금 다시 이어진 그 시간은 동그란 원 일곱 개로 판다를 그리는 법을 배우던 어린 시절에서, 판다의 신체 구조와 근육의 움직임을 보며 실사화를 고민하는 어른들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같지만 다르다.
또 책에는 해부학에 대한 지식만 나열된 것은 아니다. 동물의 신체에 숨겨진 흥미로운 비밀 이야기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거대 고양이로 불리는 치타가 신체 구조상 발톱을 완전히 감출 수 없고, 둥글고 밍숭한 얼굴을 한 오리에게도 뺨이 있다는 사실을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꼭 책을 보고 따라 그리며 연습하지 않더라도, 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자체가 무척 즐겁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실 책 <동물 스케치 마스터 컬렉션>이라는 그 이름부터 웅장하고 표지는 전공 서적처럼 제법 근엄한 구도를 띠고 있다.
오래된 번역서를 연상케하는 디자인에 저도 모르는 새 마음의 장벽이 생기지만 잠시 접어두는게 좋다. 어릴적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다는 갈라파고스 거북이나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춘 도도새의 이야기를 보며 한번쯤 이름 모를 동물들과 초원을 달리는 상상을 한 적이 있는 누구에게 이 책은 한 편의 모험서로 다가갈 테니.
이어지는 설명을 따라 하나씩 그려봐도 좋고, 펜은 내려놓은 채 편하게 감상만 해도 좋다. 어른이들을 위한 해부학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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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팀 폰드 - 그의 미술 작품에는 20여 년 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다양한 고객과 작업한 경력이 담겨 있다. 딥펜과 잉크를 사용한 작업으로 특히 유명하며, 그가 그린 펜화는 영국 신문 [가디언]을 비롯한 다양한 출판물에 수록되었다.
자연을 직접 관찰하며 그리기를 좋아하여 알래스카 탐사에 참여하고 멕시코의 열대 우림으로 스케치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현재 런던동물학회(ZSL)를 비롯하여 영국 내 여러 곳에서 미술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신은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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